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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정 Mar 28. 2021

구조조정

인사담당자

  안정적이라고 생각했던 직장의 미래는 불투명해졌다.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이 최소 4~5년 동안 지속될 거고 그 이후에도 구성원의 정년이 보장받을 수 있을지는 불확실했다. 나는 관리자는 아니었으나 관리 직무를 맡고 있다는 이유로 생각지도 못한 각종 감사와 알 수 없는 독촉에 시달려야 했다. 외부의 감시뿐만 아니라 내부에서의 분열도 심해져 언론사들을 이용해 서로의 치부를 흘려가며 언론플레이를 하기도 했다. 업무가 많은 것은 참고 견딜 수 있었으나 순진한 얼굴을 하고 나에게 접근하여 다른 사람의 약점을 캐내려고 안달이 난 사람들의 밑바닥을 보는 것은 참기 힘들었다. 수많은 사건과 사고의 소용돌이가 지나갔고 기관 측에서는 임금 지연지급이 장기간 이어질 것이므로 자연스럽게 다른 기관으로 이직하는 구성원들이 발생할 것이기에 지금 당장 구조조정은 하지 않겠으나 이후에도 정원 조정 인원만큼의 퇴직률이 발생하지 않을 시에는 구조조정을 단행하겠다고 발표했다. 발표 이후에도 이직이나 퇴직을 하는 구성원은 거의 없었다. 

  나의 직무는 구성원들의 인사를 담당하는 것이었다. 구성원들의 입사 일자와 직급, 직무, 호봉 등의 인사기록을 가져오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구조조정의 전초작업이었다. 기관을 상대로 언론플레이를 했던 구성원들에 대한 징계위원회도 소집되었다. 위기의 상황에서 혼자 살아보겠다고 근거 없는 소문으로 기관을 벼랑 끝의 상황으로 몰고 간 사람들이 괘씸하기도 하였으나 한편으로는 개도 밥그릇을 뺏기면 주인을 문다는데 사람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징계대상 리스트를 작성해서 보고하는 것도 나의 일이었으나 한 줄도 기입할 수가 없었다. 내가 하는 대부분의 업무가 대외비라 힘들다고 누구에게도 털어놓고 말할 수 없는 것도 고충이었다. 극심한 업무 스트레스를 경험했고 살이 계속 빠졌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여러 가지를 놓고 고민한 끝에 퇴사를 하기로 결심했다. 많은 사람들이 퇴사를 뜯어말렸으나 더 이상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퇴사를 하면서 다시는 사람과 돈을 관리하는 총무 업무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직을 하여 사업 관련 부서에서 업무를 하게 되었으나 얼마 되지 않아 또다시 총무팀에서 인사업무를 맡게 되었다. 이직한 기관의 재정 상태는 양호한 정도가 아니라 매우 안정적이었으나 조직 내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겉보기에는 안정적으로 보였으나 구성원들 개개인의 분열과 감정의 골이 깊어 보였으며 사무실에서 서로에게 물건을 집어던지지는 않았으나 그 직전 단계에서 고성이 오고 가는 경우가 흔했다. 별거 아닌 일로 서로 트집을 잡아가며 싸우기 일쑤였고 여럿이 편을 모아 만만해 보이는 사람에게 공개적으로 인격 모독을 하기도 했다. 가장 기본적인 사람에 대한 예의가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기관의 브랜드 네임을 들었을 때 떠오르는 느낌과 매치되지 않을 정도로 상상하기 힘든 저급한 수준의 인력 구성이었다. 적은 나이가 아닌지라 지금이라도 빨리 그만두고 오래 다닐 수 있는 다른 직장을 알아봐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다. 니 책임 내 책임을 운운하며 서로 업무를 하지 않으려고 했기에 떠밀려온 업무만 산더미였다. 일하려 하지 않는 구성원들이 모인 조직에서 산더미 같은 업무를 떠맡으면서 이직 준비까지 하기에는 불가능했기에 3개월 동안 진지하게 퇴사를 고민했으나 내가 이 기관에서 인사업무를 맡게 된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명확하게 무엇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일종의 운명 같은 것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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