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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ff Oct 02. 2024

수치심을 넘기

2차 가해감정을 이해하기

유튜브 영상 속 엄마는 사주를 전달받자 중얼중얼 할매를 찾는다. 언제 언제까지 기다리면 다 해결된다고 눈을 감고 계속 말을 이어간다. 유명 유튜버는 연신 조아리며 신나서 떠든다. 곧 영광을 볼 사주는 유명 남자 배우였다. 그가 찍은 로맨스 드라마는 6월에 시청률은 고공행진했다. 그 덕에 엄마는 작은 동네에서 무당년이다가 집을 나가고 무속인이 되었다. 

엄마가 집을 나가고 무당을 향한 멸시와 조롱은 오롯이 지선에게 돌아왔다. 동정을 가장한 멸시는 지선을 통과해 동네 아줌마들이 펼쳐 논 술판 안주가 되었다. 무당 딸이 공부도 잘한다. 너희 엄마 바람 나서 나갔냐 그래도 네 엄마가 용하기는 했다는 말들이 지선 주변을 떠돌다 박혔다. 지선은 멸시보다 되물림 되어 무당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이 공포스러웠다. 불안함과 억울함은 뒤범벅되어 꿈에 나타났다. 꿈에서는 작두를 타는 엄마의 발에서는 피가 흘렀고 지선이 내림굿을 받기도 했다. 지선은 잠을 잘 수 없어 공부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견딜 수 없을 지경이 되어서야 정은에게 사실을 털어 놓았다. 정은은 기출문제 답을 내듯 깔끔하게 말했다.

- 그래? 그거면 걱정 안해. 난 또,, 그렇군.. 매점 가자.  

손을 잡고 교실문을 나섰다. 그날 이후 꿈은 서서히 사그라들었고 불씨는 남았다. 영상 속 엄마는 꿈속보다 젊고 힘이 있어 보였다. 지선은 저 사람이 나를 버린 사람이라고 폭로하고 싶었다. 당신들 인생 불행을 막아주는 저 사람이 정작 제 딸은 버렸다고. 그 딸은 서러웠고 두려웠다고 당신들은 진실을 알아야 한다고 소리치고 따지고 싶었다. 지선은 정작 엄마는 없는데 무당딸로 불린다는 게 억울하고 숨이 막혔다.      

엄마의 점집은 금방 찾았다. 간판이나 그 흔한 대나무도 꼽혀있지 않았지만 사람들 줄이 길다. 긴 줄 사이로 익숙한 향냄새가 난다. 지선은 줄을 밀치고 들어가 방문을 확 열었다. 평소 지선답지 않다. 엄마는 미동이 없다. 다만 지선을 가로막는 남자에게 상호를 대며 안내하라고 한다. 지선은 엄마의 담담한 표정에 어이가 없고 놀라는 자신이 싫어진다. 느닷없이 만나질 줄 알았던 것일까. 혼란스럽게 발을 옮긴다. 정신을 차리고 커피를 주문하고 테이블로 가서 앉는 동안 어찌해야 할지 아득하다. 동시에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기 시작한다. 

잠시 후 익숙한 향냄새가 난다. 엄마가 건너편에 앉는다.

- 미안해... 엄마가.. 정말 미안해.... 우리 지선이 잘 컸네...

위악스러운 최대치는 뭘까? 괴롭힐 말들을 최선을 다해 떠올려보지만 몸에 한기가 들어 머리통이 윙윙거린다.

- 그만해... 왜 그랬어요? 그 어린 거 두고 가서 행복했어요? 하긴 뭐 출세했더라고요.?

- 미안해.. 지선아... 너를 두고... 지금부터 엄마가 잘할게..

- 필요없어... 그럼 건강하세요.

지선은 엄마 건강을 비는 자신이 낯설다. 그런 건 친한 모녀사이나 하는 인사가 아닌가. 지선은 일어서며 비틀거리는 몸을 들키고 싶지 않아 숨을 참고 다리에 힘을 준다. 다행히 엄마는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닦느라 지선의 균열을 모른다. 지선은 고개를 들어 자신을 보지 않는 엄마가 밉다. 동시에 엄마 몸은 꿈에서 보다 작구나 느낀다. 엄마를 바라보자 미움과 그리움이 팽팽하게 올곧은 일직선을 그린다. 지선은 최대한 침착하게 걸어 나가 카페 문을 열었다. 쏟아지는 햇살에 질끈 눈을 감았다. 일순간 몸을 통과해 훅 뚫고 지나는 더운 바람에 온몸이 시리다.     

몇 주가 흐르고 지선은 오랜만에 '스튜디오 도희'로 들어섰다. 어색한 걸음에 가장 크게 반기며  '나님'이 성큼 다가선다. 그녀답게 곱고 밝은 표정이다. 손을 잡고 어깨를 그러 안는다. 겨우 몇 번을 만났을 뿐인데 고맙고 기쁠 수 있구나. 지선은 낯선 마음이 오랜만에 싫지 않다. 며칠 전 그날 엄마가 눈물 대신 안아주었다면 엄마를 용서했을까. 지선은 엄마의 작은 어깨를 속으로 밀친다. 

- 도영 씨가 저희한테 연락하고 상황을 설명해 주고 몇 주 시간을 주자고 했어요. 걱정 많이 했는데 보니 좋네요.

자유님이 밝게 웃으며 지선에게 말을 건다. 도영이 해준 배려와 기다려준 이 사람들 덕분에 엄마에 대한 생각을 멈춘다. 낯선 응원과 배려가 조금은 어색하고 불편하지만 기쁨이 꽤 크다. 상담사가 테이블 주위로 앉기를 권유하고 치유 모임 녹화가 다시 시작된다. 최근 근황을 묻고 요즘 생겨난 마음들에 대해 말을 한다. 

-저는... 처음에 상담사님이 이혼은 부모 잘못이라고 하셨고 분명 제가 잘못한 게 아닌데... 왜 자꾸 저 자신이 싫어지는지 이해가 안 돼요... 그래서 더 싫기도 하고...

 나무는 작은 목소리로 말을 한다. 마지막에 마지못해 말을 하던 사람이 첫 시작이라 지선은 놀랐다. 거기에 용기를 얻은 지선은 침묵이 흐른 뒤  말을 이었다.

- 나무님 말을 들으니 저도 그랬던 거 같아요. 제가 공부를 더 잘하거나 동생들을 더 잘 돌보고 말을 잘 들었으면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런 기분이 늘 힘들었죠. 

- 맞아요. 저도 그랬어요. 근데 전 좀 억울하기도 해서.. 떼를 많이 썼죠.. 그러고 나면 좀 괜찮아지기도 했지만.. 일부러 밝은 척도 하기도 하고.. 좀 두서가 없네요. 이혼 가정이지만 늘 설명을 들어왔다는 자신만만해 보이던 나님도 힘겨운 마음들을 펼쳐 보였다. 지선은 나님의 슬픈 표정에 묘하게 안심이 되었다. 자신만 힘들었던 건 아닌 모양이다.

상담사가 몇 분을 고개를 끄덕거리고 노트에 말들을 적고 고개를 들어 말을 있어간다.

 - 나님이 며칠 많이 힘드셨을 것 같아요. 불안정한 부모 관계를 바라보며 큰 아이들은 주로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어린 시절에는 뇌 발달이 덜 돼서 상황을 크게 보지 못합니다. 즉 어릴 때는 판단과 결론이 자기 자신이죠. 음... 조금 다른 의미로 자기중심적이죠. 입체적으로 보기가 힘들죠.

듣고 있던 자유님이 말을 건넨다.

- 저도 늘 부모의 이혼을 찾았어요. 정말 이유를 알고 싶었어요. 늘 부모가 싸우며 뭘 잘못했지 생각했죠.

자유님이 고개를 숙이자 상담사가 손을 잡아준다. 자유님이 떨리는 눈을 바로 뜨려고 애를 쓴다. 지선도 애를 쓴다.

-그렇죠.. 맞아요.. 부모 갈등을 보고 자라면 모두 자기 잘못 같은 생각이 무조건 듭니다. 그건 정당해요. 여러분이 죄를 지어서 실수를 해서 생기는 감정이 아닙니다.

지선은 혼자 서울로 도망 오면서 동생들에게 미안했던 마음들을 떠올린다. 금세 눈에 눈물이 차오른다. 고개를 흔들며 다시 상담사의 말에 집중한다.

- 죄책감은 수치심을 자주 동반하죠. 수치심은 뭘까요?

자유님이 조금은 신중하고 침착한 태도로 말을 이어간다. 각진 얼굴에 단호함도 보인다.

- 수치심은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는 마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 맞아요. 수치심은 자기 존재 자체에 대한 부끄러움이죠. 일차적 감정이 아닌 부차적 감정인데요. 부모의 이혼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은 여러분이고 슬프고 고통스러운 감정은 당연합니다. 거기서 멈춰야 하는데 어릴수록 죄책감이 심해지고 책임을 지려는 마음이 커져요. 그 큰일 즉 어른들이 벌인 일을 아이는 해결하지 못하죠. 해결되지 못한 미해결 과제는 이제 아이 본인을 괴롭힙니다. 못난 자신이 부끄럽고 싫어지죠. 

지선이 딱 그렇다. 슬픔에만 머물지 않았다. 온갖 이유로 자신을 몰아세웠다. 그 생각에 이르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나님이 그 순간 울기 시작했다. 상담사는 나님을 기다려 주었다. 지선은 눈을 나남에게 떼지 않았다. 눈물보다는 약간 편안함이 불편함 대신 생겼다. 개인상담 이후로 종종 편안해진 지선은 거기에 머문다.

- 잘 생각해 보세요. 부끄러운 건 여러분이 아니에요. 여러분의 슬픔에 주목하지 않은 부모, 불친절한 말로 이혼 가정 아이들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 세상이 잘못한 거예요. 

상담사는 진심에 힘을 실어 모임 사람들을 일으킨다. 지선은 조금씩 마음에 불이 켜진다. 동네 아줌마들의 조롱 섞인 말들을 생각하고 정섭 엄마가 위로를 가장한 멸시가 떠오른다. 지선은 달라졌다. 이제 불편한 마음에 머물 줄 안다. 친구 정은과 도영의 따뜻한 말 덕분이고 이 사람들 때문이다.

상담사는 시간을 주며 눈을 감고 자신이 소중하다는 말을 여러 번 되뇌기를 주문했다. 지선은 눈을 감고 그날 만난 엄마의 얼굴을 떠올리며 내 잘못이 아니다. 나는 버려졌지만 잘 살았고 소중하다는 말을 여러 번 되뇌고 엄마의 눈물을 기억했다. 

상담사는 모임 마무리 말을 이었다.

- 수치심의 큰 문제는 기분이 억눌리고 억압이 오면 불안하고 우울해집니다. 잘못하지 않았는데 더 이상 자책 마세요.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수치심을 걷어내면 슬픔이 보일 겁니다. 우리가 장례식에 가서 슬퍼하지 말고 죄책감을 느끼라고 하지 않죠.. 그건 사람을 죽이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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