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이후에도 각종 분쟁들로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아졌다. 새벽까지 타 기관 분쟁 사례들과 판례를 찾아봐야 했고 관련법의 개정이 향후 기관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분석해야 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찾아서 해야 할 일들이 많아졌다. 어느 날 늦은 저녁이었다.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으로 특정 사례를 찾고 있었던 것 같은데 무엇에 이끌렸는지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이 나를 한 블로그로 인도했다.
학창 시절부터 막연하게 동경했던 직업이 있었다. 나는 해당 학과를 전공하지 않았기에 기억 속 저편 어딘가에 까마득히 잊혀가던 포기한 것들 중에 하나였다. 블로그에서는 토요일 하루만 투자해 해당 전공의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기억 저편 어딘가에 고이 간직했던 나의 꿈은 나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고 그날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토요일 하루도 시간을 내기 힘든 나의 현실의 일상 속에서 수많은 고민을 해야 했다.
대외적으로 비밀리에 진행하는 각종 업무를 맡고 있었기에 직장 내에서 어떤 성과를 거두었는지 공개적으로 밝힐 수 없으나 나보다 훨씬 경력이 많은 고위 관리자에게 반하는 의견도 밀고 나갈 수 있을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고 있었다. 타 직원들이 순환보직으로 조직 내 모든 부서를 한 바퀴 돌 때에도 나는 붙박이처럼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었다. 모든 구성원들이 그에 대해 엄청난 불만을 품고 있었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그만두지 않는 이상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업무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는 것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공감할 수 없다.
졸업에 대한 확신은 없었지만 편입학 원서를 냈고 이때부터 비밀리에 대학생과 직장인의 이중생활이 시작되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서 모두가 원하는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언젠가 그만두게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시작할 수 있었다. 일주일에 하루 수업시간에 출석해서 앉아있는 것도 힘에 부쳤기 때문에 학점은 시시비비(CCBB)를 가리는 정도에 만족해야 했다. 직장 내에서 온갖 암투와 모함을 견디며 공부를 병행했기 때문에 과제나 시험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있어야 했기에 척추는 점차 망가져갔다. 처음에는 허리가 아프기 시작하더니 통증이 목과 어깨까지 올라갔다. 나중에는 신경이 눌려 손가락까지 저리기 시작했다. 만성피로에 시달렸으며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 운동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골반 근육이 점차 굳어져가는 것이 느껴졌고 전신에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않았다. 자리에 앉아있는 것도 힘들 정도로 배가 점차 불러오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들이 내가 밤늦게까지 사무실에 혼자 남아서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해했으나 업무를 분담할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그냥 자신들이 접근할 수 없는 비공개 5호, 6호 보안문서에 담긴 내용이 무엇인지 궁금해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