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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정 Mar 01. 2021

반쪼가리 여자

종족보존

  그럴듯해 보이는 안정적인 직장에 다닌다는 이유로 여기저기서 이성과의 소개를 주선해준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친구들은 물론이고 부모님을 통해서 소개받고 싶다고 연락이 오는 경우도 허다했으며 직장에서는 나이가 지긋하신 윗분께서 따로 사무실로 불러 부모의 직업과 형제 관계 등 간단한 호구조사를 마친 뒤 인명 수첩을 꺼내 들고 본인의 인맥을 자랑하기나 하듯 다양한 사회적 관계망으로 얽힌 목록을 보여주기도 했다. 나를 좋게 봐주신 분들에게 결혼과 배우자에 대해 한참 동안의 긴 설교를 들어야 했으며 거절하기 난감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른들이 하나같이 그들의 연륜만큼이나 긴 세월의 경험에서 얻은 만고불변의 진리는 ‘사람’은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자 ‘의무’이며 살면서 그보다 더 기쁘고도 중요한 일은 없다는 것이다.

  나는 현재까지 평생을 같이 살아온 가족인 나의 부모의 결혼생활을 보면서 단 한 번도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으며 가장 가까워야 할 부부가 남보다 못할 때도 많다는 것을 체감하는 순간이 더러 있었다. 또한 부부의 불화로 인해 자식들이 겪게 되는 고통과 슬픔이 얼마나 큰 불행으로 다가오는지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결혼에 대한 환상이 전혀 없었다. 인생에 있어 결혼이란 반드시 해야만 하는 미션 같은 느낌보다는 여러 선택지 중의 하나에 불과하며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지만 굳이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결혼은 필수 불가결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음에도 아이는 가져보고 싶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던 것 같다. 만약 내가 결혼을 한다면 그것은 아이를 갖고 싶기 때문이고 아이에게는 나 혼자 어떻게 해도 채워줄 수 없는 아빠의 영역이 분명히 존재하기에 일종의 필요충분조건이라 판단했다. 그러나 나는 유년 시절부터 현재까지 여러 병원의 장기고객일 정도로 기초체력 상태가 양호하지 못했으며 최근에 오른쪽 난소도 안녕하지 못하다고 통보받은 반쪼가리 여자에 불과했다. 아무리 의학적으로 임신이 가능한 상태라고 하더라도 아이를 가질 수 있는지 시도해보지 않고서는 스스로도 확신하기 힘들었다.

  직장에서 일로 만난 사람에게 누군가를 소개받는다는 것은 잘되면 다행이지만 반대의 상황에서는 엄청난 불편함과 뒷말을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여기에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임신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더해져 어른들의 설교를 듣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이러한 속사정을 누군가에게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을 수 있다면 좋겠으나 타인에게 불필요한 일신상의 개인정보를 유출하지 않는 것이 심신에 이롭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나의 미래에 대한 지나친 어른들의 관심과 걱정에 대해 차분하게 끝까지 이야기를 들은 뒤 난처하지만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최대한 정중하게 거절해야만 했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하지만 제가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연장자들의 패턴이 늘 그러하듯이 처음에는 설득도 해보고 타일러도 보지만 끝까지 나의 뜻이 꺾이지 않을 때는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고 다그치면서 화를 냈다. 나는 개인의 연애사까지 관여하며 시종일관 본인의 수첩에 얽히고설켜 빼곡하게 적혀있는 명부 중에서 누군가를 만나라고 강요하는 인류의 종족 보존에 대한 사명감이 투철한 어른들의 오지랖에도 휘말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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