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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 off 심리치유책방 Jul 20. 2024

사는 게 벌청소처럼 느껴진다면

아무튼 데모 - 정보라

벌청소.
요즘 학교는 벌점을 없애려면 뭘 하려나.
그 시절은 여고생들은 잘못하면 벌청소를 주로 했는데  화장실 청소는 최고 난도였다. 화장실과 청소가 결합했으니 좋은 기억을 만들기 힘들다는 것을 선생님들은 다 아셨나 보다.

고1 때였나.
다니던 여고는 마룻바닥이었고 청소 때마다 왁스칠을 했었는데 그날 내가 바닥을 닦는 당번이었다.
"야. 왁스"
큰소리로 말하면 왁스 담당이 와서 탁탁 바닥에 놓아주고 밀대로 박박 밀어 광을 내었다.
그런데 3월 중순쯤이었나. 그 사건이

" 뭐? 왔어? 그래 왔다. 말버릇이 그게 뭐야."
담임선생님은 내가 왁스를 외친 것을 담임 왔어로 오해해서 들으셨고 반말을 했다고 혼을 내셨다. 아니라고 아니라고 해도 믿지 않으셨고 주변의 친구들과 함께 화장실 청소를 시키셨다. 왜 본인이 잘못 들은 건데 내가 벌을 받아야 하는지 너무 억울해서 엄청 울었었다. 청춘 드라마처럼 남주가 나타나 벌청소를 대신해주었으면 좋겠지만 여고라 주변 친구들 셋이서 청소를 했다. 우리는 담임욕, 학교욕을 하며 엄청하면서 친해졌다. 그 친구들과 친해지지 않았다면 벌청소는 해프닝이 아닌 진짜 벌이 될뻔했다.
그 일로 '억울함'은 경험 없이는 모르는 더러운 감정이라는 것과 그래도 친구랑 같이 하면 청소든 억울함이든 덜 더럽게 느껴진다는 것을 크게 알았다.



형벌이란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혹은 피해자를 위해 필요하지만 형벌 그 자체가 결코 순선하다 말할 수 없다. 조금만 과해도 인간에게 죄이상의 고통을 남기기 때문이며 때로 무죄인데 유죄가 되는 오판도 많기 때문이다.

정의로운 형벌이란 잘못한 만큼 적정한 고통을 주어야 정당하다. 죗값에 적당한 무게의 정의가 무너지면 억울한 삶이 된다. 거기다가 나의 화장실 청소 사건처럼 내 잘못이 아닌데 살면서 '내가 무슨 죄를 지었나.' 하며 하늘을 바라보는 일이 자주일 때 억울하다 못해 분노가 생긴다.

예를 들면 피부색이 달라서, 부모를 잘못 만나고, 가난하게 태어나서, 혹은 여자여서 키가 작아서 외모 때문에...

살면서 삶이라는 길에서 만난 많은 내담자들은 아스팔트가 아닌 비포장 도로 위에 있었다. 비포장 길은 큰 돌, 작은 돌들로 울퉁 불퉁하여 잘못이 없어도 넘어져 피를 본다. 그뿐인가. 지나가는 차 때문에 돌이 튀어 머리를 다치기도 하고 흙탕물을 뒤집어쓰기도 한다.

"저는 잘못한 게 없는데 로드 킬 당한 것 같은 느낌이 자주 듭니다."

이런 끔찍한 마음도 들게 만드는 것이 우리가 만난 삶이다. 삶을 이처럼 형벌로 느끼는, 우울과 고통으로 힘든 내담자들을 만날 때 억울한 화장실 청소를 같이 해준 친구들을 늘 기억한다. 벌을 같이 받았던 친구들 덕에 벌은 추억으로 미화되었고 용기를 내어 학교를 견뎠다.

비포장 길이 언제 아스팔트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큰 돌들은 같이 뻥 차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오늘도 투쟁.!!! 투쟁!!!!


[나는 데모하러 나가서 동지들을 실제로 보면서 실제로 땅을 딛고 같이 행진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 글자 그대로 걸을 때마다 조금은  좋은 세상에 가까이 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된다.  지치고 힘들어도, 우리는 더 좋은 세상을 위해 함께  나아갈 것이다.  투쟁.  ]아무튼 데모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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