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d off 심리치유책방 Feb 24. 2024

이 시대 창작자들의 외로움을 위로합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론 - 플라톤 지음/천병희 옮김

내담자 지수는 요즘 새벽 5시에 겨우 잠이 든다고 한다. 막상 자려고 누우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 때문에 잠을 못자고 일을 하며 아프게 그냥 버티는 중이라고 한다. 잠을 잘 자는 방법은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었다. 

여러 질문들을 하다가 SNS에 창작한 작품을 올리는 일은 하고 있다는 지수... 지난 1년 동안 달린 악성 댓글에 대해 힘들게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오열을 한다. 너무 안쓰러워서 심호흡을 크게 하라고 등을 길게 길게 쓸어준다. 이럴 때는 이 방법뿐이라 손에 더 많은 마음을 실어본다. 말은 도움이 안된다는 믿음으로..

    

“ 선생님. 처음엔 이상한 말들 신경 안 쓰고 잘 참았는데요. 그날은 욕설이 담긴 댓글을 보는데 갑자기 심장이 빨리 뛰고 숨을 못 쉬겠고 이러다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울먹이며 말하는 그녀의 말들에 마음속 한편에서 강하고 역동적인 무언가가 치고 올라온다. 

    


우리 시대 크리에이터들은 이렇게 외롭고 힘들게 고립되어 간다. 창작을 한다는 것은 최대한 자극을 끌어올리고 새로운 세계의 한 장면을 여는 일이기에 이미 홀로 견디는 불안한 일이다. 거기다 계속 객관적 기준을 가지고 자기 검열을 하는 숨 막히는 활동일 것이다. 이런 가운데 부정적인 평가에 마주하면 누구나 상처를 크게 입는다.      



고대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세상을 자연으로 설명하는 세계관을 넘고 넘어 인간이 세상의 중심이 되는 이성 위주의 철학을 처음 연 위대한 스승이자 창작자였다. 그는 그 시대 다른 철학자들과 달리 ‘절대적 진리’의 세계를 말하며 홀로 다른 철학적 세계관을 창조한다. 그리고 대가 없이 청년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거리의 철학자로 살았다. 인기가 많아지면서 청년 고객을 잃은 경쟁자들은 그를 신을 믿지 않고 청년들을 현혹시킨다는 명목으로 고발한다.      


‘ 소크라테스의 변론’에서 소크라테스는 자기의 죄를 변론하면서 멍청한 청중들을 향해 떠들지 말고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외치며 자신이 홀로 완성한 진리의 세계를 찬찬히 당당히 설명한다. (이후에 플라톤은 이 진리를 이데아로 칭한다.) 그러나 유죄가 되고 사형이 선고된다. 친구 크리톤과 제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옆집에 닭을 갚아달라는 말을 남기고 죽음을 맞이한다. 마지막 변론을 보자.     

     

“ 나는 여러분에게 사형선고를 받고 법정을 떠나지만 내 고발인들은 진리에 의해 사악하고 불의한 자라는 판결을 받고 떠날 것입니다. 또한 내가 내 판결을 받아들이듯이 그들은 자신들의 판결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나는 이제 죽어서 노고에서 벗어나는 게 더 좋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나는 죽으러 가고 여러분은 살러 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중에서 어는 쪽이 더 나은 운명을 향해 가는지는 신 말고는 아무도 모릅니다. ”     


우리는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의 플랫폼에서 자신의 고유한 세계를 창작하는 크리에이터들을 무수히 본다. 나의 내담자와 같은 불안과 고통스러운 외로움을 직면한 그들은 일부 사람들이 하는 악의적인 말들에 무너지고 있다. 

정신적인 문제를 겪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적 문제와 정신적 문제와 자신의 능력을 혼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신적 고통은 치유되어야 할 병이고 증상인데 자기가 잘못해서 의지가 박약해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고 속절없이 믿게 되고 병이 호전되지 않는 것이다.    

 

 < 외로웠지만 길게 오래 살았던 테스형에게 배우는 지혜 >

   

소트라테스는 제자들에게 문답법을 통해 진리를 알도록 가르치기 위해 길에서 제자들을 만나고 집요하게 자신이 창작한 이데아를 설파하며 나쁜 어른들이 가르치는 세계를 벗어나라고 한다. 정작 본인은 지혜로운 스승도 없는데 어디서 용기를 얻어 자신의 삶을 창작한 것일까?     

그는 내면의 목소리를 믿었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자신에게 말을 걸던 진리를 말하던 주체적인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통찰을 했다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세상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삶의 방식을 따르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이 믿는 그 무언가에서 비롯된 내적 목소리를 따랐다고 한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내면의 목소리는 지혜다. 지혜란 나만 알고 있는 나의 내면에서 탄생한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길을 여는 내담자 지수는 지혜로운 사람이다. 세상의 일부 지혜롭지 못한자 들은 있기 마련이다. 고대에 소크라테스를 괴롭혔던 사람들이 있었던 것처럼.     


 



내담자 지수에게 묻는다.

“ 악성 댓글을 다는 사람이 전부 인 가요? 지수 씨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나요? ”

“ 아니요. 제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고 그 사람들 때문에 여기까지 왔어요.”

“ 그러면 자신을 그렇게 기쁘게 했던 창작을 정말 그만두고 싶은가요? 그들을 이겨먹으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 때문에 자신이 어렵게 찾은 좋아하는 것을 그만두고 싶어요?”

“ 아니요” 하며 많이 운다. 더 많이 울어도 된다고 허용해 주고 기다린다.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위로이기를 바라며... 그리고 어렵게 만든 자신의 목소리를 소크라테스처럼 맞서서 지키길 바라며.....  

그리고 다음 회기에는 같이 맞설 수 있는 방법을 찾고 글을 써보자고 제안한다. 한결 목소리가 안정된 내담자를 본다. 



  

창작자들의 외로움은 결국 사람들의 왜곡된 시선에서 비롯된 염치없고 비정한 말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도 아주 손쉽게 한마디 말, 한 줄의 글로, 순간의 시선으로 고독하게 쌓아 올린 창작자들의 세계를 망가뜨리는 상황을 마주한다. 그럴 때 조용히 테스형의 죽음을 떠올린다. 


(참고로 쳇지피티가 알려준 소크라테스 mbti  유형은 INTP입니다. ^^ )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