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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정 Feb 23. 2021

산부인과

소화불량

  조직이 경영악화로 재정난을 겪으면서 각종 운영비용 집행에 차질이 생기기 시작했다. 일반 지출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면 인건비 집행에 브레이크가 걸리는 건 시간문제라는 사실은 불 보듯 뻔하다. 위기가 닥치면 사람들은 편을 나누게 되고 양측 모두 자신이 정당하다는 이율배반적인 주장을 하게 된다. 경영권 승계를 둘러싸고 사태에 대한 책임을 서로에게 전가하는 양측 경영권자들에게 구성원들은 줄을 서기 시작했다. 서로에 대한 반목과 모함을 통해 승자에게 빌붙어 자신의 자리를 보전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날들이 수개월간 지속되었고 앞으로 몇 년 동안 유지될 거라는 기관장의 발표가 있었다. 사태가 좀처럼 수습될 것 같지 않았고 구성원들의 불만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나는 수많은 사람의 인사와 급여를 담당하고 있었다. 어쩌다 이러한 사태에 이르게 되었는지에 대해 확인하러 사무실로 찾아오는 다양한 구성원들을 상대해야 했으며 관련 전화를 하루에도 수십 통씩 응대해야 했다. 외부에 출장이라도 나가는 날에는 휴대전화에 불이 났으며 전화를 받지 못했을 경우에는 출장지인 외부기관으로 전화해서 나를 찾는 당황스러운 사건도 있었다. 누구나 조직 내에서 자신들의 지위가 안전하게 보전이 되는지 궁금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나 역시 경영권자가 아니었기에 공식적인 발표 이외에 재정 상태가 이렇게 된 연유와 향후 대응 방안에 대해 상세하게 알지 못하는 일개 직원에 불과했다.

  전철에서 내려 역에서부터 직장 건물을 보면서 걸어가는 출근길은 지옥으로 걸어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주위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내가 처한 현실에 숨이 막혀오고 가슴이 답답했다. 입맛도 없고 소화가 잘 되지 않았다. 스트레스성 위염일 거라 짐작하고 동네 대학병원에서 위장 내시경을 받았다. 염증이 있기는 하지만 크게 문제 될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수개월의 약을 처방받아 먹었으나 그다지 차도가 없었다. 속이 더부룩한 것과는 별개로 아랫배도 묵직하게 불러왔다. 단순 변비로 치부하려 했으나 쾌변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찝찝함이 남아있었다. 한동안 잊고 살았던 나의 수술력과 6개월에 한 번씩 받아야 한다던 정기검진이 떠오름과 동시에 산부인과에 가야 한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나를 괴롭혔다.

  복부 통증은 없었으나 원인을 알 수 없는 소화불량으로 산부인과 검진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어느 병원으로 갈 것인지에 대해 수많은 고민을 했다. 지역 내 여의사가 있는 병원을 찾아보니 동네 1차 병원 하나가 있었다. 간판은 산부인과 타이틀을 내걸고 있었으나 주력하고 있는 분야는 피부과 레이저 시술인 듯했다. 보호자 없이 혼자 산부인과 진료는 처음이었고 수술력이 있었기에 남자 전공의가 있는 동네 대학병원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성인이 되어 처음으로 산부인과에 가게 되었다.

  초진이었기에 초음파 전에 진료를 먼저 보았는데 진료실에서 의사가 나에게 대뜸 반말을 했다. 의사의 나이가 적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환자에게 반말로 진료하는 것에서 신뢰가 떨어졌다. 보통은 수술을 한 의사에게 추적검사를 받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수술력이 있는 환자를 꺼려하는 것 같았다. 이 질환은 재발률이 높아 재수술을 받는 경우도 흔한데 자신은 다른 의사가 열어본 환자는 수술하지 않는다고 했다. 살면서 여러 종류의 다양한 병원을 많이 다녀 보았기에 의료진의 생명존중에 대한 사명감에 큰 기대감이 없었고 그들도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수술했던 병원은 거리상으로 멀어 통원이 힘들고 수술받은 지 10년이 훨씬 더 넘어 집도의는 현재 근무를 하고 있지 않아 가까운 병원으로 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의사에게 구구절절하게 병원 방문 사연을 설명하게 되어 황당했지만 유명한 병원은 예약 잡기도 힘들고 대기시간이 길어 방문이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수술받는 것이 아닌 이상 가까운 병원에서 초음파 진료만 보는 것은 괜찮을 것이라 판단했다.

  초음파실로 들어갔다. 성경험 유무를 묻더니 항문으로 초음파를 봐야 한다고 했다. 초등학생 시절에는 복부초음파만 했었는데 항문초음파가 추가되어 당황스러웠다. 항문으로 초음파 기계가 잘 들어가지 않아 매우 아팠고 눈물이 찔끔 났다. 살면서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굴욕과 불쾌함을 경험했다. 초음파 이후에 다시 진료실로 들어갔을 때도 의사는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초음파 사진을 보여주면서 자세히 설명해 줄 거라 기대했는데 내 초음파 사진을 나도 볼 수 없었다. 의사 혼자 한참 화면을 보았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한숨을 푹푹 내쉬기에 심각한 상황인가 싶어 걱정이 되었다. 의사는 한참 뒤 수술받은 병원 이름을 물었다. 어디라고 말을 하자 그 병원은 가지 말라고 했다. 오른쪽 난소를 많이 도려내서 거의 남아있지 않는 상태라고 했다.

  갑자기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오른쪽 나팔관 옆의 혹을 제거한 거라 나팔관은 손상이 있었으나 난소는 멀쩡하다고 알고 있었는데 오른쪽 난소를 “도려냈다”라고 표현하니 내 멘탈의 일부가 털려나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확실한가요?”

  어릴 때이기는 하지만 나팔관 옆이고 난소는 건드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재차 물었다. 의사는 초음파상으로 오른쪽 난소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의사가 무슨 말을 계속했던 것 같은데 충격으로 숨이 쉬어지지 않아 더 이상 듣고 있기가 힘들었다. 의사의 말을 끊었다.

  “괜찮은지, 안 괜찮은지,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의 이상 여부만 알려주시면 될 것 같아요.”

  의사도 한참 생각을 하더니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크게 이상은 없으나 6개월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결론을 들었으니 빨리 자리를 벗어나고 싶어졌다. 알았다고 대충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 일어서서 나가려고 문고리를 잡았다.

  “또 와.”

  뒤돌아선 내 등 뒤에 꽂힌 의사의 말이다. 나의 관자놀이에 혈압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심각한 저혈압이라 살면서 혈압이 올라가는 느낌을 느껴본 적이 몇 번 없었고 웬만한 일로는 화도 잘 내지 않았다. 환자에게 병원에 다시 오라는 저주를 아무렇지 않게 퍼붓는 산부인과는 내가 다녀 본 모든 진료과를 통틀어서 나의 기분을 제일 불쾌하게 했고 이 의사는 최악이었다.

  산부인과 방문으로 인해 충격을 크게 받았고 기분이 매우 나빴으나 나의 오른쪽 난소가 온전한지의 여부를 재차 확인할 길이 없었다. 초음파로 뱃속의 내부 상태를 완벽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타 병원에 가서 다시 확인해보는 것도 겁이 났다. 의사의 오진이나 초음파 오판이 아니라 정말 오른쪽 난소가 없을까 봐 겁이 나서 두려웠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자기 합리화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방문한 병원은 얼마 전 최악의 의료사고로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해서 한동안 떠들썩했던 악명 높은 병원이었고 나 역시 소화기내과에서 진료를 받을 때 사명감 없는 의사로 인해 불쾌한 경험이 있었다. 이 의사도 환자의 건강보다는 자기 본위로 소명의식도 없이 진료를 보는 것 같았고 심지어 환자를 대하는 태도도 무심했으며 시종일관 반말이었다. 6개월의 한 번씩 해야 한다는 추적검사가 마음에 걸렸으나 특별히 아프지 않다면 산부인과 진료는 다시는 받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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