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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람 Oct 30. 2020

10. 조울증, "그렇게 함께 살기로 했다."

우리는 언제나 함께였다.

"화가 난다고요?"

"네, 분해서 미칠 것 같아요. 별일 아닌데도 분하고 약 오르고."


 의사는 무언가를 열심히 적었다. 나는 요 근래 바짝 뾰족해진 신경에 대해 서술했다. "동생이 절 싫어하는 것 같거든요?" 그런 말도 늘어두면서 차곡차곡 말을 쌓았다. "친구가 제 욕을 하는 것 같고요." 망상인지 무엇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철저한 내 시각으로부터의 이야기는 시퍼렇게 날이 서 있었다.

 그는 우울증 약의 부작용으로 조증이 올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조증에 대한 약도 함께 처방하겠다고 말했다. 그 순간 약에 대한 불신이 확 치솟았다. 약을 받아 나왔고 그 약을 먹기야 먹었지만, 나는 내 우울증이 조울증으로 변했다는 말에 짜증이 나 병원을 끊었다.

 기분은 너울을 탔다. 아침엔 좋았다가 밤엔 나빴다가가 아니라, 아무 일 없는데 확 나빠지고 또 아무 일 없는데 확 좋아지길 반복했다. 감정의 곡예는 사람을 지치게 했다. 피곤해서 무얼 하려고만 해도 진이 다 빠졌다. 하품은 언제나 입에 걸려 있었다.


"조우리."


 우리는 깔깔거리고 웃었다. "이건 나의 새 이름일까?" 뒷목이 뻐근해졌다.



 또 얼마간을 그런 상태로 지냈다. 화가 나더라도 일단은 참았다. 참는 데엔 도가 튼 성격이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진작 사고를 쳤을 테다. 행여 호르몬 문제일까 싶어 병원을 찾아갔지만 검사 결과는 정상이었다. 상황은 나를 더 미치게 했다.

 내가 정신병자가 아니라면 좋을텐데. 여간 익숙해지지 않는 어감을 혀 위에 굴려보며 눈을 질끈 감았다. 우리는 내 주변을 빙빙 돌아다녔다. 나는 절대 우리와 떨어질 수 없다, 그런 소름 끼치는 확신에 주먹이 저절로 말렸다.

 나는 인정해야만 했다. 기억이 잘리고 당장 화가 나는 감정은 어쩌지 못하더라도, 그걸 눌러 참을 정도는 되었다. 아마 다른 사람들보단 증상이 가벼운 편에 속하기 때문에 이런 이성적인 사고도 가능한건지 모른다.




 우울증은 거대한 괴물이다. 새카만 입 속으로 덮어 모든 시야를 빼앗고 자기 자신조차 볼 수 없게 만든다. 녀석의 이빨은 입천장에도 가득 붙어있어서 물리면 빠져나가기 쉽지 않다. 당장 몸이 물려 으득으득 짓씹혀지고 있으니 주변이 잘 보이지 않았던 거겠지.

 나는 내 조울증이 약으로 생긴 병이라고 믿었지만 고칠 필요를 느끼고 다른 병원에 방문했다. 내 상태와 과거를 다시 서술하는 일은 괴로운 일이었지만―지금까지 에피소드를 상기하고 적는 데에도 상당한 정신력을 소모했다―어쩔 수 없었다.

 이전에 있던 병원과는 달랐다. 약 700여 개의 문항을 풀고 상담을 통해 보다 더 정확한 내 상태를 측정할 수 있었다. 분노 조절에 문제가 생긴 사람처럼 "날 괴롭힌 사람은 전부 망해야 마땅하다", "나쁜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한다"는 선택지에 O를 그어댔기에 조증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 했지만 결과는 제2형 조울증이었다.


"평소에 갑자기 돈을 많이 쓰고 싶다거나 말이 많아지는 경우는 없었나요?"

"있었어요. 근데 전 제가 말이 많은 건 성격 탓이라고 생각해서 잘 모르겠네요."

"음, 그렇다면 잠을 적게 자는데도 괜찮았던 경험은요?"

"요즘 3시간만 자는데 그냥 멀쩡해요. 기력은 없지만 그렇다고 자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의사 선생님은 잠시 말을 골랐다.


"지금까지 여쭸던 건 조증의 대표적인 증상이거든요. 사실 기분이 좋고 어떤 행동에 거침이 없어지는 건 좋은 상황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람은 언제나 기분이 좋기만 하진 않죠. 평소의 상태가 너무 들떠있다면 우울감에 빠졌을 때와의 갭이 확 커지니까 좋지 않다고 규정합니다. 절망감이 그만큼 배가 되는 거니까요."


 그는 손가락으로 큰 폭의 파도를 그리며 설명했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평소의 상태를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감정의 폭을 적절히 조절하는 것이지만, 어디까지나 이상적인 겁니다."


 선생님의 표정은 '그런 사람은 없다'라고 말하는 듯했다. 마치 완전히 건강한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들렸다.




 약을 먹는다 해도 조금 나아질 뿐일 테다. 억지로 약이나 의사를 믿고 싶진 않았고, 그렇다고 이 상태를 유지하면서 살고 싶진 않았다. 그저 내가 해낼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을 찾아 하나씩 밟아 올라가는 것이 지금의 나를 달래는 가장 좋은 방법일 거라고 여겼다.

 나와 우울증, 혹은 조울증. 나와 우울이, 혹은 조울이. 나와 우리. '우리'. '나'. 나는 우리였고 우리는 또 다른 나였다. 힘겨운 인정 끝에 나는 우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가 어느 날 우리를 잊게 되는 순간이 온다면, 그것은 또 다른 만남을 위한 잠깐의 이별일 것이다. 나는 우리를 구성하는 부속품으로 인정하고 감정의 흐름을 약과 의지로 눌러가며 조절하는 삶을 살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우리와 함께 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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