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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검사 Feb 19. 2022

2003년 우승팀은 효리팀

나의 보잘것없는 유도 이야기 3

우리 유도부에게는 일 년에 두 번 정도 중요한 대회가 있었다. 하나는 라이벌 학교와 벌이는 친선 경기였고 다른 하나는 서울시 동아리 유도 대회였다(내가 졸업한 이후에는 더 많은 대회가 생겼다). 특히 라이벌 학교와 벌이는 시합은 재학생들이나 선배들에게도 큰 의미가 있어서 이 경기 결과로 한 해 농사를 평가하는 사람도 많을 정도였다. 


이 친선 경기에서는 오픈전이라고 불리는 연습 경기가 먼저 열리고 그다음 본 게임이라고 불리는 7:7의 단체전이 열린다. 본 게임에서 많이 승리를 한 학교가 승리를 하게 되고 만약 동률이 될 경우 한 번의 더 시합을 갖는다. 그런데 뭐 경기 규칙이 어디 쓰여있는 것은 아니라서 연장전 횟수나 누가 연장전에 나가는지는 그 상황이 되면 결정하는 식이었다. 


보통 본 게임에는 유도부에 몇 년 몸 담은 사람들이 나가기 마련인데 아무래도 대부분 대학에 들어와서 처음 운동을 시작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운동을 해야 대회에 나갈 실력이 된다. 그런데 1학년 2학기의 어느 날 이 대회를 앞두고 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주장 형이 오더니 나에게 아무래도 본인 말고 네가 본 게임에 나가는 것이 좋겠다고 말을 하는 것이었다. 일단은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는 말고 혼자서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아무래도 주장이 본 게임에 나가지 않는다고 하면 주장보다 학번이 높은 선배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는 어린 마음에 그저 실력을 인정받는구나 싶어서 즐거웠다. 결국 주장 형은 경기 당일 경기 시작을 눈앞에 두고서야 다른 선배들에게 자기 대신 내가 나갈 것이라고 말을 했다. 선배들은 모두 탐탁지 않아했지만 뭐 주장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렇게 하자라고 했다. 


01년도 친선전 사진. 아직은 몸무게가 정점에 다다르기 전이었고 무엇보다 젊었다.



7명 중 선봉으로 출장한 나는 절반 두 개를 빼앗기며 지고 말았다. 당시에 내가 쓴 글을 보면 '아무리 봐도 절반이 아니라 유효 정도밖에 안 되는 기술이었다'라고 울분을 토로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참 어렸다. 둘의 실력이 비슷했다면 '모두걸기'로 두 번 넘어지는 것 자체가 있을 법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치 사실 살이 찌지 않는 이유가 그저 많이 먹지 않았기 때문인 것과 같이 나도 그저 열심히 운동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결국 이 시합에서는 우리 학교가 3:4로 지고 말았다. 



연습 때는 잘하다가도 실전에서는 그만큼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연습 때는 눈에 띄지 않다가 실전에서는 엄청난 괴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나는 안타깝게도 전형적으로 전자에 속하는 타입이었다. 이후에도 유도부 생활을 하면서 여러 대회에 나가게 되었지만 이기는 것보다는 지는 일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한 선배가 게시판에 쓴 글을 빌려오면 다음과 같다. 


분명 무림에서 인정받는 고수였으나, 실전에서는 승부에 관심이 없어 번번이 일부로 져주기 낙장을 내주는 장면을 많이 연출했다. 필자가 기억하는 그의 어이없는 시합으로는 01년 각문파비무대회(서울시 동아리 유도 대회)에서 허벅다리 절반 따놓고 눌려주기. 중앙가비무전(다른 학교와 교류전)에서 들어메치기로 상대방을 번쩍 들었다가 뒤로 넘어져주기. 훗날 03년 각문파비무대회(서울시 동아리 유도 대회)에서 유효 따놓고 다이빙 반칙패하기 등이 있다.


반면 나의 동기는 그런 점에서 참 대단한 친구였다. 몸무게가 가벼워서 체급에 상관없이 붙어야 하는 단체전에는 별로 나갈 일이 없었지만 서울시 동아리 대회 60kg 이하급에서는 최강자였다. 매년 우승 아니면 아무리 못해도 3위로 메달을 받고는 했다. 반면 나는 개인전에서 입상은커녕 단체전에서도 승률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오랜 기간 유도부 생활을 하면서 가장 즐거웠던 순간이 있다면 바로 2003년 서울시 동아리 대회였다. 그 대회에서 우리가 단체전 우승을 차지했는데 이것이 나의 첫 우승이자 마지막 우승이었다. 사실 이 대회를 앞두고 분위기가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두 달 전 있었던 라이벌 학교와의 친선전에서는 2년 전과 마찬가지로 3:4로 아쉽게 패배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2년 전에 붙었던 사람과 또다시 시합을 해서 또다시 지고 말았다. 남들보다 매우 늦은 군 입대를 앞두고 있었던 때라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운동을 했는데 어느 새부터 지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는 것 같아서 슬펐다. 


하지만 부원들끼리 동아리 대회만은 정말 잘해보자고 전의를 다졌다. 한편 동아리 대회 단체전에는 인원만 된다면 여러 팀이 출전해도 되기 때문에 부원이 많았던 우리는 두 개의 팀이 출전하기로 하였다.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서 신청서를 작성해야 했는데 한 학교에서 복수의 팀이 단체전에 출전할 경우 팀별로 이름을 써내야 했다. 그래서 기존의 단체전 멤버를 A팀, 추가로 조직된 단체전 멤버를 B팀으로 하려고 했지만 아무리 봐도 밋밋하기 짝이 없었다. 


개그부라고도 불려도 손색이 없던 우리에게 이렇게 밋밋한 이름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주장형에게.


우리 식상하게 A팀, B팀이라고 하지 말고 다른 걸로 해요
뭐 효리팀, 딸기(*)팀 이런 것으로 하면 어떨까요?
(*) 왜 딸기팀이라고 이름 붙였는지는 깊은 사연이 있지만 너무 은밀해서 우리끼리의 비밀로 해야겠다.


라고 건의했다. 건의는 바로 받아들여졌고 우리는 그렇게 효리팀, 딸기팀이라는 이름으로 대회에 출전하게 되었다. 



놀랍게도 당시 시합 내용이 어땠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우승을 했다는 것 말고는. 그래도 예전 유도부 게시판을 찾아보니 내가 썼던 글을 찾을 수 있었다(정말 저런 기사가 학교 신문에 실렸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사 의뢰

발신 : 고려대학교 유도부 주장
수신 : 고대신문사 편집국장
제목 : 고려대학교 효리팀 서울시 유도대회 우승

지난 23일(日) 서울 둔촌고등학교 체육관에서 벌어진 제 9회 서울특별시 동아리 유도대회에서 고려대학교 효리팀(주장:양OO,법학,99)이 단체전 우승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번 대회에서는 서울 소재의 10개 대학, 12개 팀이 참가하여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고려대학교 유도부는 딸기팀, 효리팀 2개 팀이 참가하여 딸기팀은 아쉽게 탈락하였으나, 효리팀은 1차전에서 서울대를 상대로 6:1로 승리하고, 준결승에서 중앙대를 상대로 5:2로 승리하였다. 결승전에서는 한국체육대학을 맞이하여 4:3의 짜릿한 승리를 거두었다.


우승컵으로 축배를 드는 우리 선배님



그리고 이 대회를 끝으로 나는 입대를 하게 되면서 한동안 유도를 할 일이 또다시 없어져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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