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을 모아 끝을 이루기
" 선생님. 저는 뭐든 배우고 싶고 관심이 많거든요. 초등학교 때부터 여러 가지를 배워도 끝을 낸 적은 없기도 하고.. 근데 공부도 그렇게 해서... 엄마가 너무 산만하다고 하기도 하고.. 제가 봐도 제대로 하는 것도 없고.. 저 혹시 ADHD 아닐까요?"
" 그래? 이렇게 생각해 보는 건 어때? 넌 작심삼일을 모으는 아이라고... 궁금해서 뭐든 시작하는 삼일을 계속 모으면 끝은 있지 않을까?"
긴 소설 같은 인생 이야기에서 시작함이 정체성을 만들까. 끝맺음이 성장 이야기에 완성일까.
김애란 작가의 '이 중 하나는 거짓말' 소설 속 주인공 채운, 소리, 지우는 부모라는 거역할 수 없는 권력 때문에 떠밀려 위태롭게 '떠나기'를 시작한다. 우리 주변에 늘 있고 과거에 나이기도 했을 모습의 세 아이는 폭력과 가난, 죽음 등의 이유로 강제로 떠밀려 나온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의 끝맺음은 각자의 방식으로 이룬다. 아니다. 끝은 없고 다른 성격을 가진 시작을 한다. 길바닥에 나온 자만이 알 수 있는 외롭고 고독하고 동시에 설레는 시작말이다.
내가 봐온 아이들은 고3 졸업 때까지 빡빡하고 힘겨운 10년을 산다. 김밥을 손에 들고 부모, 조부모, 이모, 고모, 삼촌 혹은 옆집 부모 등 다양한 자가용을 바꾸어 타며 학원과 독서실, 패스트푸드점, 편의점을 전전한다. 학교에서는 수행평가와 다양한 창체활동을 통해 생활기록부를 채워간다. 그래서 자아 정체성 찾기, 질풍노도의 시기로 떠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다. 절대적으로. 뭐든 찾으려면 여유가 있어야 한다. 어디에 두었는지 매 순간 까먹는 스마트폰을 찾는 것도 시간 할애가 필요한 것처럼.
이렇게 고등학교 때까지 여유가 없어 질주하는 삶을 살다가 대학교에 가면 겨우 시간이라는 것이 생긴다. 드디어 그렇게 스무 살을 넘기며 '정체성 찾아 떠나기'를 시작한다. 그래서 지금 20대들은 예전보다 더 혼란스러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거기다 동시에 직업도 구해야 하고 돈도 벌어야 한다. 숙제처럼 자기 자신에 대한 궁금증이 쌓이고 밀린다. 그러다 보니 청년 우울도 심해지고 공황장애, 강박장애도 생긴다. 큰 파도가 되어 들이닥친 어른되기의 시작이 감당이 안 되는 것이다. 잔잔하게 들어오면 피하거나 혹은 대비할 수 있을 텐데 그럴 여유를 아이들에게 주지 못한다. 어른으로 깊게 반성하게 된다.
"그렇죠? 그래도 되죠? 선생님이 그랬잖아요. 우리는 살 날이 너무 많다고. "
진로상담이라는 명분으로 들어와 심리상담을 끝내고 나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길을 찾아 떠나는 저 아이들이 끝만 생각하지 않길 바란다. 하루하루를 모아 '특별한 삶'으로 끝은 내기보다 다양한 자신만 이유로 '괜찮은 시작'을 자주 하는 '괜찮은 삶'이길 응원한다.
" 숱한 시행착오 끝에 자신이 그렇게 특별한 사람이 아님을 깨닫는 이야기. 그래도 괜찮음을 알려주는 이야기에 지우는 더 끌렸다."
"이제 누구의 자식도 되지마. 채운아. 그게 설사 너와 같은 지옥에 있던 상대라 해도, 가족과 꼭 잘 지내지 않아도 돼."
"누구든 신의 얼굴을 그리기 위해서는 신의 얼굴을 조금 지워야 했다."
(김애란. 이중 하나는 거짓말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