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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번역하는 집사 Jun 11. 2021

프리랜서에 관한 오해와 진실

프리랜서로 일한다고 하면 몇 가지 자주 듣는 말들이 있습니다. 보통은 '프리랜서'란 이름에서 느껴지는 자유분방한 이미지를 먼저 떠올립니다. 그동안 자주 들었던, 혹은 궁금해하는 몇 가지 얘기를 정리해 봤습니다.




1. 프리랜서는 출근 스트레스가 없다.

어느 정도 일리 있는 말입니다. 저는 따로 사무실 없이 집에서 일하기 때문에 침대 옆 책상이 일터인 셈이죠. 저도 직장 생활을 해봤기에 아침에 일어나는 게 얼마나 스트레스고, 지옥철에 몸을 맡기는 게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깊이 공감합니다. 그 시절을 떠올릴 때면 침대에서 책상으로 바로 출근하는 게 참 감사한 일이죠. 업무 시작 시간은 자유로운 편이지만, 한편으론 퇴근 시간도 딱히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일 끝나는 시간이 곧 퇴근 시간이기 때문에 일이 끝나지 않으면 침대가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퇴근할 수가 없습니다.


2. 일하고 싶을 때만 일하면 된다.

상당히 자주 듣는 단골 멘트 중 하나인데, 정말 그랬으면 싶은 순간들이 종종 있습니다.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내 몸의 주인이 내가 아닌 것 같을 때가 많습니다. 물론 마음만 먹으면 하고 싶은 일만 골라서 할 수는 있지만, 그러려면 수입적인 면은 포기해야 합니다. 그렇게 일해서는 생계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전체 일정을 알려주고 시작하는 일도 있고 갑자기 요청되는 일도 있어서 언제 일이 올지 예측하기가 힘듭니다. 방송일이 정해져 있는 경우도 있어서 밤늦게까지 수정 작업을 요청받거나 주말에 일해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3. 노트북으로 카페에서 여유롭게 일할 수 있다.

의외로 이런 얘기를 자주 듣곤 합니다. 카페에서 노트북으로 여유롭게 일하는 게 많은 이들의 로망인가 봅니다. 저도 한때는 스트레스받으면 카페에서 기분 전환하며 일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일을 시작해 보니 쉽지가 않았습니다. 영상 번역 프로그램 자체가 무겁기도 하고, 노트북으로 자막 프로그램과 검색용 인터넷 화면을 동시에 띄우려니 일의 능률이 상당히 떨어졌습니다. 게다가 드라마든 영화든 한 편을 번역하는 데 필요한 물리적인 시간이 있어서 차라리 집에서 빨리 끝내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게 심적으로 더 여유롭더군요.


4. 생활 패턴

생활 패턴이 일반 직장인과는 달라서 괴로울 때가 많습니다. 저는 가족과 살고 있는데, 주말에 열심히 일을 하다 보면 가끔 거실에서 정겨운 웃음소리가 들릴 때가 있습니다. 작업할 때 이어폰을 껴서 집중하다 보면 소리가 잘 안 들리는데, 잠깐씩 웃음소리가 이어폰을 타고 들어올 때가 있죠. 그럴 때면 얼마나 재미있는 프로그램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만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그래서 모두가 잠든 새벽에 일할 때가 가장 집중력이 좋습니다. 프리랜서로 일을 시작하고 1년 동안은 거의 주말이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친구들과 약속이라도 잡으려고 하면 밤을 새워서라도 작업을 끝내놔야 주말에 만날 수 있었습니다. 보통 주말에 요청되는 작업이 많다 보니 약속을 잡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주말보다는 평일에 한가할 때가 많았죠. 바쁠 때는 평일과 주말의 개념이 아예 없지만요.


5. 휴가

저는 1년에 한두 번 정도 길게 휴가를 갑니다. 짧으면 2-3일, 길면 일주일 정도. 사실 이렇게 여유 있는 삶을 지향한 지 그리 오래되진 않았습니다. 주말에 쉬는 게 소원이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누가 강요하는 것도 아니고 일을 거절하면 얼마든지 주말에 시간을 낼 수가 있었죠. (일정이 정해진 프로젝트나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요.) 하지만 스스로 관리하기 때문에 더 일에 얽매이기가 쉽습니다. '조금만 더 하면 더 벌 수 있을 텐데...', '이번에 거절해서 일을 안 주면 어떡하지?'. 이런저런 불안한 생각이 들었죠. 일이 없어서 힘들었던 시절을 생각하면 이제 좀 살 만하다고 일을 거절하는 게 괜스레 자만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업무의 완급을 스스로 조절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다시금 느낍니다.


6. 건강 관리

무리하게 일정을 소화하다가 몸이 상할 때도 많습니다. 마감이 코앞인데 장염에 걸렸을 땐 정말 힘들었습니다. 병원에서 수액을 맞고 와서 일하는데,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러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이런저런 핑계로 마감을 지키지 못하면 결국 번역가의 신뢰도 문제로 이어집니다. 프리랜서는 몸이 자산이기에 평소에 더 건강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7.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리랜서?!

이야기를 쓰다 보니 프리랜서의 어두운 면만 부각해서 쓴 듯한 느낌이 듭니다. 물론 힘든 점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단점을 상쇄하는 장점도 많습니다. 다른 번역가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번역을 하는 게 참 좋습니다. 처음엔 마냥 좋기만 했는데 이젠 약간 애증의 관계가 더해졌달까요? 하하... 작업하면서 실수하진 않을까 늘 긴장하고, 쏟아지는 업무에 숨이 막힐 것 같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 자막을 통해 누군가가 새로운 작품을 재미있게 봤다고 할 땐 정말 뿌듯하고, 그 순간엔 온갖 힘든 기억도 다 잊어버리죠. 왜 인간을 망각의 동물이라고 하는지 이해가 됩니다. 잠도 못 자고 힘들 때면 이러다 쓰러지겠다 싶은데, 번역을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은 안 듭니다. 참 희한하죠. 그래서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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