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를 맡고 처음 3개월 동안은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일을 해야 했다. 점심시간에 식사를 걸러야 그나마 셔틀버스 야간 운영시간에 맞춰 퇴근할 수 있었다. 몸이 점점 안 좋아지는 게 느껴졌지만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조직 내의 모든 구성원이 나같이 업무량이 많아서 함께 야근을 하는 분위기라면 위안이 되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퇴근 시간 전에 가방을 싸놓고 시계만 쳐다보다가 정시에 지문을 찍고 가버렸다. 동료들은 업무시간에도 자리를 비우는 경우가 허다했고 점심시간에도 멀리 나갔다가 1시간이 훌쩍 넘어 들어오기도 했다. 오히려 너무 일이 없어서 가만히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 괴로워 보일 때도 있었다.
어느 날 점심시간을 활용해 미드를 보면서 영어공부를 같이 하는 모임에 들어오라고 권유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인사업무를 맡게 되면서 조직 내 다양한 구성원들이 의도적으로 접근해서 잘해주는 경우를 이미 수없이 경험했다. 회사 내에서 불필요한 사교모임에는 끼어들지 않는 것이 업무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이롭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나 단순히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니라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진정으로 함께할 수가 없었다. 일이 많아서 점심시간 한 시간을 훌쩍 넘길 수밖에 없는 모임은 낄 수 없다고 말하는 나의 사정을 조직 내에서 이해하는 구성원은 아무도 없었다.
5개월 정도 근무를 했을 때 조직 구성원 간의 갈등의 골이 생각보다 깊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전 직장에서 경영난으로 인한 분열을 한차례 겪어보았기에 이에 대한 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삶에 대한 경험을 하면 할수록 가정이건 사회에서건 어느 조직에서나 사람은 매우 중요한 자원이고 구성원의 인성은 객관적인 능력치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들이 더러 있었다.
조직 내에서 여러 비위 행위에 연루된 임원에게 징계성 인사조치가 내려졌고 당사자와 관련된 일부 구성원이 그에 대한 반발로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노조의 존재 이유인 노동자의 사회·경제적 지위향상 도모에는 크게 관심이 없어 보였고 매사가 싸우자는 식이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기관과 관련된 보복성 기사들을 확인해야 했고 사무실에 들어가서는 벽에 붙은 대자보와 책상 위에 놓여있는 안내문을 읽은 뒤 컴퓨터를 켜면 포털에 게시한 글과 이메일로 전송한 각종 메시지를 확인해야 했다. 나는 이미 한 차례 경험을 해보아서 그런지 충격을 받거나 크게 놀라지 않았으나 관리자는 많이 놀란 것 같았다. 이로 인해 신체적인 백신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마음의 감정 백신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어쩌다 보니 인사 업무를 맡고 있다는 이유로 새롭게 추가된 노무 업무까지 담당하게 되었다. 노무 업무는 법적인 지식을 필요로 했고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노사협의회법 등 관련법과 각종 시행령 및 시행규칙도 공부해야 했다. 업무량은 계속해서 늘어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정싸움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업무 스트레스 이상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 치로 미루어보아 지금 속한 조직에서 매우 안 좋게 퇴사할 거라는 예측이 가능했지만 근무하는 동안은 최선을 다해보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