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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작가 Jun 27. 2022

Lucas

#4

 



 식사를 마칠 때 즈음 저녁 해가 뉘엿뉘엿 지평선으로 기울었다. 제임스는 마지막 남은 크로와상을 치즈 뇨끼 소스에 쓱 찍어 발라 입에 넣었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꾸덕한 맛이었다. 노릇하게 구워낸 치즈 뇨끼와 빠질 수 없는 달달한 맛의 블루넌 아이스와인까지 환상적인 밤이었다. 지금까지 벌어진 끔찍한 일들이 마치 조작된 연출에 속아 살아가는 트루먼 쇼의 주인공처럼 놀랄 만한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천장에 매달린 고풍스러운 샹들리에가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샹들리에 아래로 늘어진 크리스털 조각에 빛이 반사되어 거실 벽면이 별처럼 반짝거렸고, 제임스를 그윽하게 바라보는 클로이의 눈동자빛으로 가득 찾다. 와인에 취한 클로이의 두 빰이 복숭아처럼 발그스레해지자 제임스는 주체할 수 없는 사랑의 감정을 느꼈다. 그녀의 부드러운 금발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단추를 하나씩 풀어갔다. 벌어진 셔츠 사이로 그녀의 도자기처럼 매끄러운 피부가 조명 아래로 드러났다. 그들은 서로를 의지한 채 소파로 몸을 뉘었다. 끌어안은 알몸 위로 샹들리에 빛들이 아른거렸고, 들썩거리는 소파 위로 간드러진 신음소리가 거세지기 시작했다.



(뉴스 기사 방송 소리)

 "CNN 8시 뉴스의 크리스티입니다. 지난주 3일 30대 남성이 뇌사상태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나 화제입니다. 24일(현지 시각) AP통신 등 외신이 소개한 화제의 주인공은 캘리포니아주에 사는 제임스 매카티(32). 교통사고로 의식을 잃고 1달을 혼수상태였던 제임스는 더 이상의 호전을 기대하지 못하고 뇌사로 판정을 받았었는데요. 그는 20일 미국 NBC 방송 '투나잇 쇼'에 출연해 기적에 가까운 놀라운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그는....."


 

 그들의 격한 신음소리가 잠잠해질 때쯤 돼서야 TV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뉴스 속보를 흘려듣다가 화들짝 놀란 제임스는 재빨리 TV 전원을 꺼버렸다. 인터뷰와 방송 출연 조건으로 받은 출연료로 사고비용과 병원비를 말끔히 해결했지만 자신의 삶이 공개되는 것이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불현듯 여기자와의 인터뷰 내용 중 미심적인 부분이 풀리지 않은 실타래처럼 그의 생각을 복잡하게 했다.


 TV 전원이 꺼지자마자 정적을 깨고 초인종이 울렸다. 불결한 예감을 받은 제임스의 목 뒤로 소름이 쫙 돋았다. 제임스는 현관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가 인터폰의 동그란 버튼을 눌렀다.

  "누구십니까?"

 인터폰 화면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또 한 번의 초인종이 울렸다. 화가 슬슬 뻗친 제임스는 불안해하는 클로이에게 저 멀리 떨어져 있으라고 손짓을 보낸 후, 현관문을 거칠게 열어젖히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가든 넘어 그의 목소리가 허공을 따라 울려 퍼졌다.

  "어떤 놈이 이런 장난을 쳐? 정체를 밝혀라! 협박 편지 쓴 놈이야?"

  그는 미간을 일그러뜨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사람의 흔적이 없이 전혀 없었다. 대문을 닫으려는 순간 무언가의 미세한 숨소리가 어두운 구석에서 울려왔다. 한두 명 아닌 것 같았다. 어떤 무리가 자신의 주위에서 계속 맴도는 기분이 들었다. 제임스가 재빨리 문을 다시 닫으려고 하자 검은 물체가 순식간에 덮여 그의 손목을 잡았다.

  "제임스 씨"

  "아니... 당신은 누구요?.. 사.. 사... 람이오 아니면 지... 짐.. 승이오?"

 제임스는 화들짝 놀란 나머지 입이 떨어지지 않아 클로이도 차마 부르지 못했다.

  "저와 잠시 대화 나눌 수 있을까요?"

 예상과 다르게 검은 물체의 음성은 상당히 나긋했다. 검은손이 얼굴 전체에 뒤집어쓴 덮개서서히 쓸어내리자 그것의 정체가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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