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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작가 Jun 27. 2022

Black Letter

#3

 


 

 "음.... 그들을 만나게 되면 꼭 취재해 보겠습니다. 일단 FBI 측은 환자들의 발작과 수면장애를 검사하는 뇌파 검사기(EEG)와 근전도 검사기(EMG)의 발화 원인에 관하여 수사를 시작했습니다. 기계적 문제를 의심하고 있죠. 눈을 떴을 때 보았던 현상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어요??"

 "... 얽히고설킨 푸른빛이 하늘과 땅 위로 끝없이 펼쳐져 있었어요. 가늘고 긴 선들이 푸른빛을 띠며 사라지다가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했죠. 마치 온 세상이 컴퓨터 속의 가상현실처럼 보였어요! 바람도, 소리도 그리고 세상의 모든 생명체의 기척을 전혀 느낄 수 없는 진공상태처럼 조용했어요."



 

 크리스티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카메라맨에게 앵글을 줌인하라는 사인을 보내고 다시 질문했다.

  "제임스 씨... 혹시 다른 이상한 점은 없었나요?"

  "정말 이상했던 점은.. 창밖을 내려다보았는데 사람들이 마네킹처럼 움직이지 않았어요. 도로 위를 달리던 차들도 멈춰 서 있었고 시간이 꽤 흐른 줄 알았으나 여전히 3시 14분을 가리키고 있었고요."

 제임스는 자신이 목격한 기이한 현상을 설명하다 체한 듯 갑자기 얼굴이 창백해졌다. 피가 솟고 목이 타들어가는 기분에 잔을 낚아채듯 쥐고서는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너무 죄송합니다..... 멀리까지 와주셨는데 오늘은 여기까지 인터뷰하고 싶네요.."

 식은땀을 흘리는 그를 못내 아쉬워하는 여기자는 제임스의 뜻대로 인터뷰를 멈추었고, 다음 인터뷰 날을 상의한 후 되돌아갔다. 소파에 힘없이 주저앉은 제임스는 그들이 떠난 자리를 지그시 바라보다 무언가에 홀린 듯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제임스가 인터뷰하는 동안 클로이는 앞마당에 나와있었다. 클로이는 그의 기괴한 이야기를 충분히 전해 들었고 그가 온전히 완쾌되지 않았다고 보았기 때문에 인터뷰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녀는 마당에 심은 야채를 칼로 썰며 저녁식사 준비로 마음이 분주했다. 그때 인터뷰를 마친 여기자와 카메라맨이 현관문에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텃밭을 가꾸는 그녀에게 가벼운 눈인사만을 남기고 정원 밖으로 유유히 사라져 버렸다.

  "인터뷰가 예상보다 빨리 마쳤네.."

 흙이 묻은 손을 털며 클로이는 정원 끝에 우뚝 솟은 노란 우편함으로 발길을 옮겼다. 신혼 때 제임스가 직접 도색한 우편함이 어느새 발색되어 누렇게 변해 있었다. 뚜껑 끝 조심스레 들어 올려 손을 깊숙이 찔러 넣어보았다. 수북하게 쌓인 광고지들뿐이었다.

  "온통 광고지뿐이구나... 아! 근데 이건 어디서 온 편지지?"

 검은색 편지봉투가 눈에 들어왔다.

  "발행인도 없고.. 3.14는 뭐야?"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그녀는 놀란 가슴을 안고 황급히 집으로 뛰어들어갔다.

  "제임스.. 제임스.."

 거실은 기척도 없이 고요했다. 저 창가 옆 소파에 제임스가 곤히 잠들어 있는 모습이 보였다.

  '오늘 밤은 악몽 없이 편히 잠들었으면... '

 아이처럼 웅크리고 잠든 그의 어깨가 왠지 작게 느껴졌다. 그녀는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온 그와의 행복한 순간이 물거품처럼 사라지지는 않을까 두려웠지만 그런 감정을 억누른  그의 머리맡에 편지를 올려두고 주방으로 향했다. 


 클로이가 반죽한 치즈 뇨끼를 끓는 물에 넣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제임스가 괴성을 지르자 클로이는 주방에서 하던 일을 멈추고 허겁지겁 그에게 달려갔다. 거친 숨을 내쉬는 그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그녀는 악몽으로 수척해진 그를 품에 안고 진정시켰다.

  "제임스 괜찮아.. 내가 옆에 있잖아."

  "클로이 악몽을 꾸었어.. 그 자가 또 나타났어..."

  "여보, 당신은 아직까지 완쾌되지 않았어. 일시적인 현상일 수 있으니 의사가 처방해준 약을 먹고 좀 쉬어."

 그녀의 말에 안정을 되찾은 제임스는 안도하듯 고개를 떨구다가 머리맡에 있는 검은 편지 봉투로 시선이 갔다.

  "이거 무슨 편지지? 봉투 위에 3:14는 뭐지?"

 제임스는 의문의 숫자가 쓰여 있는 편지를 읽고 주치의가 보낸 것이 아님을 직감했다. 방송 출연 후부터 받아왔던 많은 SNS 악플과 별반 다르지 않은 협박 편지라 확신이 들었다.


제임스 씨.
우리고 보고 겪었던 현상들..
직접 만나서 설명드리겠습니다.
그 자가 당신을 찾기 전에 먼저 찾아가겠습니다.
곧 만나요!!


  편지를 읽고 어이없어하는 제임스는 코웃음을 치며 혀를 끌었다.

  "어디서 내 이름을 언급해? 미친 자식."

  제임스는 혼쭐을 내줄 듯이 허벅지를 두 주먹으로 내리쳤다. 그의 급작스러운 행동으로 초조하게 바라보는 클로이가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말을 이었다.

  "제임스. 일단 진정해. 당신 너무 예민해졌어."

  "악몽에다 협박 편지까지..... 클로이! 우리 한적하고 조용한 시골로 이사 가는 건 어때? 방송국 기자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거야. 당신과 단둘이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

 클로이는 불안해하는 그를 와락 껴안으며 말없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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