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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검사 Feb 19. 2022

질량 보존의 법칙

나의 보잘것없는 유도 이야기 2

고등학교 3년 동안은 유도를 할 일도 없었고 유도를 생각할 일도 없었다. 그저 남들 하는 대로 맨날 책상에 앉아서 공부만 하다가 대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나도 모르는 사이 유도가 정말 좋았는지 대학교에 입학하자 바로 유도부를 찾기 시작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부터 내가 속해 있던 공대 선배들에게 학교에 유도부가 있는지 물었는데 대부분 들어본 적은 있는 것 같은데 정확히는 모르겠다고 하였다. 그러다가 어디선가 유도부가 '체생관(체육생활관)'에 있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래서 주변 선배들에게 '체생관'이 어디냐고 물었지만 이번에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도 그럴만했던 것이 체생관은 내가 속해있던 공과대학과는 캠퍼스의 정반대 편에 위치하여 있었다. 공대에서 걸어간다면 아무리 빨라도 30분이나 걸리는 거리에 있었고, 주로 체육교육과에서 사용하던 건물이었으니 공대생 중에서 그 건물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도 학교 지도를 뒤져서 그 건물이 있는 곳을 알아냈고 입학하자마자 바로 유도부로 찾아갔다. 


내가 유도부에 처음 찾아갔던 것은 3월 둘째 주 수요일이었다. 몇 년 전 동네 유도관의 위치를 찾기 위해 사전답사를 하듯 이번에도 사전답사를 한다는 마음으로 도장을 찾았다. 마음씨 좋은 97학번의 주장 형님은 올해 처음으로 신입부원이 왔다며 나를 반겼다. 나는 오늘은 우선 한 번 보러 온 것이라고 말을 꺼냈지만 사람들이 그런 것이 어디 있냐며 그냥 함께 운동을 하면 된다고 했다. 마음의 준비는 덜 되었지만 그렇게 바로 도복을 입고 전선에 뛰어들게 되었다. 


한 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이었지만 고등학교 3년 동안 앉아있기만 해서 그런지 다음 날부터 온몸에 근육통이 찾아왔다. 마침 신입생 행사 때문에 노천극장에 올라가야 했는데 행사가 끝나고 계단을 내려오는데 다리가 후들거려서 혼났다. 



2003년 야외에서 호신술 시범을 보이는 중. 관객들의 표정을 보라!



유도부라고는 하여도 일반 학생들이 찾아오는 동아리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부원이 대학에 들어와서 처음 유도를 시작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어렸을 때 유도를 조금이라도 배우고 들어 온 부원들은 바로 운동을 잘하는 편에 속할 수 있었다. 바로 내가 그런 편에 속했는데 중학교 때 일 년 반 정도 했던 것이었지만 조금이라도 어릴 때 배워서 그런지 중간 정도는 가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당시 나는 키가 180cm 정도에 몸무게는 66kg 정도로 매우 마른 편이었기 때문에 그리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어차피 우리와 같은 아마추어 사이에서는 일단 힘이 세고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편이 무조건 유리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몸집이 큰 친구들이 주목을 받기 마련이다. 그래서 선배들은 될성부른 녀석들을 위하여 사비를 털어 밥, 고기, 술 등을 열심히 먹였다. 우리 사이에서는 이 성스런 의식을 '비육 프로젝트'라고 불렀다. 


마침 동기 중에 키는 나보다 5cm는 크고 몸무게도 80kg가 넘었던 녀석이 하나 있었다. 특별히 운동을 배운 적은 없지만 힘도 엄청났다. 물론 본인은 부인했지만 같은 지역 출신의 선배들은 이 녀석은 농사를 짓다가 들어온 것이 분명하다고 할 정도였다. 그의 월등한 체격 조건이나 근력을 보면 선배들이 그 친구에게 거는 기대가 큰 것이 당연했다. 그래서 선배들은 그 친구를 데리고 여기저기 다니며 열심히 먹을 것을 사주기에 바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친구의 몸은 더 이상 커지지 않았으며 어느 순간부터는 도장에서 점점 보기 힘들어졌다. 2학년이 끝나갈 무렵에는 군대에 간 것인지 아니면 고시를 준비하러 간 것인지 아예 볼 수가 없었다. 선배들은 비육 프로젝트의 핵심 멤버가 사라져서 상심을 했겠지만 사실 선배들도 알지 못하는 비육 프로젝트의 성공작은 아직 도장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앞서 말했든 나의 몸무게는 고등학교 내내 60kg 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다고 내가 입이 짧은 것도 아니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별로 가리는 것 없이 잘 먹었기 때문에 나는 내가 원래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유도부에 들어가 일 년 동안 운동을 하면서 이것저것을 먹다 보니 점점 몸무게가 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70kg에도 미치지 않던 몸무게가 1학년 가을 무렵에는 78kg로 증가해 있었다. 내가 이것을 기억하는 이유는 당시 서울시 동아리 유도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 계체를 했기 때문이다. 이 대회에 나가기 위해서 체급을 선택해야 했는데 73kg 이하는 이미 물 건너갔으니 81kg 이하로 출전하게 되었다. 


더 놀라운 것은 나의 체중 증가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다음 해 똑같은 대회에 나갔는데 계체를 통과하기 위해서 나는 일주일 동안 저녁 이후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아야 했다. 그리고 계체를 할 때는 웬만한 옷은 다 벗은 끝에 겨우 81kg 이하로 계체를 통과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그것은 단순히 '아무리 먹어도'라는 문구의 정의가 서로 다를 뿐이다. 정말 목 끝까지 차도록 매일 먹는다면 체중이 증가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이렇게 매일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다면 그것은 질량 보존의 법칙을 뛰어넘는 엄청난 발견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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