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d off 심리치유책방 Jul 13. 2024

'이런 내가 지겹다.' - 자기 오해의 외로움

 '열두 발자국' 정재승

'진짜 정말 지긋지긋하다.'

'지겨워 지겨워'

제발 너무 사랑하지만 어쩔 수 없으니 헤이 지자고 하시라. 아니다. '네가 싫다. 그만 만나. 싫은데 이유가 있냐?' 해도 좀 울다가 금방 잊을 것이다. 싫다는 데 어쩌랴.


'지겹다'가 상대의 입에서 이별 사유가 되면 문제는 달라진다. 지겹다.... 상대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아름다운 이별이 아닌 끝장을 예고한다.


'뭐? 지겨워? 왜 뭐가? 너는 뭐 신선 식품이라도 되는 줄 아냐? 그래 끝내. '

상대방이 하는 지겹다는 평가는 내가 멍청이라 말을 해도 반성을 안 하고 똑같이 행동하는 상태일 때 하는 말이라 자책이라는 구덩이를 깊게 파게 만든다.


정신을 차리고 구덩이를 얕게 파기 위해서, 이불킥의 후회를 막기 위해서는 끝장을 각오하고 상대에게 덤벼서 내가 한 잘못, 상대방의 잘못을 정확히 짚어야만 한다.


대부분의 상대방의 지겹다는 공격은 잘못을 정확히 짚고 오해를 풀어 잘 마무리하고 아름다운 혹은 꾸질한 이별을 하고 우리는 성숙해진다. 그래서 사랑보다 이별이 더 중요한 일이다. 큰 산을 넘어야 근육도 커지는 것처럼.


반면 '자기혐오'즉 '이런 내가 지겹다'라는 부정적 마음 습관은 '자기 오해'라는 공격을 거듭하지만 막거나 변명을 하지 않고 억울하게 2차 가해를 스스로 한다.


40대 내담자인 B는

'저는 늘 눈치를 봐요. 남편이 잘해주거든요. 근데도 계속 눈치가 보여요. 그리고 모임 가면 웃기려고 말을 자주 하는데, 이상하게 침묵을 못 견디겠어요. 집에 오면 계속 내가 잘못했나 하는 후회를 해요.'


'모임 사람들이 전부 당신을 싫어 하나요? '


'아뇨. 그렇지 않은데 계속 눈치가 보이고 그러는 내가 싫고 이런 생각하는 제 자신이 너무 지겨워요.'


B는 어린 시절 부모님의 방치로 외롭게 자랐고 결혼 후 남편을 따라 지인하나 없는 곳으로 이사를 와서 너무 외로웠다고 한다. 남편은 직장 때문에 늦게 왔고 아이들을 독박 육아를 하며 우울증을 겪었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에게 크게 화를 냈는데 그 모습에 남편이 '애랑 똑같이 그러면 어떡해'라며 '혼을 냈다'라고 한다. 남편이 직장을 그만두고 육아를 같이 했는데 자기를 못 미더워해 늘 남편 눈치가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다른 관계에서도 잘 보이고 싶어 늘 눈치를 보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어린 시절부터 성인기를 거쳐 상처를 남긴 트라우마는 치료되지 못하면 부정적 자기 이미지를 만들고 거듭되는 자책을 유발한다. 자책이 쌓이면 이제 스스로 '자기 공격'.'자기혐오'를 습관적으로 모든 상황에 끌고 온다. 생각이 부정적이 되면 행동도 자주 흐트러지고 실수가 되고 또 눈치를 보게 만든다. 그렇게 쪼그라든 나 자신을 보면서 스스로 '지겹게 싫다'가 된다.




'상담을 하고 치유 모임을 해서 공감과 지지를 받으면 괜찮아지거든요. 그런데 또 계속 죽고 싶거나 또 내가 말 실수 했나.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는 건 아닐까. 이래요.

 왜 저는 제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걸까요?'


부정적 마음 습관은 공감받고 지지받는 것으로 한순간 벽을 허물지만 그 벽은 다시 조금씩 견고하게 자라기 때문에  이후 다양한 방법으로  '심리적 재구성'을 해야 한다.


B는 자기 개방을 통해 충분히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고 있고 다양한 모임을 통해 공감과 지지를 받았지만 관성적으로 부정적인 마음 습관을 통해 '자기혐오'를 계속하는 중이었다.


심리적 재구성은 자기 문제를 새롭게 보는 작업을 통해 더 이상 상처를 받지 않는 과정을 말한다. 인터넷 새로 고침처럼 나를 새롭게 인지하는 태도이다.


심리적 재구성을 위해 내담자 B와 함께 '새로고침 일지'를 구체적으로 작성했다. B가 습관적으로 말하는 부정적 자기 인식 '나는 경솔하고 남의 눈치를 본다.'는 말을 일지에 적게 하고 긍정적으로 자기 인지를 하도록 상담하며 재구성하게 도왔다.


B는 한참 후 일지에 이렇게 '새로 고침' 하여 적었다.


'나는 상대방의 말을 잘 듣고 분위기를 좋게 만드는 노력을 하는 밝은 사람이다.'


새로운 환경에 자신을 놓이게 하는 것도 굉장히 좋은 전략입니다. 예를 들면 학교를 옮긴다거나 유학을 간다거나 하는 거죠. 삶의 환경이 바뀌면 저절로 새로고침이 이루어집니다. 새로운 환경에서 집을 구하고 차를 구하고 가구를 놓고.... 하나하나 삶을 완전히 리셋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한테는 그것이 굉장한 스트레스겠지요. 일상적이고 안정적인 상태로부터 벗어난 삶이니까요. 결국은 그 삶도 언젠가는 일상이 될 테니, 한동안만 그 혼란스러움을 즐기면 됩니다.
 


《열두 발자국 148쪽 인용》  


처음에 B는 많이 쑥스러워했다. 반면 표정은 밝았다.


"선생님. 별거 아닌 것 같은데 적어보니 뭔가 다른 내가 된 것 같은데요."

우리는 별거 아닌 것에 상처를 받고 자신을 오해하고 미워하지만 또한 별거 아닌 노력으로 성장하고 성숙한다.


이전 14화 [검진결과를 기다리는 중년의 외로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