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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 off 심리치유책방 May 25. 2024

[검진결과를 기다리는 중년의 외로움]

너무 시끄러운 고독 - 보후밀 흐라발

주사 바늘이 훅 들어오는 순간, 아프지 않다. 머릿속 생각이 엉켜 바늘이 들어오고 나오는지 감각이 없다.

"종양으로 보이진 않는데 결핵성 임파선염 같은데."

"폐결핵이 아니고 임파선에도 결핵이 생기나요?"

"그럼요, 임파선에 잘 생깁니다. 그리고 종양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어요. 결과는 일주일 뒤에 나옵니다."

​'검사 결과를 기다림'라는 무거운 짐을 온몸으로 3일째 들고 벌을 서는 중이다. 수도 없이 검색을 해보고 안도했다가 희망이었다가 절망이었다가 3일 동안 손에 잡히는 일이 없다. 책 속 한 문자를 열 번 읽는다. 업무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감옥에 갇힌 죄수처럼 네모난 방에서  갇혀 막고 싶은 생각에 공격을 받는 중이다.

속도 모르고 전화가 울린다. 받지 않을까 하다가 허리 수술을 앞두고 병원에 계신 시어머니라 전화를 받는다.

"면회 올때 치약 좀 챙겨 오고 참, 머리빗 하나 사 오너라"

시어머니는 머리빗을 가지고 오라신다.
허리 수술을 앞둔 90의 할머니가 머리빗이라니.
사지 말까 하다 플라스틱 빗 대신 나무 빗을 고르고 달디 단 단팥빵도 몇 개 담는다.

병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거울로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본다. '안색은 괜찮은데... 결과가 나쁘면 어찌해야 하나.''하던 일은 어떻게 정리해야 하지... 애들이 충격받을 일이 없어야 하는데..'
엘리베이터 멈춤 음과 동시에 내 정신도 돌아온다.

​시어머니 머리카락을  머리빗으로 정돈해 드린다. 허리 복대가 머쓱하게 한참을 거울을 들여다보신다. 손수 머리카락을 정성스레 다듬으신다. 내 속과 달리 밝게 웃으시니 되었다 생각한다.

​시어머니의 머리빗을 보며 '너무 시끄러운 고독(보후밀 흐라발)'의 주인공 현타가 스친다. 체코의 폐지 공장에서 일하는 햔탸는 폐지를 압축하며 홀로 살아간다. 홀로 살아가는 햔타는 고독을 시끄럽지만 그만의 방법으로 감당하며 살아간다. 버려진 책을 통해 지난 사랑을 추억하고 예술을 알아간다. 맥주를 마시며 폐지 더미에서 빛나는 책의 문장들을 만나고 삶을 책 속에서 즐기며 그렇게 30년을 보낸다. 책 읽는 순간을 만나게 해 준 폐지 압축기 덕분에 그는 외로움이 아닌 고독을 즐기는 삶을 살아온 것이다.

세월이 흘러 노인이 된 자신처럼 낡은 압축기도 수명을 다하게 되고 햔타는 새 종이를 생산하는 공장으로 가라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햔타는 새로운 세계를 살아내는 대신 낡은 압축기 속으로 들어가 버튼을 누르며 고독하지 않게 삶을 마무리 한다.

​삶을 살아낸다는 것이 흐라발의 말처럼 너무나 속 시끄러운 고독이다. 나이가 들면서 검진을 받는 과정도 힘들고 결과가 나오는 일주일은 하루가 1년처럼 흘러간다. 검진 결과가 좋지 않다면 병이라는 것으로 빨려들어가 삶이 무너질까 무섭고 두렵다. 해오던 일상의 일들이 모두 무의미하고 나의 외로운 마음과 달리 세상을 잘 돌아간다는 서러운 마음도 든다.
'내가 몸에 안 좋은 음식을 너무 많이 먹었나, 너무 착하게 살았나. 그래서 스트레스 때문인가.'
미친 마음들이 뒤엉킨다. '너무 시끄러운 외로움'이다.


결과를 기다리는 4일째가 되는 날, 인터넷에서 검색하다 발견한 의사 선생님의 문장에 마음 한켠이 울린다.

[이 암의 원인은 유전, 환경, 바이러스등 아직 명확하지 않다.]

​"그래, 전문가도 모르는 원인을 나에게서 찾지 말자. 젊었을 때는 절대 모르는 질병의 공포를 대비하려고 보험도 들고 돈도 모으지 않았나. 나도 시어머니처럼 머리카락 정성스럽게 빗고 썬크림 바르고 산책이나 하자."​




나는 녹색 버튼의 작동을 중단하고 폐지가 가득한 압축통 속에 나를 위한 작은 은신처를 마련한다. 아무렴, 나는 여전히 쾌활한 사내다. 그런 내가 자랑스럽고,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 욕조에 들어가는 세네카처럼 나는 한 쪽 다리를 압추통에 넣고 잠시 기다린다. 다른 한 쪽 다리도 마저 통 안으로 무겁게 떨어져 내린다. 나는 똬리를 틀고 살핀 다음 무릎을 꿇은 자세로 녹색 버튼을 누르고 완충물인 책과 폐지속에서 몸을 웅크린다. 한 손에 들린 나의 노발리스를 꽉 쥔다. 내가 좋아하는 글귀에 손가락이 올라가고 입술엔 지복의 미소가 떠오른다. 책을 책장을 쥐고 있다. 사랑받는 대상은 모두 지상의 천국 한복판에 있다고 쓰여있다. 멜란트리흐 인쇄소 지하실에서 백지를 꾸리느니 여기 내 지하실에서 종마를 맞기로 했다. 난 세네카요. 소크라테스다. 내 승천은 이렇게 이루어진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 83쪽 인용



#너무씨끄러운고독#보후밀흐라발#문학동네#동네책방#마인드오프심리치유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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