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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ia Feb 07. 2022

우유는 싫지만, 라떼는 좋은

난 흰 우유를 싫어한다.  

기억이 안 나지만 아기 때 젖 뗀 후 건강하라고 우유를 먹였는데 먹는 족족 토해버려서 못 먹였다는 엄마의 이야기로 추측해볼 때, 아마도 난 태생적으로 우유를 싫어하는 것 같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우유 특유의 비린내가 역해서 먹기가 힘들다.


초등학교 때(정확히 난 국민학교) 우유를 안 먹으면 튼튼하기라도 했어야 했는데, 몸이 약했던 나는 엄마가 우유를 포기하지 못해서 싫어하는 우유를 2개씩 급식으로 받았다. 없는 형편에 그거라도 먹이고 싶은 엄마 마음이었겠지만, 난 솔직히 엄마에게 들키지 않는한 마실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먹지 않은 우유를 매일 가방 속에 들고 다녔고, 어느 날인가 가방 속 우유가 상해서 가방까지 빵빵해져서야 엄마에게 들켜서 혼났던 기억이 난다.

아깝다며 그 상한 우유를 화초에 붓던 엄마 모습도.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는 우유 신청을 하지 않고 신청한 척 우유 값을 받아서 그 돈으로 사고 싶은 인형도 사고 보고 싶은 책도 사봤다.

지금 생각하면 참 간도 크다 싶지만 그땐 용돈 외의 일종의 부수입으로 매월 돌아오는 즐거운 이벤트였다.

고백하건대 그 이벤트는 40이 넘은 지금껏 들키지 않았다. 맞벌이로 바빴던 엄마는 우유를 먹이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마시는지 확인할 여유도 매달 새로운 것이 생기는 걸 눈치챌 여유도 없었다.


다행이라 해야 하나..


그렇게 세월이 흘러서 우유 급식이 필요 없는 성인이 되고 우유는 이제 마실 일이 없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카페에 가서 좋아하는 카페라떼를 주문하며 바리스타 분께서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고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카페라떼에 내가 싫어하는 우유가 아주 많이, 내 기준에 아주  매우 몹시 많이 들어가는 게 아닌가..


세상에..!!


카페라떼에 배신당한 기분이었다.

왜 그동안 카페라떼에 우유가 그렇게 많이 들어가는걸 인지 하지 못하고 있었지 싶었고, 카페라떼 마저 느끼하고 비린 것 같아서 그 뒤로 한동안 마시지 못했다.


좋아하는 카페라떼를 못 마시게..

아니 잘 안마 시게 되니 좋은 친구 한 명을 떠나보낸 것 같은... 아쉽다 못해 상실감마저 들었다.

어떻게 해서든 다시 그 즐거움을 찾아와야 했다.


우유는 싫지만, 라떼는 좋은 어느 날, 생각 없이 들어간  프랜차이즈 카페에 우유 대신 두유가 대체되는 게 아닌가. 

처음엔 심봤다를 외치며 두유를 넣은 카페라떼를 마셨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맛이 아니야 우유를 넣은 그 맛과는 너무 달라' 

싶었다.

마지못해 먹긴 했지만 맛은 그 맛이 아니었다.

두유 특유의 콩맛이 커피와 잘 어울리지 않는단 느낌이 들었다. 애써 맛있다고 최면 걸어 보기도 했지만 계속 해서 내 입맛을 속일순 없었다.

아쉽지만 두유 넣은 라떼와도 그렇게 작별을 했다. 카페라떼 가끔 너무 마시고 싶을 땐 그냥 우유 들어간 거 마시자 생각하고 횟수는 줄었지만 우유 들어간 라떼를 마셨다.


 우리 동네엔 카페라떼가 맛있기로 유명한 작은 카페가 있다. 종종 그 앞을 지나가지만 대부분 그냥 지나치는데, 가끔은 라떼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날도 그랬다. 오늘은 한잔 마셔야 겠다고 마음 먹은 그날, 카페 메뉴판에 '귀리 우유 대체 가능' 이란 새로운 문구가 적혀있었다.

두유가 아니라 귀리 우유? 이건 좀 먹을만하지 않을까 싶어서 바로 주문해서 먹어봤다.


세상에.. 심봤다~유레카!!


우유 넣은 라떼와 거의 차이가 없었다. 심지어 내 입에 더 맛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유심히 봐 둔 그 귀리 우유의 이름과 우유곽의 색을 기억해서 검색에 돌입했고, 크게 어렵지 않게 제품을 확인하고 주문에 성공했다.

북유럽 어느 나라에서 만든 그 귀리 우유에는 '바리스타'라는 문구가 추가되어 있었는데, 자세히 알아보니 귀리 우유 중에서도 카페라떼를 만드는 용으로 나온 귀리 우유였다. 비건 인구가 높은 북유럽에선 나처럼 우유는 싫지만 라떼는 먹고 싶은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카페라떼 사건 후로 난 다양한 식물성 음료를 탐하기 시작했다.

아몬드 밀크, 캐슈너트 두유, 팥 두유, 등등 나처럼 우유가 싫은 사람이 많은 건지 찾아보니 무궁무진한 식물성 음료의 세계.

그럼에도 카페라떼를 마실 땐 꼭 '바리스타'가 적힌 음료를 넣어 마신다. 세상에 뭐든 이유가 있는 법이고, '바리스타'란 단어도 그냥 적혀 있는게 아니다.

그렇게 좋은 친구 하나가 내게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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