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d off Aug 11. 2024

작가가 되고 싶어요.

작가 진로 역량[어른의 어휘력-유선경]

“ 쌤 저 꿈 생겼어요. 작가가 되고 싶어요.” 

    

상담가가 지쳐 쪼그라든 속내가 따가운 여름 햇살에 말린 이불처럼 쫙 펴질 때가 있는데 내담자가 미래를 그릴 때다. 내담자 진아는 무기력을 호소하며 상담 초기에 힘들어하다가 6회기쯤 작가가 되고 싶어 했다. 진아는 답답하면 스스로 책에서 해결책을 찾아보곤 해서 인지 누구보다 자기 이해가 빠르고 찬찬히 아픔을 이야기로 잘 풀어내는 아이다. 진아가 좋아하는 아이스초코를 만들어 주었다. 미래를 조잘조잘 말하는 진아가 기특하다. 시원하게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본다.     


“ 쌤 궁금한 게요. 작가가 되려면 뭘 노력해야 해요? 책만 많이 본다고 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작가가 되려면 대학에 가야 하는지 방송 아카데미로 갈지를 묻는 질문은 많이 받았지만 작가 역량을 묻는 건 진아가 처음이다. 사뭇 진지한 진아의 눈을 두고 속으로 생각한다.     

‘ 진아야. 선생님이 그 답을 안다면 아마 벌써 등단한 작가가 되었겠지?’    

 

“ 나도 책 좋아하고 글을 쓰고 싶은 데 쉽지 않더라고... 글세... 그런 생각은 했어... 글을 쓴다는 것은 외출할 때 옷장에서 옷을 고르는 일과 비슷하지 않을까? 옷장엔 죄다 비슷한 옷이잖아.”

“ 맞아요. 하하. 선생님도 셔츠 디자인 거의 비슷한 거 아세요?”

“ 그지? 하하.. 비슷하게 보이는 것들 사이에서 나만의 특별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게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 잘 모르겠네.. 같이 고민해 보자.”     


상담이 끝나고 진아 미래 질문은 내 현실 고민이 된다. 작가가 되겠다는 멋진 미래를 설계한 진아에게 좋은 연장을 쥐어 주고 싶었다. 글쓰기에 대한 전문적인 조언을 하기에 역부족이라 책을 선물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유심히 책장을 들여다본다. 유선경 작가의 ‘어른의 어휘력’을 고른다. 진아의 미래에 좋은 거푸집이 되기를 바라면서 책장을 넘긴다. 


[나는 사람이 제일 가지기 힘든 것이 관심이라 여긴다. 강퍅할 때는 온통 자기만으로 가득 차 깃털 한 개조차 꽃을 데 없는 것이 마음이다. 그 안에 다른 무엇을 들이는 게 쉽겠는가. 대수롭지 않은 주변과 일상이라면 더욱 데면 데면하다. 옆에 있어도 옆에 없고 봐도 본 게 아니며 들어도 들은 적 없다. 우리는 관심이 없어 관성적으로 보고 듣고 타성적으로 쓰고 말한다. 그러나 클로드 모네의 인상주의는 누가 뭐래도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59쪽 인용   

   

유선경 작가에 의하면 좋은 글은 어휘력에서 나온다고 한다. 즉 제한된 어휘력 안에서는 아무리 기발하고 좋은 소재라고 해도 특별해질 수 없는 것이다. 운 좋게 글로 쓰기 좋은 특별하고 기구한 삶을 살았다 하여도 ‘참 힘들었다.’ 한 줄로 쓸 수밖에 없다면 매력적인 작가는 될 수 없다.      

생각해 보니 내가 사랑한 작가들은 모두 사소하고 자잘한 일상에 관심의 씨줄과 상상의 날줄을 뽑아내고 창작으로 꼬아 매듭을 만들어 책을 완성한다. 어릴 적 엄마가 만든 예쁜 보를 낡은 테이블에 덮으면 거실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처럼..      


‘어휘를 평범한 일상과 버무려 어떤 가능성을 보여주는가’      

내가 사랑하는 작가들은 이 문장에 충실하다. 그들은 일상의 모든 것들을 자세히 보고 관찰해서 감탄스러울 정도로 새로운 문장을 창조하고 인생길을 열어내고 사랑을 이어간다.      

김혼비 작가는 축구에서, 이슬아 작가는 자신의 가족에서, 정세랑 작가는 보건실에서, 박상영 작가는 대도시에서....     

나는 유선경 작가의 책에서 작가 역량으로 ‘사소한 것들에 대한 관심’을 작게 찾아냈지만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진아는 분명 자신만의 작가 역량을 찾아낼 것이다. 진아가 책을 받고 어떤 마음일지 상상하며 다음 상담에서 물어볼 말들을 노트에 기록한다.      


“진아야. 너는 무엇을 오래 자주 바라보고 살아왔을까?”

이전 09화 나는 왜 주장을 못할까?'우여곡절 진로 역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