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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만난 그녀

그날도 길거리를 방황하고 있었다.

자동차를 운전하며 여기저기 싸돌아다니고 있었다.

먹이를 찾아 길을 헤매는 하이에나처럼,

그러나 난 배고픈 하이에나는 아니었다.

플랜더스의 개에 나오는 네로 같은 연약한 소년이었다.


비가 오락가락했었고 거리에는 인적이 거의 뜸할 무렵,

지하철 2호선 대림역 인근을 지나고 있었는데 어떤 여자가 나무 아래작은 돗자리 인듯한 것을 깔고 위에 올라가서 쉬고 있는 것이었다.

그 늦은 시간에, 길바닥에 돗자리까지 깔고, 누가 봐도 이상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런 이상함에 의구심을 같기보다는 대화할 이성이 필요했다.

주변의 도로 가장자리에 자동차를 주차하고 우연히 지나가던 것처럼 그녀에게 다가갔다.

잠깐 대화해도 되냐고 했더니 괜찮다고 했다.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날의 대화를 몸으로 추측하여 끄집어내 본다.

늦은 시간인데 집에 안 들어가고 여기 앉아서 뭐 하시냐고 물어본 것 같기도 하고, 집이 어디냐고 물으니 근처라고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뭐 좀 먹을 게 없냐고 해서 손에 들고 있던 암바사 음료수를 마시라고 건넸던 것도 같다.

나는 지금 고민이 많고 가정사로 힘들어서 집에 들어가지 않고 방황하고 다닌다는 얘기도 했다.

잘 들어주고 호응해 주는 것 같지만, 내 말을 잘 이해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왜 집에 안 들어가고 길에서 이렇게 앉아 있느냐고 했더니 산책 나왔다고 얘기한 것 같기도 하고, 엄마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를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신기했다.

그녀가 혼자서 길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쉬고 있는 것을 보고 나도 약간 이상하다는 선입견을 품고 있었는데도 어느 정도의 대화는 이어졌.

밤이 새벽으로 치달을 무렵 집에 안 들어갈 거냐고 다시 한번 물어보니 곧 갈 거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바레다 준다며 일어섰다.
얼마를 걸었을까?

아마 같은 자리를 여러 번 빙빙 돌았던 것 같다.

나는 같은 자리를 빙빙 도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척 따라 걸었다.
또 비가 내리기 시작해 가지고 있던 우산으로 그녀를 씌워 주었다.
그녀를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또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 이제 그만 집으로 들어가시라 하고 시간을 내줘서 고맙다며 더 많이 주고 싶지만 가 지금 가지고 있는 현금이 이게 다라며 몇만 원인가를 손에 쥐어 주었던 것 같다.

나는 자동차가 있어 혹시나 비가 또 내릴까 걱정이 되어 내 우산을 그녀에게 주었다.

아까 걸었던 길을 재차 다시 걷다가 그녀가 거의 집 앞에 다 왔다고 하길래 잘 들어가시라며 나는 차를 세워둔 곳으로 가기 위해 그곳에서 되돌아 나왔다.

이를 어쩌나, 아까 주차해 놓은 곳으로 가서 유턴하여 차를 가지고 집으로 가면서 혹시나 해서 반대편 길을 유심히 살피며 가는데 그녀가 다시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가는 것이 보였다.

'저러면 안 되는데 밤늦게 다니면 나쁜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니는데(그럼 나도 나쁜 사람?)'라고 혼잣말을 하며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 차에서 내려 그녀에게 되돌아가려니 이제는 귀찮고 내일 출근할 일도 걱정해야 했다.


그녀는 그날 집으로 잘 들어갔겠지?

조금은 후회가 된다.

편한 곳에서 조금이라도 쉬라고 같이 있어 줄걸,

나의 넋두리만 늘어놓다가 내 목적은 달성했다고 이제는 귀찮아하며 집이라는 현실로 나 혼자만 도망처 온 것이다.

몇 번인가 일부러 그 길을 다시 지나쳐가 보았지만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밤에서 새벽으로 흐르듯 사람의 마음도 간절하고 절실한 마음에서 돌아 나와 보면 어느새 아무것도 아닌 마음으로 흘러가 있다.

그렇게 삶의 한 순간에 있었던 만남이 나에겐 어떤 의미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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