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설한장 Apr 04. 2023

도서관

  어느새 벚꽃이 무리 지어 떨어지고 있었다. 꽃잎이 사라진 자리에선 새파란 잎사귀가 돋아났다. 며칠 되지 않는 짧은 기간 동안 몸을 털어내고 새 단장을 하느라 부산스러운 벚나무가 길을 따라 늘어서 있었다.

  뒤에 있는 건물은 생각보다 작았다. 시골에 있는 작은 동사무소를 떠오르게 하는 사이즈에 나는 잠시 망설였다. 높이도 4층, 아니 3층은 될까. 아무리 공립도서관이라고 해도 이 정도면 열람실 하나 제대로 갖추고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그래도 언제까지나 길 옆에 서서 하염없이 떨어지는 벚꽃을 맞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의도치 않게 방문한 낯선 동네에서 내가 기꺼이 두 발로 걸어 들어갈 장소는 도서관이라는 공간 밖에 없었으니. 나는 하는 수 없이 그 실망스러운 외관을 하고 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정면에는 게시판과 어린이 열람실 입구가, 오른편 안쪽으로는 일반 열람실 입구가 보였다. 투명한 문 너머로 살짝 보이는 모습은 아무래도 작은 공간처럼 보였다. 그래도 열람실이라도 제대로 갖추어져 있는 것이 어딘가. 나는 그렇게 위안 삼으며 일반열람실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냄새가 한가득 달려들었다. 나는 흠칫 놀랐다. 쾌적한 도서관의 공기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냄새였다. 오래되고, 유서 깊고, 환기도 잘 되지 않는 데다가 먼지 쌓인 자료가 한가득 놓여 있는 그런 공간의 냄새였다. 그러나 그 냄새를 머금고 있는 이곳의 공기가 나는 어쩐지 익숙하게 느껴졌다.

  열람실 안을 둘러보니 예상외로 넓은 공간이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서가가 줄지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서가 사이의 공간은 비록 좁은 편이었지만 그곳에 빽빽하게 꽂혀 있는 책들은 좁은 자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존재감을 내뿜고 있었다. 나는 차분히 가라앉은 그곳의 공기를 들이마시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떠올렸다. 이 냄새를 나는 분명 기억하고 있었다.

  확실히 이곳은 넓고 커다란 도서관이 아니었다. 대리석으로 깔린 바닥에 높은 계단이 늘어서 있고,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에어컨이 넓은 서가 전체에 쾌적한 공기를 만들어주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건물 외부에 붙어 있던 공립 도서관이라는 이름조차 이곳에는 그리 어울리지 않았다.

  나는 오래전, 학교 한구석에 있던 그 장소를 떠올렸다. 여기는 그런 곳이었다. 창 너머로 운동장에서 떠드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서가 사이로 나른한 햇빛이 들어오는 장소. 늘어선 책상 사이사이에 누군가 앉아 책을 들여다보고, 서가 너머 구석진 자리에선 몇몇 학생들이 소리 낮춰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나누고, 입구 옆에 놓인 작은 소파에선 어지럽게 놓인 잡지와 만화책을 친구들과 함께 읽는 장소. 나는 그 먼 기억 속의 장소에서 들이쉬었던 차분한 공기를 지금 다시 들이쉬고 있었다.

  손가락이 책장에 닿자 익숙한 촉감이 느껴졌다. 나는 늘어선 책들의 이름을 천천히 읽었다.

  먼 옛날 함께했던 친구들의 이름을 부르는 듯한 기분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린 까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