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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정 May 25. 2021

후행사건

간헐적 통증

  아침에 눈을 떠 일어나자마자 다시 스르르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머리가 핑 돌았고 몹시 어지러웠다. 출근을 해야 해서 정신을 가다듬고 땅을 짚은 뒤 일어났다. 좁은 집에서 화장실까지 걸어가는데 걸음을 똑바로 걸을 수가 없었다. 이런 날들이 반복되었고 하루는 집 밖을 나서 2분 정도 가다가 극도의 어지럼증으로 집으로 돌아온 적도 있었다. 동네 내과에서는 큰 병원을 가보는 것이 좋겠다고 하면서 업무를 줄이라고 했다. 어디 병원의 어떤 과를 찾아가야 할지도 막막했지만 평일 9시부터 5시까지 운영하는 대학병원의 진료시간은 도저히 맞출 수가 없었다. 딱히 통증이 있었던 것이 아니므로 참다가 몸을 일으키지 못할 정도로 어지러운 날은 연가를 사용했다. 면역력이 떨어졌는지 감기에 자주 걸렸고 편도선도 자주 부었으며 월경을 두 번 하는 달도 발생했다. 

  점심시간마다 사내 휘트니스에 갔다. 어지러움이 심했기에 격렬한 운동을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잠깐이라도 사우나 온탕에 들어가 몸을 담그는 것이 전신의 혈액순환을 도와 증상을 완화시키는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탕에 들어가기 힘들 정도의 극심한 피로에 시달릴 때는 탈의실에 수건을 깔고 잠시 누워있다 가곤 했다. 이런 생활이 수개월째 지속되었고 체력이 버텨주지 못할 정도로 한계에 이르렀는지 외형상으로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허리와 어깨가 굽었고 목이 일자로 섰으며 겉옷은 물론이고 속옷도 맞지 않을 정도로 살이 쪘다. 복부가 팽창해서 숨쉬기 곤란할 정도였는데 하루 종일 책상 의자에 가만히 앉아 복부를 압박하는 것은 엄청난 고문이었다. 

  손에 쥐고 있던 것들을 하나하나 내려놓아야 할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내가 기획했던 프로젝트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가고 있었고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으며 우려했던 후행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언제가 적당할지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겠으나 나는 그 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집에서 책상에 앉아 여유롭게 컴퓨터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갑자기 오른쪽 옆구리 뒤 허리가 찌르는 듯이 아팠다. 언젠가 경험한 적이 있는 통증이었다. 20여 년 전 초등학생 시절 나를 응급실에서 산부인과로 향하게 했던 당황스러운 통증이 또 찾아왔다. 극심한 통증은 아니었으나 그때의 기억이 나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수술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고 일시적인 통증일 수 있으니 일단 참아보기로 했다. 몇 시간 내에 통증은 잦아들었다. 경험에 의하면 이런 식으로 통증이 일정 간격을 두고 찾아오다가 주기가 짧아지면서 극심한 고통을 동반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집 근처 산부인과가 있는 대학병원을 예약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참을 고민했으나 진료의 결말은 수술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나의 인내심을 믿고 조금 더 참아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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