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에서 어떤 사건이 있었고 드디어 내가 기다리던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사직서를 제출했다. 모두가 의아해했으며 내가 처리했던 엄청난 양의 업무를 본인의 업적인 양 생색을 내던 사람들은 당황해했다. 나로 인해 조직 구성원의 지위가 향상될 것이라 기대했던 사람들은 실망했다. 스카우트 제의를 공개적으로 해온 기관도 있었기에 내가 어디에 얼마를 받고 어떤 조건으로 가는지가 모두의 관심사였다. 서로 이야기 몇 번 나눠본 적 없던 타 부서 직원이 갑작스럽게 식사나 차를 같이 하자고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으며 내가 이직하는 기관으로 본인도 데려가 줄 수 있는지 묻는 사람도 있었다. 몸이 안 좋아 건강상의 이유로 퇴사한다고 아무리 말해도 조금 쉬다가 다른데 입사할 거 아니냐며 떠보기도 했다.
나이가 많고 나보다 오래 살았다고 해서 모두가 어른은 아니다. 타인의 처지에 완전히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인간의 태생적인 한계일 수밖에 없으나 아랫사람의 고통을 전혀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은 나이를 먹어도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없다.
스스로에게 자가진단을 내린 결과 나는 최소 6개월은 쉬어야 했다. 강제로 쉬지 않으면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는 성격이기에 사직서를 낼 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작정이었으나 적지 않은 나이에 집에 며칠 있어보니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편입생 신분으로 졸업까지 한 학기가 남아있었기에 일단은 학업에 열중하기로 했다. 20대 대학생 시절에 하지 못했던 대외활동의 일환으로 각종 공모전과 서포터즈 활동에 참여했고 여러 외부 교육을 수강하여 민간자격증도 다수 취득했다.
방학 기간에는 계절 학기 수업을 수강하면서 집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에 위치한 공공기관에서 한 달 동안 단기 사무보조 계약직원으로 근무했다. 한 달 동안 주 4일을 근무하는 시간제 근로자 1명 채용에 수많은 지원자가 몰렸고 면접전형에서 5대 1의 쟁쟁한 경쟁자들을 뚫고 합격하게 되었다. 시급으로 임금을 지급하는 일용근로소득자 채용에도 이렇게 젊고 유능한 지원자가 많이 몰린다는 사실에 취업 시장의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다.
사무 보조를 하면서 단순 반복적인 노동이 정신건강에 이롭다는 사실을 체험할 수 있었다. 보잘것없는 하찮은 업무였지만 능숙한 사무 활용능력으로 처리시간을 단축시켰고 작년 대비 본인이 투입해야 할 시간과 노력을 덜었다고 좋아하시는 부장님과 차장님의 반응에 나 역시 기분이 좋았다. 조직 구성들의 역할에 맞게 부여한 업무를 개개인이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거나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물로 도출되었을 때의 난처함을 잘 알기에 최대한 신속하고 정확하게 업무를 처리하려 노력했다. 잠시 머물다 갈 단기계약직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서 그런지 조직 구성원들의 성향이 전체적으로 유했고 인품도 훌륭해 보였다.
약속된 시간이 도래했고 계약기간 만료로 퇴사하게 되었다. 시에서 정한 생활임금이 나의 시급이었지만 한 달 아르바이트 치고는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자진 퇴사로 받을 수 없었던 실업급여도 고용보험 납입기간을 합산하여 수급조건을 만족할 수 있게 되었고 마지막 학기 등록금과 교재비 및 생활비도 충당할 수 있게 되었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모든 건강상태가 바닥을 치고 자존감이 지하 밑바닥까지 떨어졌을 때 실업급여는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위 있는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