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깊은 가을, 혹은 겨울의 초입에 서서
#1 유난히 길게 느껴졌지, 이번 가을은. 가을은, 서울에서 보통은 매우 짧은데, 올해는 아주 길게 버티다가 이제서야 겨우 겨울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모양새야. 샛노랗거나 샛빨간 은행잎이나 단풍잎이 되어 보지도 못하고, 짙은 갈색 낙엽이 되어 버리는, 얼마 전까지는 푸르던 잎사귀들을 바라보다 보니 많은 생각이 들어. 새벽은 또 반대로 조금 좋은 기분이 들게 하지. 조금전까지 짙은 어둠은 사라지고, 찬란한 금빛 세상이 열리는 순간이니 말이야.
#2 어린 시절 나는, 갈 곳 없이 느껴지던 순간들이 많았어. 서울서 살았던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나는 내가 눈이 매우 나쁘다는 것도 몰랐고, 그래서 안경도 쓰지 않았지. 세상은 온통 부옇게 보였고, 원래 세상은 그냥 그렇게 생긴 줄 알았어. 밖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에, 그냥 집 안에 틀어박혀서 책이나 읽거나 조립식 장난감이나 만들면서 몇 년을 보내었던 것 같아. 초등학교 2학년 때 첫 안경을 쓰고서야 비로소 집 밖으로 나올 수 있었어.
#3 안경을 쓰고 바라본 세상은 환했지. 기존에 내가 아는 세상과는 완전히 달랐어. 길에 지나다니는 버스 번호표도 구분할 수 있었고, 수업시간에 선생님 얼굴도 볼 수 있었어. 워낙 고도근시라서 어렸을때부터 비문증이 있었기 때문에 파란 하늘을 보면 올챙이들이 몇 마리, 밧줄이 몇 개 보이긴 했지만, 형태도 알아보기 어려운 부연 세상과는 차원이 달랐지. 지금은 올챙이들과 밧줄이 훨씬 더 많아졌지만, 병적인 상태는 아니고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숙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아무렇지도 않아. 없애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고.
#4 당시 어머니는 집 근처 병원 약국에서 일을 하셨어. 비로소 눈이 보이게 된 나는 친구들이 필요했고, 많은 사람들을 알아가기 시작했어. 동년배 친척들이 근처에 살았는데, 그 집으로 자주 놀러갔었어. 나한테는 할아버지, 할머니 뻘인 그 집의 어르신들은 나를 정말 잘 대해 주셨고, 아저씨, 아주머니 뻘인 내 나이 또래 친구들은 나와 정말 재미있게 놀았지. 그래서, 특별한 일이 없는 주말은 그 집에서 보내는 일이 많았었지.
#4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 직장 때문에 부산으로 이사를 갔어. 낯선 동네였지. 사투리는 거칠었고, 사람들도 거칠었어. 나는 무슨 말을 해야 사람들과 사귈 수 있을 줄 몰랐고,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위축되고 상처받고 가끔은 숨어있기도 했어. 눈이 안 보이던 어린 시절 그랬던 것처럼, 나는 다시 숨어들었고, 이번엔 디지털의 세계와 문자 중독에 빠져들었지. 사람들과는 표면적으로만 잘 지냈어.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5 전학 간 초등학교의 일진 친구 녀석과 싸움을 했어. 그 녀석을 때려눕히고 이긴 줄 알았는데, 보복을 당했지. 학교가 끝난 후 패거리들이 나를 불러냈어. 놀자고 만나자고 해 놓고는, 돌멩이를 들고 죽이려고 쫓아오더라. 표면적으로는 친하게 지냈던 친구녀석들이. 삼십육계 줄행랑 전술이 통해서 다행히 살아남긴 했지만, 그날 이후 사람들을 만날때면 강박적인 생각을 하기 시작했어. 이 사람은 친구인가, 적인가.
#6 그 날 이후론 부산에서 탈출만을 꿈꾸었지. 원래 내가 살았던 서울로 돌아가자. 세상을 처음으로 보게 된 곳, 친구들을 처음으로 만났던 곳, 나를 잘 대해주신 어르신들이 있던 곳. 그 날 이후론 이상하게 부산에 정을 붙이지는 못했어. 물론, 사람들과 잘 지내긴 했지만. 대부분은 표면적인 관계였지. 트라우마가 심해서 극복하기 어려웠거든.
#7 첫 대학입시 지원에서는 서울대 건축과에 지원했다가 고배를 마시고, 다음 해 서울대 의예과에 합격해서 서울로 오게 되었어. 몇 년 동안 사람들을 피해 공부로 숨어들었던 탓인지, 좋은 성적으로 원하는 대학에 합격해서 기뻤어. 몇 달 지나고 느꼈어.
서울로 돌아오면 고향이라 좋을 줄 알았는데, 10년 만에 돌아온 서울은 매우 낯선 도시처럼 느껴졌어. 나는 돈이 말라가는데, 돈이 넘쳐나는 친구들도 많았고. 나는 할 줄 아는 것이 거의 없었는데, 음악이니 운동이니 잘 하는 친구들이 정말 많았고. 그나마 자신있어 하던 공부도 동기들에 비하니 형편 없는 수준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이번엔 음주가무와 컴퓨터 게임, 경마 같은 잡기들에 빠져들었고, 결국은 휴학을 해야 할 정도로 성적도 건강도 악화되었지. 이상향이라는 곳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
#8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휴학을 했던 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부산으로 내려갔지. 약국을 개원해서 일하시던 엄마 앞에 섰더니, 니가 왠일이야 하며 놀라던 모습이 선해. 폐인처럼, 낮을 밤처럼 밤을 낮처럼 몇 달 지내다 보니, 그 꼴을 못 보시던 엄마가 해외라도 한 번 다녀오라고 보스턴으로 등 떠밀어 보내셨어. 사람들 만나는 것도 싫어서 과외 대신 주유소에서 기름이나 넣으며 한 일년 보낼 생각이었는데, 계획이 바뀌었지.
#9 1993년 보스턴은 처음으로 내가 밟은 미국 땅이었지. 보스턴대학교 어학연수반에 들어갔는데, 당시 어학연수 열풍이라 한국인들이 매우 많았어. 미대를 졸업한 형도 만나고, 취업 전 공부를 위해 온 사람들도 만나고, 여자도 만나고, 외국인도 만나고, 여행도 다니고, 술도 마셨어. 부산에서 그 일을 겪은 이후로 사람들은 나에겐 늘 경계의 대상이었는데, 여기서 바뀌기 시작했어. 시간을 가지고 내면을 들여다 보니 상처입은 사람들, 용기 잃은 사람들이 많았거든. 술마시고 울고 웃으며 즐기면서 서로를 알아가고 위로해주는 사이가 되는 사람들이 생기다 보니, 나도 다시 용기가 생겼어.
- to be continued -
"우린 사람들에게 쉽게 상처받지만, 반대로 사람들에게 치유받기도 하지. 오늘 새로운 하루는 나를 사랑해 준 사람들에게 고마운 생각으로 시작하려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