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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taetae Jul 11. 2023

제주 올레_7

보이지 않는 것들

애월을 걸었다. 16코스와 15-B코스. 햇빛이 많이 뜨거웠다. 계획할 때 어제 18-2코스(추자도-비교적 짧음-) 하나를 걸으니 다음날은 많이 걷자 하고 길게 잡은 코스였다. 똑같은 숙소에서 연박하니 가방도 가벼웠다. 하지만 아무리 가방이 가볍고 어제 많이 안 걸었다 해도, 폭염 속 30KM를 걷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리가, 특히 발이 많이 상한 게 느껴진다.



올레 16코스는 잘 정돈되어 있었다. 군더더기가 없었다. 표지가 적절한 곳에 있었다. 무엇보다 누군가의 흔적이 많았다. 올레지기들은 매일같이 코스를 돌며 길을 관리한다. 올레팀도 있다. 길을 걷다 보면 때로 길을 관리하고 있는 올레팀을 만나기도 한다. 그리고 그 관리 아래 올레꾼들은 자신의 무게를 담아 길을 가꾼다. 흔적을 남김으로써 다음 사람이 편히 걸을 수 있도록 해준다. 그들 각자의 사연이 어떻든, 모든 것들은 길 위에서 연결된다.



  걸은지 5시간쯤 되었을 때, 환해장성이 보였다. 온평에서도 본 것 같은데, 애월에도 있구나 했다. 돌아와 찾아보니 환해장성은 원래 제주도 전역에 걸쳐 쌓였었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많이 허물어졌지만. 어쨌든 환해장성은 지금도 든든하게 제주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얼핏 보면 환해장성을 돌무더기로 착각할 수 있다. 나도 그랬다. 이는 두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다. 첫째, 높이가 작아서이다. 현재 환해장성의 높이는 그리 높지 않다. 편차가 있지만 어림잡아 2M쯤 되는 것 같다. 이 정도론 택도 없다. 훼손의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둘째, 쌓는 방식 때문이다. 내가 모든 환해장성을 본 것은 아니지만 많은 환해장성은, 지금 이름보다 환해장'담'같은 생김새를 하고 있다. 환해장'산' 느낌도 있다.

  허물어지고 있고 이런 오해도 받는 환해장성이지만, 환해장성은 제주도 사람들에게 고마운 존재였다고 한다. 해풍을 막아주었기 때문이었다. 환해장성이 끝나갈 무렵, 고령의 신사분이 환해장성에 붙어서 무엇을 하시는 걸 보았다. 무엇을 하시고 계신 걸까. 궁금증이 들어 가까이 가보았다. 그리고 내 눈을 의심했다. 그분은 개인 용품을 챙겨 오셔서 "문화재 보호 안내판"을 닦고 계셨다. 나름 답사를 좋아해 다양한 문화재를 보았다고 할 수 있는 난데, 그런 분은 처음 보았다. 나도 모르게 "감사합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분은 쑥스러우신지 허허 웃기만 하셨다.

  


  문득 이 환해장성을 쌓은 사람은 누구일까, 생각했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 나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려 노력한다. 무명의 존재를 생각한다. 지금 여기를 만든 무명들. 그러나 기억되지 않는 무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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