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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니수 Jun 11. 2021

하얀 거품 가득 토핑 한 맥주 한잔

내 옆을 떠나는 것들에 대한 단상

낮이 길어진 탓에 해 질 녘 집으로 향하는 여름날 퇴근길. 고소함과 시큼함이 섞인 냄새가 길가 구석구석 남아있는 한낮의 열기를 걷어낸다. 골목길 모퉁이 작은 슈퍼 앞 평상에서 퇴근길인 듯 두 남자가 작은 담소를 나누고 있다. 높게 채워진 맥주잔 옆에는 대충 집어 든 마른 멸치와 말린 생강이 비닐봉지 사이에 섞여 있다. 더운 공기 때문일까? 다소 떨어진 거리임에도 진한 맥주의 향이 갈증과 시원함을 동시에 불러온다.


꽤 오래전 여름날 퇴근길에서 종종 보이던 골목길 풍경이다. 지금은 사라진 골목길 모퉁이 슈퍼마켓은 24시간 운영되는 편의점 못지않게 여러 가지 물건을 취급하고 있었다. 저녁때면 주부들이 저녁 준비를 위해 바쁘게 드나든다. 퇴근길에 만난 이웃과는 종일 냉장고 안에서 기다렸을 맥주 한 병을 꺼내 한 잔씩 들이킨다. 마치 오랜만에 만난 것처럼. 긴 시간도 아니다. 아빠를 마중 나온 아이의 손에 이끌려 이내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눠 마신 갈색 맥주병과 멸치 두 마리를 뒤로 한 채. 퇴근길에도 여유와 낭만이 있었다.


오늘의 우리는 야근과 돌아올 내일을 걱정하며 부리나케 집으로 향한다. 삐삐 대며 반기는 도어록 전자음과 함께. 집으로 오는 길에 마주치는 사람은 조심스레 피해진다. 환한 조명 아래 편의점은 각을 잡아 진열한 상품과 함께 누군지 알 수 없는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오래전 작은 슈퍼들이 사라지고 편의점과 대형할인점이 들어서게 된 원인 중에는 우리 일상의 변화도 한몫했으리라.


시대가 바뀌고 일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당연했던 모습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일 수 있다. 다만 사라지는 것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가는 노력은 사라지는 속도에 비해 더디다. 우리에게 삶의 여유와 풍요로움은 이제 사치인 것일까.


문득 하얀 거품 가득 토핑 한 맥주 한 잔이 생각나는 것은 성큼 다가온 더위 때문일까?

잊고 있었던 삶의 여유가 그리워서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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