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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미니 Jun 09. 2021

코로나 연쇄반응

#1 긴급 문자로 시작한 새벽 아침

학생 한 명이 코로나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열이 지속되어 확진이 예상됩니다.. 아... 탄식으로 시작하는 아침이다. 1년 반을 잘 버텨왔는데 결국 터질 것이 터졌구나.. 마음이 심란하다. 에잇. 아니겠지. 그동안 검사받은 학생들은 꽤 있었지만 양성은 한 번도 없었으니 코로나에 대한 울렁거림도 잦아들고 겁부터 내던 마음도 무뎌진 것이 사실이다. 세수를 하다가 문득, 우리 학년은 다른 건물에서 생활하니 별 문제없을 것 같다는 안일한 생각이 고개를 든다. 역시 본능은 숨길 수 없다. 

#2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1교시 수업을 앞두고 듣고 싶지 않은 결과를 통보받는다.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집에 간다며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며 잠시 할 말을 잃는다. 짐 챙기는 아이들에게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해야 할 말들을 마구 쏟아낸다. 듣는 둥 마는 둥 건성으로 네네 하는 아이들. 뭐.. 익숙하다. 아이들이 빠져나가는 데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 순간 나의 뇌도 같이 쓸려간 기분이다. 그때부터 온종일 멍하다.

#3 점점 조여 온다

학교가 고요하다. 잠시 평온을 되찾은 듯했다. But back to the reality..  아.. 학습지 들려 보낼걸.. 아! 수행평가.. 이번 주까지 마무리해야 되는데.. 아.. 방과 후 수업.. 아.. 오늘 대회.. 아... 여기저기서 선생님들의 관자놀이 누르는 소리가 난다.. 맞다. 여기는 대한민국. 역병이 돌아도 수능을 치르는 무서운 곳이었지. 기말고사가 2주밖에 안 남았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고.. 아무리 온라인 수업이 대세고 비대면 세상이라 해도 결국엔 아이들이 교실에 앉아 있어야 마무리되는 그런 일들이 꼭 있다. 아직 학교는 그렇다. 이번 한 주 등교하면 다음 주는 또 온라인 기간이기에 기말고사를 앞두고 더없이 소중한 등교 주간이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가고 없다. 아이들이 집에 도착할 즈음 온라인 수업을 다시 열었다. 다시 또 반응 없는 노트북 세상 앞에 앉아 있다. 온라인 수업을 할수록 무능한 교사로 전락하는 느낌이다. 아니 사실일 수도.. 

#4 나는 아니지? 

확진자 수업 동선에 따라 검사받을 대상들이 통보된다. 같은 반 학생들 뿐만 아니라 이동수업 교실을 이용했던 학생들, 해당 교과 선생님들이 1차 검사 대상이다. 안전할 거라고 생각했던 우리 학년마저도 체육관 수업이 겹치면서 검사 대상에 들어갔다. OO반 검사한대~ 소문은 빛의 속도로 퍼지고 집에 간다며 좋다고 떠들던 아이들이 조금씩 동요하기 시작했다. 하루 전날 확진자 학년 급식지도를 했던 선생님도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가만있어봐.. 어제 거기.. 기억을 더듬으며 내가 머물렀던 공간들을 떠올려본다. 의심과 불안, 초조를 불러오는 코로나 연쇄반응. 밀도 있게 스며들어 괜히 사람 마음 쪼그라들게 한다. 

#5 너는 세상 편하구나 

어수선한 분위기에 집중이 잘 안된다. 뭔가 할 일이 많았는데 생각이 멈췄다. 교무실도 오늘은 유독 침묵하는 분위기다. 오전에 집 나간 정신이 돌아오질 않는다. 밖으로 나오니 푹푹 찐다. 계단을 내려와 화단 주변을 하릴없이 서성였다. 고양이 한 마리가 늘어져 자고 있다. 너구나. 우리 교실 옆 계단에 매번 똥을 싸고 가는 놈이. 한번 영역 표시를 하면 계속 그곳만 찾는다더니 아침마다 흔적을 남기고 도망가는 놈이 맞는 것 같다. 자는 모습은 귀엽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니 오늘 아침에 벌어졌던 모든 순간들이 다 거짓말 같다. 이 또한 지나가겠지. 내일 아침은 이 녀석 얼굴처럼 평온하기를. 내일의 검사 결과에 더는 놀랄 일 없기를 조용히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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