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개월이라는 긴 혼수상태에서 기적적으로 눈을 뜬 제임스는 퇴원 후에도 자신의 집이 낯설게 느껴졌다. 클로이와 함께 사랑을 나누던 침대의 촉감도 박사학위 논문을 위해 밤을 지새우던 서재의 온기도 처음부터 자신의 일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들었다. 거실천장중앙에 단단히 고정된프랑스산 샹들리에가 햇빛에 반짝거렸다. 하지만 이 빛의 아늑함도 전혀 정겹지 않았다. 악몽에밤잠을 설친 이유이거나, 집요한 기자들의인터뷰로 긴장한 탓일 수도 있다고여겼다.일파만파로 퍼져버린 자신의 기적 같은 이야기를 인터뷰하려는 기자들의 요청에 거부하기에는 이미 늦어버린 듯했다.
"제임스, 준비되었어? 새 기자가 곧 방문할 거야."
"응 클로이.."
제임스는 면도로 매끈해진 턱선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리며 억지 미소를 지어내보았다.
드디어 초인종이 울렸다. 클로이의 안내에 따라 여기자와 카메라맨이 거실로 들어왔다. 매 같은 그들의 눈이 소파에 앉아있는 제임스와 마주쳤다. 격식을 차린 여기자와 그녀의 뒤에 한 발짝 물러서 있는 건장한 체격의 카메라맨은 사뭇 진지하게 제임스를 바라보았다. 제임스는 사람들로부터 주목받는 이 상황이 어색했다. 예전 물리학 대학 강의 때 자주 입었던 그레이 버드아이 원단의 슈트마저도 편하지 않았다. 단정하게 빗어 올린 머리칼을 멋쩍게 쓰다듬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에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저는 제임스라고 합니다."
제임스는 어색한 표정을 감추려고 서둘러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크리스티나입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시고 이렇게 댁으로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 앉으시죠."
여기자는 악수로 맞잡은 그의 손을 자연스럽게 뺀 후 카메라맨에게 시작 사인을 보내고 대화를 바로 이어 나갔다.
"제임스 씨는 혼수상태에서 어떻게 깨어나신 겁니까?"
제임스가 조심스럽게 입술을 떼었다.
"저는 클로이를 만나러 가는 길에 마주 오던 트럭과 정면으로 추돌하였어요. 그 이후 기억이 없습니다. 혼수상태로 1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러 더 이상의 희망은 없다고 들었는데... 저에게 아무래도 기적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그녀는 기적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긴급하게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혹시 눈을 떴을 때 어떠한 현상을 겪지는 않았을까요?"
"음..... 글쎄요... 눈을 떴을 때 텅 빈 병실이 상당히 추웠어요. 어디선가 매캐한 냄새가 진동했었고, 온몸이 바위에 눌린 듯한 압박에옴짝 달짝하지 못했어요. 뭔가 강한에너지가제 몸으로 들어오는기분을 느끼면서 점점 저림 현상이 완전히 사라졌고,온몸이날아갈 듯가벼워지기 시작했어요."
제임스가 그때를 떠올리며 괴로운 듯 미간을 찌푸리자, 크리스티가 그의 얼굴 쪽으로 몸을 실으며 속삭이듯 물었다.
"그런데 제임스 씨.... 당신이 깨어난 3시 14분에 정말 믿지 못할 일이 생겼습니다. 알고 계셨나요?"
크리스티는 사뭇 진지한 눈빛으로 제임스를 바라보았다.
"3시 14분?"
제임스는 호기심에 찬 표정으로 크리스티나의 눈을 마주 보며 물었다.
"제임스 씨가 깨어난 그때 그 시간.... LA 병원 중환자실에 누워있던 혼수상태의 4명의 환자들이 동시에 깨어났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제임스 씨를 포함하여 일부는 건강을 회복했다는 결과를 보고 받았습니다만 뇌의 가능을 상실한 환자들이 어떻게 동시에 깨어났는지 미스터리입니다."
크리스티나가 전한 기이한 현상을 듣게 된 제임스는 소름이 돋았다.
"환자들이 동시에 깨어나다니 믿을 수가 없군요!! 혹시 그들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어요?"
"그게... 한 분은 인터뷰를 거부하였고, 방송에서 다루지는 않고 있지만 나머지는 실종되었습니다."
"실종이라..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요?"
"글쎄요.. "
제임스는 한 참을 다문 입을 조심히 열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저는 그날 이상한 현상을 경험했습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신비한 푸른빛이 너무 아름다워 홀린 듯 창가로 다가갔죠. 근데 제가 본 것은...가늘고 긴 푸른빛이 천지를 밝혔어요. 빛이백야처럼 밝았다가 다시 어두워지기를 반복하는 현상이 마치 컴퓨터 가상공간처럼 보였죠. 크리스티나.. 혹시 그들을 만나면 이 부분을 꼭 여쭤봐 주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