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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ia Apr 06. 2022

슬기로운 격리생활

아직 잠자리 독립을 못한 둘째는 나와 함께 자는데, 전날  밤 유달스럽게 뒤척이던 아이는 나까지 잠을 설치게 했고, 겨우 잠을 청하고 맞은 아침은 아이의 열과 함께였다. 걱정과 동시에 드디어 우리 집에도 올 것이 왔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코로나. 이제 우리 집 차례인 것이다.

아직 열이 나지 않는 큰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둘째를 데리고 급히 병원으로 갔다. 그곳엔 우리 아들과 친한 같은 반 친구 두 명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본의 아니게 병원에서 반창회를 한 셋은 다정하게 코로나 확진이 되어 격리를 시작했다.

둘째가 확진되고 이틀 뒤 나와 큰아이가 확진되고, 그리고 또 이틀 뒤 남편이 확진되었다. 그렇게 온 식구가, 식구가 된 이후로 거의 처음으로 강제로 집에 갇힌 것이다.

아이들은 딱 이틀 꼬박 열이 난 후 열이 떨어지며 회복했고, 난 하루 심한 몸살 기운으로 몸져누운 후 서서히 회복이 되었다. 7일간의 격리 중 움직일 기운조차 없었던 건 첫날 딱 하루였고, 다음날부터는 집안에서 걸어 다니고 티브이를 볼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기 시작했다. 그리곤 회복과 함께 남은 긴 시간 격리의 답답함이 엄습했다. 원래 잠시도 가만히 못 있는 성격이긴 하지만 못 나간다 생각하니 더 답답했고, 어떻게 해야 이 시간들을 잘 보낼까 하는 고민이 되었다.

그리고 찾은 답이 집안 정리였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시간이 없다고 미뤄둔 정리를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밀린 빨래들을 했다. 매일 세탁기를 돌렸고 자연건조 후 건조기에서 한번 더 건조했다. 이불빨래까지 포함해서 격리기간 내내 첫날 하루 제외하곤 세탁기도 건조기도 쉰 적이 없다. 더 이상 빨게 없을 만큼 빨고 널고 개기반복했다.  빨래는 다른 어떤 집안일보다 마음속 묵은 짐까지 시원하게 덜어주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세탁기가 하는데도 말이다.

빨래와 함께 온 가족들 옷 정리도 했는데, 버릴 옷이 한가득 었다. 평소에 아무리 정리를 하고 살아도 사람이 사는 이상 계속해서 버릴게 나오는 것 같았다. 버리고 다시 쌓고 그게 인생인가 보다. 그리고 무엇이든 적절한 시기에 정리해서 버리지 않으면 막히고 지저분해지는 것 같다.

다음으로 그릇 정리. 그릇을 좋아하는 나는 집에 그것들이 넘쳐난다. 이번 기회에 그중에서 더 이상 쓰지 않을 것들을 골라서 중고마켓에 올리고, 버릴 것들을 가려내고, 나머지는 다시 재자리를 찾았다. 그릇을 정리하며 상당한 양의 그릇들이 빠져나온 자리엔 다시금 예쁜 그릇을 채울 수 있겠단 아이러니한 설렘이 자리했다.

그릇을 정리하며 그릇장의 위치도 방에서 거실로 옮기고 거실 가구 일부를 방으로 넣었다. 그릇 정리에서 시작해서 가구 재배치로 이어진 대대적인 리뉴얼이었다.

마지막으로 우리 집의 가장 골칫거리인 나와 아이들의 책을 정리했다. 아이들 책의 경우 멋모르고 남이 주는 책들을 다 받아서 정작 아이들은 다 보지 않고 책꽂이만 비좁게 했다.

그리고 그건 책이 아쉽지도 귀하지도 않은 마음까지 덤으로 쌓아두게 했다.

낡은 정도가 심한 책은 전부 과감히 버리려고 따로 모았고, 읽을 수 있겠다 싶은 책들은 모아서 분류해서 다시 책꽂이에 꽂았다.

내 책의 경우, 책을 좋아해서 학창 시절부터 사모았던 책들 중 여전히 가지고 있던 책중 일부는 택배 박스에 넣어서 우리 집 현관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는데 볼 때마다 마음의 짐이던 그 책들도 큰 맘먹고 박스를 열고 꺼내서 세월의 흔적이 많은 책들은 골라서 버리는 곳으로 모으고, 나머지는 기부하기 위해 따로 모았다. 아무리 애지중지 아꼈어도 세월을 거스르기란 어려운 모양이었다. 책을 참 깨끗이 보는 편이었는데, 오래된 책들은 누렇게 변해서 누가 봐도 지저분했다. 그 누런색을 보니 이제야 미련이 없어졌다.

이렇게 버리려고 분류한 것들은 격리가 해제되면 바로 버리려고 현관 앞에 가득 쌓았다가 격리 해제된 날 하나씩 갖다 버렸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함께 묵은 짐도 버리며 마치  새롭게 시작하는 느낌이 들었다. 코로나로 아팠던 몸만 치유된 게 아니라 정리로 인해 마음도 치유되어 그렇지않을까.

그렇게 7일간 슬기로운 격리생활은 새로운 좋은 기운을 가득 채우며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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