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학조사
한동안 이런저런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렇게 몇 시간을 침대에 누워 가만히 흘려보내다가 다른 대학병원으로 전화를 걸어 산부인과 과장에게 진료를 볼 수 있는 가장 빠른 시일로 예약을 잡았다.
그 사이 CT 검사를 진행했던 대학병원으로부터 문자 한 통을 받았는데 내가 영상의학과를 방문했던 시기에 코로나19 확진자와 동선이 겹쳤으니 호흡기 증상이 있을 경우 관할 보건소에서 검사를 받으라는 내용이었다. 해당 병원이 뉴스에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정례브리핑으로 보도된 지 5일 만에 받은 문자였다. IT 강국인 대한민국에서 한 공간 내에서 발생한 역학조사에만 며칠씩 걸렸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렇게 큰 건물 안에서 확진자와 동선이 겹쳤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요즘 같은 시국에 이렇게 중요한 정보를 병원에서 며칠 만에 알려주니 참으로 고마웠다.
혹시라도 내가 자가 격리자에 해당돼 2주 동안 병원 진료를 보지 못하게 될까 봐 걱정이 되었다. 나는 모든 동선을 머릿속으로 정한 후 일정에 맞춰 순차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인데 이 병원은 여러 방면에서 나의 계획을 방해했다. 해당 병원으로 전화를 걸어 증상이 없는 사람도 코로나 검사를 꼭 받아야 하는지를 물었다. 병원에서는 문자 수신자는 밀접 접촉자가 아니기 때문에 검사 의무 대상자는 아니고 본인이 원할 경우 검사를 받을 수 있다는 안내를 한 것이라고 했다. 검사 의무 대상자는 보건소에서 따로 전화 연락을 해서 이미 검사가 완료된 상태라고 했다. 그때는 본인이 원한다고 해서 무작정 코로나 검사를 받을 수 있던 시기가 아니었고 나처럼 확진자와 동선이 겹친 사람들만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나는 특별한 호흡기 증상이 없었다. 오히려 검사를 받기 위해 선별 진료소에 갔다가 확진자와 마주친다면 더 위험한 상황이 될 것 같아 코로나 검사는 받지 않았다.
불필요한 동선을 최소화하고자 하루에 두 병원을 모두 방문하는 것으로 일정을 세웠다. 타 병원 예약일에 맞춰 아침 일찍 CT를 찍었던 병원 1층 영상의학과로 가서 CD 복사를 요청했다. 영상의학과 데스크에서 접수받는 여직원이 상당히 불친절했는데 이른 아침부터 잔뜩 짜증이 난 태도로 말을 해서 상당히 불쾌했다. 본인의 감정을 남에게 전가시키는 미성숙한 사람 옆에는 가지 않는 것이 신상에 이로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보통 데스크 업무는 행정직원이 처리를 하는데 이상한 느낌이 들어 해당 직원의 명찰을 확인했더니 방사선사였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환자를 돌보는 의료진이 매사를 저런 태도로 근무한다면 환자는 물론이고 본인은 얼마나 불행할지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본인의 명찰을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는지 방사선사의 태도가 달라졌다. 병원 측에 컴플레인이라도 걸까 봐 두려웠는지 말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친절하게 영상의학 판독소견서도 필요한지를 물었는데 그것까지는 굳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아 거절했다. 접수 후 만원의 CD 복사 비용을 지불하고 또다시 30분 정도를 대기해야 했다.
이른 아침인데도 사람이 많아 CD를 복사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진료 예약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서둘러 이동해야 했다. 병원 도착 전 지하철에서 모바일로 사진 문진표를 작성한 후 병원 앞에 도착해서는 입구에 위치한 키오스크에 QR코드를 인식시킨 뒤 발열체크와 손 소독 여부를 직원에게 확인받은 후에야 입장할 수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병원 내부 풍경은 수납직원들이 앉아 있는 데스크가 일렬로 길게 병풍처럼 나열되어 있었다. 세상에 아픈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이런 시국에도 데스크 앞은 수많은 인파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