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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닮은 그녀

정말이지 아내를 너무 닮았다.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에 아내를 너무 닮은 그녀가 있다.
체형, 키, 외모, 분위기, 머리 스타일, 안경, 심지어 입는 옷 스타일까지,

모니터 화면이 잘 안 보여서 눈을 약간 아래로 내리며 안경 밑으로 보는 모습, 고객을 응대하는 스킬, 딱 부러진 업무 처리,

모든 일거수일투족이 아내를 너무 닮았다.

아니 어쩌면 아내가 그녀를 닮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전엔 잘 몰랐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닮은 모습이 너무 많이 보인다.

언제부터인가 그녀를 몰래 훔쳐보는 습관이 생겼다.

처음에는 너무 신기해서 힐끗힐끗 보기 시작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보게 되었다.

이러다가 들킬까 불안 불안하다.

혹시라도 순간 착각하여 여보라고 부를까도 걱정된다.

어느 날 그녀가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출근했다.

다음날 그녀를 따라 한다고 일부러 검은색 티셔츠를 찾아서 입고 출근했는데 그녀는 흰색 티셔츠를 입고 출근했다.

다음 날 또 그녀를 따라 한다고 나는 흰색 티셔츠를 찾아서 입고 출근했는데 이번에 그녀는 검은색 옷을 입고 출근했다.

뭐야, 혹시 그녀도 나와 같은 색의 티셔츠를 입으려고 따라 하는 거야!

어떻게든 한 번이라도 맞춰보자는 생각으로 다음날은 회색 계통의 티셔츠를 입고 출근하고 그다음 날은 그녀가 검은색 티셔츠를 입을 것 같아서 나도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출근했는데 드디어 그녀의 마음을 훔쳤다.

그날따라 오후에 간식으로 치킨이 왔는데 나는 재빨리 근무복을 벗고 출퇴근 시 입은 그녀와 같은 검은색 티셔츠로 갈아입고 보란 듯이 옆에 서서 치킨을 먹었다.

'우리 좀 보라고요, 같은 색의 티셔츠를 입었다고요'

다음날도 또 그녀의 마음을 훔쳤다.

그녀가 흰색 티셔츠를 입고 나도 흰색 티셔츠를 입었다.

일부러 같은 색의 티셔츠를 입고 왔다고 표시 내려고 업무준비 하는 동안 내내 입고 있다가 근무시간에 임박해서 근무복으로 갈아입었다.(그전에는 출근하면 바로 근무복으로 갈아입고 업무 준비를 했었다.)


내 마음의 우상인 그녀가 잔기침을 자주 한다.

기침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내 마음이 아프다.

어디가 아픈 건가!

지병이 있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다가 홀스를 한 개 사서 건네주기도 했다.

오늘도 기침을 자주 한다.

내 생각대로만 선뜻 무엇을 사서 주는 것도 이상해서 고민을 하다가 용기를 내어 유자차를 한 잔 사다 줬다.

버리지 않고 잘 마셨는지는 잘 모르겠다.

지난 주말에는 마트에 갔다가 그녀 생각이 나서(아니 마트 갈 때 사려고 며칠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음.) 기침에 좋을 것 같아서 도라지차를 찾아보았는데 차류를 파는 매대를 다 뒤져봐도 도라지차는 없었다.

그래서 대안으로 "샘표 순작 도라지생강차 티백"을 사고 목캔디도 한통 샀다.

다음날 아침에 식당에서 그녀가 커피 탈 때(매일 아침 출근하면 커피를 타는 시간에) 자연스럽게 마셔보라며 건네려고 멘트를 준비해서 혼잣말로 되뇌며 연습까지 했는데 다른 여직원이 옆에 있어서 준비된 멘트는 하지 못하고 "입맛에 맞을지는 잘 모르지만 한번 마셔보세요" 라며 말했다.

(준비한 멘트 : 업무도 잘하고 마음이 곱고 예쁜 사람이 아프면 우리 같은 사람은 괜히 화가 나요, 아프지 마세요♡)

목캔디는 뚜껑을 열어 그녀의 동선이 자주 닿는 곳에다 말없이 살짝 두었다.(오며 가며 보다가 기침이 나올 때 쉽게 까먹을 수 있게 둔 것인데, 혹시 너무 티 나게 뒀나^^)

그녀가 기침을 멎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려는 마음이 간절하다.


요즘은 집에서도 그녀가 생각난다.
내가 잘해주려고 신경 쓰는 것을 그녀는 알려나!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다.

나의 아내와 같거나 한두 살 어린 나이인 것 같은데 그녀도 나의 아내처럼 집에서는 나를 그렇게 함부로 막 대할까?

외모, 행동거지, 풍기는 이미지,

모두가 아내랑 너무 닳았지만 나를 함부로 대하는 것은 제발 닮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마음을 "이해인"이 작사하고 "김태환"이 작곡한 부활의 "친구야 너는 아니" 노래를 개사하여 대신한다.


꽃이 필 때 꽃이 질 때

사실은 참 외로운 거래


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달아줄 때

사실은 참 그리운 거래


친구야 외로워도 웃으면서

너에게 가고픈 내 맘 아니


가슴속에 숨겨둔 내 마음이

너에게 달려가는 걸 너는 아니


너의 눈에 다 보이진 않지만

너의 귀에 다 들리진 않지만


이 세상엔 사랑스러운 것들이 너무 많다고

사랑하기 위해선 그리움이 필요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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