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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정 Feb 01. 2021

일상생활

퇴원

  고열로 퇴원을 할 수가 없었다. 경과를 지켜보며 체력이 정상으로 돌아올 때까지 일주일 더 입원을 해야 했는데 무척이나 지루한 시간이었다. 맛없는 병원식을 먹어야 했고 병실 TV는 어른들의 취향에 맞는 아침드라마와 뉴스로 고정되어 있었다. 그때 당시 전국적인 돌풍을 일으켰던 텔레토비 친구들을 한동안 만날 수 없었다.

  병실에서의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말 많던 산모가 퇴원을 하게 되었다. 갈 때가 되니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사람 좋은 얼굴과 미소를 지으며 여기저기 인사를 했다. 입원 초기에 만났던 자연분만 산모가 퇴원할 때는 모두들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배웅해주었으나 이 산모에게는 다들 냉담했다. 그때와 분위기가 사뭇 다르자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반응이었는지 산모는 매우 당황하고 우울한 표정이었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지만 좁은 병실에서 더 이상의 분란은 없을 거라는 생각에 다들 안도했다.

  일주일의 시간이 흘러 어느덧 퇴원일이 다가왔다. 의사로부터 체온과 체력이 정상으로 돌아와 집에 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드디어 나의 팔에서 링거를 제거해도 되는 시간이 온 것이다. 화장실을 갈 때도, 환자복을 갈아입을 때도, 잠결에 뒤척일 때도, 음식을 먹기 위해 손을 사용해야 하는 잠깐의 시간에도 분신처럼 나를 따라다니며 나의 모든 행동에 제약을 주는 족쇄였다. 자유로운 두 손으로 혼자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서 일어나 침구를 정리했다. 간호사는 퇴원 이후에도 경과를 지켜보러 병원에 몇 번 와야 한다는 당부와 함께 수많은 약을 쥐어주었다.

  아빠 차를 타고 집으로 가면서 한동안 잊고 있었던 일상생활로의 복귀가 걱정되었다. 학교를 장기간 가지 못해 수업을 따라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고 체력이 아직 온전히 회복된 것이 아니기에 체육수업이나 견학과 같은 야외 활동을 무리 없이 참여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또한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고무줄놀이나 숨바꼭질 등 이전처럼 어울려 놀 수 있을지도 걱정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학교에 가지 못했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라 그동안의 사건사고가 매우 궁금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초등학교에서의 6년이라는 시간을 통틀어 가장 재미있는 시기가 바로 사춘기에 접어든 5, 6학년 시절이었다.

  이런 나의 걱정을 알았는지 엄마는 앞으로 학교 출석에 부담을 갖지 않아도 된다고 나를 안심시켰다. 예정된 입원 기간의 두 배나 더 병원 신세를 져야 했고 1년 사이에 두 번의 큰 수술을 받았던 터라 엄마도 걱정이 많았던 것 같다. 엄마는 아직 나의 몸이 완전히 회복된 것이 아니기에 퇴원을 했다고 하더라도 무리해서 학교에 출석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나 병원 입원 기간 이외의 결석에 대해서는 무단결석이 되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출석을 권장했던 것 같다. 대신 1교시부터 5, 6교시 끝날 때까지 모두 있지 않아도 되고 최소한의 시간만 수업에 참여하면 출석 인정이 된다고 알려줘서 2~3교시만 잠깐 수업을 듣고 나머지는 지각이나 조퇴 처리를 하고 몸 상태가 안 좋으면 언제든지 귀가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아침에 일어나서 등교를 해야 할 시간에 느긋하게 텔레토비를 본방 사수할 수 있었다. 맹장수술 때와는 다르게 퇴원 이후에도 혼자서 몸을 일으켜기가 힘들었고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하려면 시간이 배로 걸렸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서 느긋한 게 아니라 정말 느리게 등교를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옷까지 다 챙겨 입고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서 학교까지 걸어가는 시간은 평소의 2배 이상이 걸렸다. 아스팔트 바닥을 걸을 때마다 뱃속의 장기가 울리는 느낌이 들어 평소처럼 걸을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느릿느릿 육교를 건너 최대한 몸에 무리가 가지 않게 학교 정문을 들어서면 끝이 보이지 않는 운동장이 나를 반겨주었다. 이 넓은 운동장을 가로질러야 학교 건물로 들어갈 수 있었기에 한숨이 나왔다. 평소 등굣길의 운동장은 수많은 전교생이 같은 시간에 함께 가로질러가던 공간이라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나 혼자 걸어가는 운동장은 공허하고 외로웠다.

  천천히 운동장을 가로질러 걷고 있었는데 반대편에서 다른 반 친구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쉬는 시간이라 문구점에 가던 길이었던 것 같은데 항상 같은 공간에 있던 친구가 나와 다른 방향에서 걸어오는 것을 마주하는 광경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오묘한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 친구가 나를 향해 빠르게 걸어와 반갑게 인사를 했고 나도 빠르게 걸을 수는 없었으나 반갑게 인사를 했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는 너무 반가웠다. 그런데 내 등에 책가방이 있는 것을 보고 친구가 이상했는지 왜 가방을 메고 있냐고 물었다. 다른 반 친구들은 내가 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을 모르기에 또다시 설명을 해야 했다. 배가 아파서 또 수술을 했고 회복이 완전히 되지 않아 학교를 일찍 올 수 없었던 구구절절한 사연과 함께 아까 네가 뛰어올 때 나도 같이 뛰고 싶었지만 배가 울려서 빨리 걸을 수 없었다는 속사정까지 이야기하자 친구는 많이 놀란 것 같았다. 수술을 할 정도면 심각한 것 같은데 지금은 괜찮냐며 한참을 걱정해주었고 나는 이미 지각을 한 상태라 빨리 교실로 들어가야 출석 인정이 되기 때문에 가봐야 하니 나중에 쉬는 시간에 복도에서 만나 자세히 이야기하자고 말했다. 친구도 문구점에 가던 길이었던 터라 알겠다고 하면서 나중에 또 보자고 인사하고 헤어졌다.

  친구를 보내고 다시 넓은 운동장을 가로질러 걸었다. 뒤를 돌아 가야 할 거리를 계산해보니 이제 운동장의 1/3 정도 왔고 앞으로 2/3를 더 가야 했다. 가야 할 길이 막막했다. 땅을 보며 걷다 보니 또 한 무리의 다른 반 친구들이 반대쪽에서 나를 보고 뛰어왔다. 이 친구들도 나를 몹시 반갑게 맞아주었으나 이 시간에 왜 가방을 메고 있는지 궁금해했다. 똑같은 이야기를 다시 반복해야 했고 앞서 만난 친구가 생각나 너희도 문구점에 준비물 사러 가는 길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기에 쉬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우선 빨리 다녀오고 나머지 이야기는 쉬는 시간에 만나서 하자고 했다. 본인들의 경로를 상기시켜주자 친구들은 깜빡했다며 다급히 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중앙현관으로 들어갔다. 중앙현관은 교장 선생님만 이용하는 계단이다. 6년 동안 매 학기 초마다 각 반의 담임선생님들은 학생들이 교장 선생님의 눈에 띄어 본인이 불려 가는 불상사가 없도록 중앙현관을 이용하지 못하게 철저히 교육시켰다. 나 역시 중앙현관은 이용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상황이 특수했다. 정문에서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실까지 최단 거리로 이동하려면 중앙현관을 이용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운동장의 모래 바닥을 지나 시멘트 바닥을 걸으니 배 속 장기들의 울림이 더 심해졌기에 도저히 우측 현관을 경유할 수 없었다. 등교 시간에 중앙현관을 이용했다면 선생님에게 발각되어 제재를 당했겠지만, 지금은 등교 시간이 아니었기에 어느 누구도 마주치지 않고 편하게 교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교실에 들어가니 쉬는 시간이었고 친구들은 모두 시끄럽게 장난치고 떠들고 있었다. 내가 책상에 앉자 다들 반갑게 맞아주었고 작년에도 한 차례 수술을 받았던 터라 크게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궁금해하는 것 없이 내 몸이 회복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만 물었다. 하도 오랜만에 학교를 가서인지 내가 누군지 모르는 척을 하며 누구냐는 등, 전학생이냐는 등의 장난을 치는 친구들도 있었으나 나 역시 이렇게 시끌벅적하고 생기 넘치는 분위기가 너무나도 오랜만이라 약간은 낯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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