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실
같은 반 친구들은 아무런 편견 없이 나를 바라봐주었으나 어른들의 시선은 달랐다. 부모님이 질병 결석 사유에 대한 수술 관련 증빙서류를 제출한 것 같은데 진료과가 산부인과인 것을 가지고 선생님들 사이에서 말이 돌았던 것 같다. 나이가 지긋한 임시 담임선생님이 나를 대하는 태도도 좋지 않았고 나에게 남자 친구가 있는지에 대해 친구들에게 캐묻고 다녔던 것 같은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때까지 나는 남자 친구를 한 번도 사귀어본 적이 없었다. 물론 성숙한 친구들 중에는 연애를 하는 부류도 있었으나 극소수였고 나는 거기에 해당되지 않았다.
임시 담임선생님은 곧 신규 담임선생님이 발령받아 올 예정이라고 했다. 교대를 갓 졸업하고 임용고사를 합격해 발령받은 젊은 여자 선생님이 부임하면서 임시 담임선생님은 학교를 떠났다. 벌써 세 번째 담임선생님이다. 담임선생님이 바뀌면서 나의 몸상태에 대해 다시 설명을 해야 했다.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학교를 정상 등교 시간에 출석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새로 부임한 담임선생님은 처음에는 나를 편견 없이 바라봐주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반 선생님들의 의심 섞인 무성한 말들을 들으며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루는 나를 수업시간에 조용히 복도로 불렀다. 본인은 이제 막 부임해서 잘 몰랐는데 네가 산부인과 수술을 받았던 것에 대해 다른 선생님들이 이상하게 생각한다며 혹시 남자 친구가 있었는지와 임신과 관련된 수술이 아닌지에 대해 물었다. 어린 내가 듣기에도 악의가 있어서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정말 다른 사람들의 질문에 시달리다가 허심탄회하게 직접 물어본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당시 미혼모와 임신중절에 대한 것들이 사회적으로 이슈였고 산부인과에서 막말 산모를 겪어보았기에 선생님이 한 말이 무슨 의미인지를 한 번에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남자 친구 여부는 다른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알게 되겠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고 생리를 하지 않기 때문에 임신은 불가능하다고 대답했다. 선생님은 어른의 관점에서 생리를 하지 않는 기간에는 임신이 가능하다고 나에게 설명을 해주었는데 나는 웃으면서 아직 초경을 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그제서야 선생님이 멋쩍어하면서 다른 반 선생님들이 왜들 저러는지 모르겠다고 본인의 신세한탄을 조금 했던 것 같다. 이제 막 부임해서 업무적으로도 정신이 없었을 거고 교무실에서 같이 생활하는 사람들은 모두 하늘 같은 선배였을 터라 그 사람들의 말을 무시할 수 없는 입장인 것을 지금은 이해하지만 병원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보호받지 못하는 나의 상황이 너무나 서글펐다. 담임선생님에게 다른 반 선생님들이 왜 나의 수술력에 대해 왈가왈부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으니 궁금한 것이 있으면 우리 부모님께 직접 연락을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딱 잘라 말했다. 우리 부모님의 말도 의심스럽다면 병원에 있는 의사에게 찾아 물어도 상관없으니 나에게 다시는 이런 불쾌한 말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수술받은 병원 이름도 말해주었다. 병원에서도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해서 부모님께서는 회복할 때까지 학교 출석을 원하지 않았으나 출석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등교한 상태라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고 계속 이렇게 나의 행실에 대해 의심한다면 부모님을 대동하여 교장선생님께 가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자 담임선생님께서 머뭇 거리면서 말했다.
“교장선생님도 이상하게 생각하셔...”
여기서 물러서면 졸업할 때까지 근거 없는 헛소문과 어른들의 뒷이야기에 시달려야 할 게 뻔하다는 것을 너무 잘 알았기에 나도 한마디 했다.
“그렇다면 교육청 장학사를 찾아가겠어요. 학교에서 담임선생님도, 교장선생님도 저를 의심하시는데 저는 너무 억울합니다. 이미 수술 관련 기록도 학교에 다 제출했고 거기에 제가 어떤 수술을 받았는지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을 텐데도 이렇게 근거 없는 말로 저를 믿지 않으시니 제 수술 관련 기록과 의사 선생님의 진단서를 가지고 교육청으로 가겠습니다.”
담임선생님은 크게 당황한 것 같았다. 그냥 확인 차 물어본 것이니 그렇게 할 거까진 없다고 약간 언성을 높였다. 그러고 나서 머뭇거리며 이제 정상 등교를 하는 것이 어떤지 넌지시 물었다. 내가 등교 시간이 아닌 시간에 학교에 오는 것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 너무 띈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몸상태로 이른 아침에 다른 학생들처럼 정문에서 등교지도를 받으면서 학교를 가는 것은 무리였다. 그때 당시 우리 학교는 등교를 할 때 학교 근처의 쓰레기 5개를 주워 선생님이 들고 있는 쓰레기봉투에 넣은 후에야 교문을 들어설 수 있었다. 물론 나도 다른 친구들과 같은 시간에 여럿이서 어울리며 시끌벅적하게 등교하고 싶었으나 현실이 그럴 수 없는 것뿐이었다. 이러한 사정을 살면서 한 번도 아파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설명해서 이해시켜야 했기에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에 대해 차분히 생각했다. 걸을 때마다 온몸의 장기가 흔들리는 것, 아침에 세수를 빨리 할 수도 없고 머리를 감을 때 앞으로 상체를 기울이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과 친구들이 나에게 장난을 치는 것도 버겁고 체육 시간에 함께 어울리지 못하고 벤치에 가만히 앉아있어야 하는 것도 내 나름의 고충임을 말했다. 우리 집에서는 무단결석처리가 되더라도 등교를 하지 않기를 원했으나 내가 우겨서 등교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띈다고 하니 몸상태를 봐서 최대한 노력해보겠다고 대답했다.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왔던 일상생활에 브레이크가 걸리는 상황을 건강한 사람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선생님도 본인이 건강하기 때문에 거기까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음을 나에게 시인했다. 나는 선생님의 말을 이해했다. 나 역시 맹장 수술을 했던 경험이 있기에 이번 수술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았으나 몸상태와 회복력이 이전 수술과 많이 달라 당황했기에 거기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는 상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내 경험상 부인과 수술은 절대 가벼운 수술이 아니다. 담임선생님은 그날 이후로 다시는 나에게 수술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