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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정 Oct 24. 2021

수술

성모 마리아

  초진이라 무인수납 기계에서 접수가 불가능했고 수납직원에게 접수를 해야만 했다. 접수 대기표를 출력한 뒤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내 차례가 되었다. 직원에게 신분증을 제시하여 본인 확인을 한 후 수납을 할 수 있었다. 복사해 온 CD를 영상 CD 등록기에 인식시키고 2층에 위치한 산부인과로 올라갔다. 병원을 조금씩 증설했는지 여러 개의 건물을 이어놓은 것처럼 구조가 복잡했다. 좁은 병원을 한참을 헤매다가 직원에게 물어가며 겨우 산부인과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간호사에게 진료비 영수증을 제출하여 접수하고 내 차례가 될 때까지 한참 대기해야 했다. 대기실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병원 복도 벽에 일렬로 놓여있는 의자에 앉아 대기하는 시스템이었다. 밖에서 보이는 건물 외관보다 내부 상태가 훨씬 오래되어 보였다. 분명 리모델링을 했을 텐데도 세월의 흔적을 벗어나기 힘든 것 같았다. 기억 속 어렴풋이 남아있는 20여 년 전에 수술받았던 병원이 이런 모습이었던 것 같다. 장비를 실물로 보지 않아도 최신 제품이 아닐 거라는 짐작을 할 수 있었다.

  잠시 후 수술용 의사 가운 같은 것을 입은 체구가 작은 여자가 내 이름을 호명했다. 내가 손을 들자 자신을 해당 대학병원이 속한 의과대학의 인턴이라고 소개했다. 환자가 교수님께 진료를 보기 전에 자신이 초진 상담 기록을 진행하는 일을 하고 있다며 나를 상담실로 데려갔다. 나는 상담실에서 나의 현재 몸 상태와 그동안의 수술 경력, 타 병원 진료 내역 등에 대해 인턴에게 상세히 이야기했다. 수련의가 상당히 친절했는데 환자를 대하는 태도에 대한 교육을 잘 받은 것 같았다. 초진 상담에서만 10분 정도의 긴 시간을 소요했고 내가 CT 영상을 CD로 등록했다고 말하자 인턴이 해당 영상도 직접 확인했다. 상태가 어떤 것 같냐고 묻자 본인은 아직 의사가 아니기 때문에 영상에 대한 판단은 할 수 없고 CT 영상 판독은 진료실에서 교수님이 직접 해주실 거라 대답했다. 환자와 상담한 모든 내용을 수련의가 전부 시스템에 기록해 담당의가 볼 수 있도록 하는 것 같았다. 

  상담 후 상담실에서 나와 다시 복도 의자에 앉아 대기했다. 인턴은 나에게 한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다른 초진 환자에게 말을 걸며 상담실로 데려갔고 그 과정이 몇 번 되풀이되는 것을 지켜보던 중에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의사가 시스템에 입력된 상담 기록을 확인하며 몇 가지 질문을 했고 초음파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초음파 검사도 앞선 환자들이 대기하고 있어 검사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만 했다. 초음파실로 들어가니 기계가 한 대밖에 없었다. 그래서 대기시간이 길었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가운으로 환복하고 초음파를 검사를 하는데 검사 진행자가 의사 같은 느낌은 들지 않았다. 초음파 기계를 여기저기 돌려가며 한참을 들여다보길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없었는지 인터폰으로 누군가를 부르자 옆방에서 담당의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오른쪽 난소가 안 보인다며 화면을 의사에게 확인시켜 주었다. 의사가 다시 확인해보라고 하자 아까와 똑같은 모션으로 초음파 기계를 여기저기 돌려가며 들여다보는 과정을 반복해서 긴 시간 동안 매우 고통스러웠다. 아무리 해도 찾을 수가 없었는지 의사가 이제 그만해도 될 것 같다며 내 얼굴을 한 번 쳐다보고는 다시 문을 열고 사라졌다. 그 후에도 직원이 몇 번 더 초음파 화면을 확인한 뒤에야 검사가 종료되었다. 

  검사 결과를 듣기까지 또다시 진료실 밖 복도에서 한참 대기해야 했다. 무작정 기다림의 연속인 것 같았다. 의사가 CT 영상과 초음파를 종합적으로 놓고 한참을 들여다본 뒤 나를 부른 것 같다. 이전에 진료를 봤던 병원은 초음파 화면은 따로 보여주지도 않고 자세히 설명해주지도 않았는데 이 병원은 모니터 화면이 환자를 향하게 되어 있었다. 초음파 상으로는 오른쪽 난소를 확인할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왼쪽에 혹이 있는데 크기가 작은 편이 아니라 수술로 제거해야 한다고 했다. 혹이 작아지거나 없어질 수도 있으니 수술을 하지 않고 기다려보겠다고 했는데 이 혹은 커지면 커졌지 없어지지 않을 거라고 했다. 이미 오른쪽 난소 수술로 손상이 가해진 상태인데 왼쪽까지 수술을 하게 된다면 임신이 어려울 수도 있어서 지금 당장 수술을 할 수는 없을 거 같다고 했더니 수술을 늦출수록 통증만 심해질 거고 참을 수 있는 수준의 고통도 아닐 거라고 했다. 의사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이전에 경험해봐서 잘 알고 있었다. 

  CT 영상에 대해서는 의사가 말을 아끼는 것이 느껴졌는데 초음파보다 훨씬 심각한 상태인 거 같았다. CT를 다시 찍어보자고 제안했는데 나는 조영제가 두려웠다. 의사에게 CT 촬영을 한 지 아직 2주도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조영제 투여를 또 해도 되는지를 물었다. 의사도 선뜻 답변하지 못했다. 조영제를 빼고 CT 검사를 진행한다면 가능할 것 같다고 했더니 의사는 조영제를 투여하지 않으면 판독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했다. 

  초음파 화면에서 보이는 혹들이 2주 전에 비해 훨씬 줄어든 것이 보였기 때문에 일시적인 현상일 수도 있다던 돌팔이의 말에 한 가닥 희망을 걸어보기로 했다. 오른쪽에 이어 왼쪽까지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고 이 병원 의사는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큰일 날 것처럼 안절부절못했다. 의사가 경험해보지 않은 고통임에도 환자가 참을 수 없을 정도의 극한의 아픔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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