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마치며
내가 싫은 날보다 좋은 날이 더 많습니다.
이혼 가정에서 컸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말을 합니다.
“이혼이 요즘 뭐 별거냐. 너만 그런 거 아니다. 한부모 가정 많단다. 힘들었을 텐데 잘 컸네”
나만 특별히 겪어내는 것이 아닌 남들도 겪는다는 사실이 때로 상처의 일부를 살짝 덮어주기도 합니다. 그 덕에 나름 위로하고 열심히 살아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가족이 지우는 무게가 여전히 크게 느껴집니다.
흔하다는 말은 많은 사람들이 겪는다는 말입니다. 남들도 그렇다는 말 뒤에 숨지만 막상 숨고나면 어두워 외롭습니다. 이혼한 부모를 두는 일은 숨바꼭질 같다고 생각합니다. 숨은 걸 알텐데도 그 누구도 찾지 않아 종내는 홀로 울게 되는 아픈 숨바꼭질 ..
말 중에 위로인가 공격인가를 고민하게 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가벼워지라고 해준 말 같은데 곱씹어 들으면 조각난 아픔을 짓이기는 느낌을 주는 말들도 많습니다. 제발 한번 더 생각하게 하는 말들은 더 이상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던지는 사람은 별거 아닌 말인데 상처로 연약한 사람들은 말이 돌덩이가 되어 자아를 억압하게 되는 일이 자주 있어서 하는 말입니다.
아픈 말들에 짓눌려 자기를 살필 힘이 없는 내담자들을 보며 매일 결심합니다. 아픈 돌을 완전히 치우지는 못해도 지렛대 정도는 되어 주자고.
선배 상담가에게 아픔을 쏟아내고 돌아와 비슷한 아픔을 가진 딸들을 내담자로 만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언젠가는 부모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습니다. 이 소설의 상당 부분이 상상이기도 하고 진실이기도 합니다.
물끄러미 큰 딸아이 얼굴을 볼 때 가끔 마음이 저립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렇습니다. 내가 저 아이에게 어떤 외로움을 주고 상처를 내었나. 우리 부모처럼 그렇게 살며 아이를 깊게 베지는 않았는지 말입니다. 무의식의 상처가 자주 돋아나서 그런 거겠지요.
이 글을 다 쓰고 이제야 겨우 부모보다 내 자아를 더 크게 봐주려 한, 노력한 참나를 만납니다. 생각보다 불행한 삶은 아니었네요. 그래서 요즘은 내가 싫은 날보다 좋은 날이 더 많습니다.
다양한 색을 가진 가족 결핍의 틈을 책임과 의무로 힘들게 메우는 딸들을 상담 현장에서 많이 만납니다. 저와 같은 그들이 훨훨 자유롭기를 바라고 주변에 도움을 꼭 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마칩니다.
여러분은 아직 그 누군가를 만나지 못하게 아니다.
당신이 알지 못하는 자기 자신에 대해 더 잘 알아주거나
당신이 외면하는 것을 당신 대신 품어주거나
당신이 미워하는 자신을 조건 없이 사랑해 주는 그런 존재는 없다.
확실히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면 어디로 시선을 돌리게 될까
바깥의 다른 존재가 아니다
바로 자기 자신이다.( 내가 좋은 날보다 싫은 날이 많았습니다(변지영)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