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번역하는 집사 May 07. 2022

자존심이 있었는데, 없어졌습니다

이 일을 하다 보면 자존심을 버려야 할 때가 참 많습니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그러하듯 번역가 역시 단어 하나, 어미 하나까지 고심해 가며 한 문장을 완성합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면서 차곡차곡 쌓은 문장을 몇 번이고 허물고 다시 쌓죠. 그렇게 힘겹게 살아남은 문장들이 무사히 세상 밖으로 나올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습니다. 감수자나 고객사에 의해 느닷없이 다른 단어로 바뀌기도 하고, 문장이 통째로 날아가는 일도 허다하고요.


번역은 보면 볼수록 계속 다듬을 내용이 나옵니다. 많이 다듬었다고 생각한 문장들도 여러 감수 과정을 거치면서  세밀하고 정교하게 다듬어집니다.  과정에서 말맛이 사라지거나 평범하게 바뀌기도 하죠. 예전에는  문장을 지키겠다며 감수자와 신경전을 벌일 때도 많았습니다. 감수자의 제안을 따르지 않고 내가  지키고 싶은  단어를 넣어서 문장을 요리조리 바꾸기도 했고요. 명백한 오류일 경우에는 변명의 여지 없이 수정 번역을 따라야 하지만, 스타일 같은 주관적인 요소를 건드리는  대부분의 번역가들이  좋아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번역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번역가에게 주어지는데,  것이 아닌 것까지 책임지고 싶지 않은 마음도 들었죠. 그나마 말이 통하는 감수자라면   단어를 써야 하는지 설명했을  수긍하고 이해하는데, 갑자기 얘기하다 말고 잠수를 타버린다든가, 다른 사람을 통해 얘기하라고 한다든가 하는 예의 없는 인간들도 종종 마주칩니다.

그렇게 싸우기를(건전한 표현으로는 토론이라고 합니) 여러  반복하다 보면 감수자나 고객이 원하는 대로 바꾸는  차라리 편합니다. 다만, 내가 번역했지만  것이 아닌  같아 마음 한구석이 찝찝하죠. 자고로 글을 쓰는 사람은 자신만의 고집이 있어야 한다는데, 번역에는  원문이란  존재하다 보니 작가와 관객 사이에 끼어든 불청객이란 느낌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그나마 남은 알량한 자존심이 꼬깃꼬깃 구겨지다 못해 꾹꾹 짓밟히죠.


보통 드라마는 한 편에 약 40분, 영화는 약 120분입니다. 모든 작품은 등장인물의 대사를 통해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드라마는 대사가 적으면 500박스, 많으면 1000박스, 영화는 적으면 1000박스, 많으면 2000박스(혹은 그 이상) 정도입니다. 애석하게도 모든 문장에 똑같은 정성을 쏟을 순 없습니다. 특히 신경 쓰는 문장이 있으면 상대적으로 덜 신경 쓰는 문장도 있게 마련이죠. 머릿속에 스치는 수많은 단어들 중에서 하나를 끄집어내야 하는데,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은 제한되어 있으니까요. 하지만 작품이 공개되는 순간, 모든 문장이 시험대에 오릅니다. 하루나 이틀, 기껏해야 일주일 남짓 만에 탄생한 번역이 몇 년간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고 생각하면 자존심은커녕 자존감도 지키기 어렵습니다.


 일을 하면서 매번 느끼는 거지만, 멘탈이 약한 사람은 번역가로 버티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방에서 평가가 날아오다 보니 오히려 무소식이 희소식일 때가 많습니다. 물론 번역가로 일하면서   버티다 보면 나중에는 이마저도 덤덤해집니다. 계속 버티다 강해진 건지, 잡초같이 끈질긴 사람들만 살아남은 건지 모르겠지만요. 나만 의견을 굽히면 모두가 편해지는 상황일 때는 어쩔  없이 자존심을 내려놓고 수용해야 합니. 계속 굽히지 않으면 고집을 넘어 아집이 되고 말거든요. 자존심만 내세우는 융통성 없는 사람이 되긴 싫지만, 그렇다고 자존감까지 잃을  없습니다. 그거라도 붙들고 있어야 계속  일을 이어 갈  있으니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영상 번역가가 이런 일도 한다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