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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정 Oct 24. 2021

존재 유무

비대면 진료

  검사 결과를 들으러 병원에 가기로 한 날이었다. 오전 10시 50분 예약이라 아침부터 서둘러 샤워를 한 후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고 있었는데 거실에서 TV를 보던 아빠가 어디 가냐며 말을 걸었다. 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이라 병원에 가야 한다고 이야기했더니 지금 뉴스에 그 병원이 나온다며 병원에서 오지 말라는 연락을 못 받았냐고 물었다. 깜짝 놀라 거실 앞 TV로 달려갔는데 이미 해당 뉴스는 지나간 뒤였다. 급하게 스마트폰으로 검색해보니 그 병원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고 의료진과 직원 등 연쇄 감염으로 인해 코호트 격리에 들어갔다는 기사를 찾을 수 있었다. 아빠는 어제부터 해당 내용이 뉴스에서 계속 보도되었는데도 병원에서 아무런 연락이 없었냐며 한동안은 그 병원에 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이런 상황인데도 병원에서 예약 환자에게 안내 문자 한 통 보내지 않는 태도가 무책임하게 느껴졌다. 방역 조치를 취해 안전하니 방문해도 된다던가 그게 아니라면 예약을 뒤로 미뤄야 한다던가 등의 안내를 해주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인 것 같았다. 

  검사 결과를 빨리 알아야 치료 방법이나 수술 여부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한시가 급했다. 병원을 갈지 말지에 대해 한참을 고민하다가 산부인과로 전화를 걸었다. 오늘 오전에 진료 예약한 환자인데 지금 병원에 가도 되는 상황인지를 물었다. 전화를 받은 간호사는 모든 병원 진료가 정상 운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보통 코로나 집단 감염이 발생하면 며칠 동안 해당 건물을 폐쇄하고 방역을 하는데 24시간 사람이 드나드는 병원에서 휴업조치도 없이 정상 운영한다는 게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간호사에게 코로나 감염에 대한 걱정으로 방문이 꺼려져서 그러는데 혹시 전화로 검사 결과만 들을 수 있는지를 물었다. 간호사는 비대면 진료로 전환이 가능하고 대면 진료와 똑같은 비용의 진료비가 발생한다고 답했다. 우선은 바이러스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것이 최우선이니 전화 진료를 받겠다고 이야기했다. 간호사는 예약한 시간에 맞춰 병원에서 전화할 테니 기다리라는 말을 남긴 채 전화를 끊었다. 병원에 방문해서 진료 결과를 들은 후 CT 영상을 영상의학과에서 CD로 복사해갈 생각이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모든 계획이 틀어지게 되어 머릿속이 복잡했다. 

  예약했던 시간을 훌쩍 넘겨 병원에서 전화가 왔는데 의사가 하도 큰 소리로 말을 해서 귀가 따가웠다. 어린 시절 시골에 계신 할아버지와 통화할 때 듣던 것과 유사한 데시벨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노화로 청력이 감소하게 되면 거기에 대한 반작용으로 목소리가 커지는 현상을 겪게 된다고 한다. 의사의 나이가 많을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단 한 번도 자세히 얼굴을 들여다본 적이 없었기에 통화를 하면서 새삼 의사의 나이를 어림해보게 되었다. 

  의사는 심전도와 혈액검사 모두 정상이고 호르몬 수치와 암표지 검사에서도 딱히 이상 소견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의 왼쪽, 오른쪽 난소 모두 무탈하게 잘 기능하고 있다며 구태여 양쪽 난소의 존재 유무를 더욱 큰소리로 강조했다. 전에는 오른쪽 난소가 없다고 하더니 CT 화면 어딘가에서 나의 우측 복부에 난소가 건재하고 있음을 확인했나 보다. 실력 있는 의사라면 난소가 초음파상으로 확인되지 않을 경우 다른 장기와의 유착 가능성에 대해 생각했어야 한다. 

  CT 검사 결과에 대해서는 딱히 말을 하지 않길래 먼저 물어봤다. 의사가 한참을 뜸 들이다 CT 검사 결과도 정상이라고 대답했다. “뭐가 많았을 텐데요?”라고 추궁하자 화면상으로 보이는 것들이 있기는 한데 이 정도는 정상 범위라며 일시적인 현상일 수 있으니 또다시 진통이 오면 지난번에 처방해 준 진통제를 먹으라고 했다. 약이 효과가 없었다고 말하자 참다가 먹지 말고 아프기 시작할 때 바로 복용하라며 복약지도도 해주었다. 그러더니 “시간 날 때마다 그냥 걸어.”라며 갑자기 운동 처방도 내려주었다. 수화기 너머로 간호사가 무언가를 보면서 크게 놀라는 소리가 들려왔는데 이 사람은 무슨 배짱으로 좀 더 지켜보자고 하는 건지 의구심이 들었다. 의사는 나에게 6개월 뒤에 또 오라는 말을 끝으로 비대면 진료를 마쳤다. 진료를 볼 때마다 항상 찝찝함을 느꼈지만 개인적인 감정은 잠시 넣어두고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교수님도 건강 조심하라는 인사를 한 뒤 전화를 끊었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본인의 구태의연한 사고를 강요하며 항상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보통은 그런 사람들을 ‘꼰대’라고 부르는데 병원에서는 이들을 ‘돌팔이’라고 지칭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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