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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람 Oct 30. 2020

11. '조우리'와 사는 삶

우리는 언제나 함께였다.

 본문에서 내 인생의 어두운 부분만 조명한 탓에 참 불쌍해보여 웃음이 났다. 하지만 나는 꼭 그곳에 스포트라이트를 켜고 싶었다. 실패만 가득 쌓이고 할 줄 아는 것이라곤 방구석에서 글 쓰는 일이 전부였다. 하지만 요 근래 조울증에서 비롯된 무기력증이 심해지고 불면증을 앓게 되면서 아이덴티티가 사라진 것 같은 내가 비참해 막막했다.

 그때 모 유튜버가 그런 말을 했다. 당신에게도 브랜딩 할 요소가 있다고. 줄기차게 도전만 한 탓에 쌓은 것 없는 경력에 눈을 가로로 떴지만 그의 말은 진실이었다. 에세이. 그렇다. 각자의 인생이란 다 다른 것이어서, 누가 써도 다양함이 나오는 좋은 섹션이었다.




 삶에 대해 적을 적에는 심장이 두근거리고 눈앞이 어지러웠다. 특히 PTSD에 대한 내용이나 지금 생각해도 화가 나는 구간이 특히 그랬다. 내용을 정리하고 고심하면서, 이걸 어떻게 서술해야 좋을지 머리가 아파 컴퓨터를 켜 둔 채 잠들기도 했다. 나는 여전히 그들을 용서하고 있지 않으며 아마 상당한 기간동안 그러할 테다. 정신과 선생님은 시간이 더 지나면 감정도 많이 흐려질 것이라고 하셨지만, 나는 S양을 내 인생 최고의 XX라고 규정한 상태였다.

 우스운 것은 나 또한 우울증에 걸린 시점에 주변 사람에게 힐난받을 적엔 그게 그렇게 억울했다는 것이다. 동생은 "누나는 뭐가 문제야?"라고 화를 냈다. 엄마는 나를 극도로 걱정하고 있었고, 정신병에 대한 인식이 좋지 못한 상태였기에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나도 받아들이지 못한 병을 주변에서 꼬집자 상처가 됐다. 너도 확 걸려버리라는 말이 목구멍에 턱 걸렸다.

 한동안 제대로 살기 위해 억지 노력을 하던 적도 있었다. SNS에 파이팅을 외치고 힘을 내는 좋은 글도 올렸는데, Z양이 내 행동이 보기 싫다며 "저격" 했다. 내 착각인 줄 알았는데, 확고한 증거가 속속들이 나타나자 그를 차단하고 연락처를 정리했다. 우습게도 그 정리까지 1년이나 걸렸다. S양 사건을 겪었으면서도 멍청하게.

 피해망상에 대한 의사의 견해를 다시금 재고해본다. 하지만 피해망상이 아닌 일도 분명 있었을 테다. 나는 내 감으로 사람을 피한 것일까, 아니면 정말로 피해망상에서 오는 착각이었던 것일까.

 '조우리'는 '이람'과 얼마나 맞닿아있는 것일까.




 현재, 그 누구도 내가 조울증이란 사실을 모른다. 굳이 말하고 다닐 필요도 느끼지 않았고 도리어 숨기고 싶다는 마음만 가득하다. 그저 내가 정신병을 앓고 있기에 같은 정신병을 알아볼 수 있다는 정도만 있다. 의사는 아니니 고칠 수는 없을 테지만.

 병원을 가는 일이 꼭 능사가 아니라는 것은 환자들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간다. 가야만 한다. 의사가 못 미더우면 병원을 바꿔서라도 계속해서 다녀야 한다. 내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없는 병이며 그 의지를 갖기 위해서는 필요 이상으로 체력이 소모된다. 본문에서는 꽤나 잘 컨트롤한다는 듯 써놨지만, 그 또한 약을 먹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약을 먹지 않은 나는 폭주기관차가 따로 없다.




 나는 나 자신과의 대화를 자주 나눴다. '우리'라는 가상의 인물은 우울한 나와 분노한 나를 담아내기 위한 장치였고, 그 이름은 우울의 이명이며 나와 병을 한데 아우르는 훌륭한 명칭이다. 결국은 환자이므로 "조울증 환자분들, 우리 앞으로 어떻게 살아봐요!" 하는 길은 결코 제시할 수 없지만, 이렇게 사는 환자도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 적어보았다. 아마 많은 사람들의 눈에 담기진 않겠지만 미숙한 내 글이 조금이나마 어떤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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