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더는 사랑을 싣고
"미쓰한님 출신 대학 사람들이 틴더에 많던데, 그 학교에 틴더 학과가 있다면서요?"
틴더에서 서로 라이크를 눌러 매칭 된 남자가 내 프로필을 보더니 농담을 던졌다. 글쎄.. 동문들에게 설문조사를 할 수도 없고.. 아마 학과가 적고 전교 학생수가 적어서 인맥 스팩트럼이 좁은 게 이유라면 이유일 것이다. 내부 기술력이나 인력이 부족하면 기업들이 아웃소싱을 주는 것처럼. 아무리 그래도 '그대 틴더의 자랑이듯, 틴더 그대의 자랑'일 수는 없어서, 틴더 학과가 있냐는 농담이 그리 유쾌하진 않았고 살짝 애처롭기까지 했다. (그들도 나처럼 틴더에서 표류 중이라는 생각에)
내가 틴더에서 알게 되어 실제로 만나본 동문은 세명이었다. 두 명은 추억을 되새기자며 학교 근처에서 만났고 한 명은 가까이 살아서 동네에서 만났다. 찾아보면 그들과 나 사이에 몇 명쯤은 교집합으로 묶일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만나기 전에는 굳이 그 교집합에 대해 끄집어내지 않는 것이 서로 좋다고 생각했다. 스쳐가는 사이라면 그런 정보교환은 쓸데없이 남들 입에 내가 오르내리는 횟수만 늘리게 될 테니. 물론 실제로 만나게 되면 그렇지만은 않다. 마주 보고 얘길 하다 보면 교집합을 찾는 것이 처음 보는 남녀의 일이기에, 그들과 나도 그 일을 하게 되었다.
셋 중에 가장 처음 만난 경제학과 선배는 나와 나이 차이도 좀 있어서 그런지 교집합이 딱히 없었다. 혹여 있다고 해도 그는 별로 거리낄 것이 없어 보였다. 틴더를 하는 의도가 투명해 보였다고 할까? 나에게 친절했고 진지한 만남을 바랐던 것 같았다. 사실 원나잇 같은 바람직하지 않은 짓을 하고자 하면 지인들 모르게 하는 게 더 편할 테니. 두 번째 경영학과 후배는 겹치는 인맥이 한두 명 있었는데, '아~ 그 사람 아시는구나' 정도의 리액션이 전부였다. 교집합도 그도, 둘 다 나에게 별로 임팩트 없는 인간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임팩트가 좀 강했던 세 번째 동문은 법대를 나왔다고 했다. 그가 법대라고 하는 순간부터 알아봤어야 되는데.. 뭐 어때? 하는 생각을 했던 건지, 아니면 나는 이제 알기 어려운 K의 근황이 궁금해서였는지, 어쨌든 그와 계속 대화를 이어나갔다.
8년 전 대학시절, K는 나와 동아리 CC였고 법대를 다녔다. K는 내 기준에 무척 똑똑하고 박식한 남자 친구였다. 내가 물어보는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게 별로 없었고 나와 유머 코드도 잘 맞았다. (다른 사랑들도 종종 그런 것처럼 식어서 헤어졌지만) 그 세번째 동문도 왠지 X와 비슷하게 지적인 매력이 있었다. 만나기 전부터 그와의 대화가 즐거워서, 잠들기 전까지 이불속에서 그와 몇 시간이나 카톡을 하며 키득키득거렸다. 한 이틀쯤 대화를 했을 때 나는 그에게 K를 아냐고 물었고 그는 예상대로 안다고 답했다.
그는 K와 절친이었다.
절친? 절친은 예상 못했는데,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얼마 후 그는 나와 저녁을 먹겠다고 우리 집 근처에 왔다. 3월 꽃샘추위가 기승이던 그 시기에 그는 내 앞에 앉아서 땀을 뻘뻘 흘렸다. 저녁 메뉴가 뜨겁긴 했는데, 맥주를 마실 때도 땀을 흘렸다. 기가 허한 사람인가? 어쨌든 오프라인에서는 쩔쩔매는 키보드워리어였다. 대화가 처지게 되자 나는 자연히 K의 근황에 대해 물었다. 그는 친절하게 내 스마트폰에서 이미 오래전에 사라져 버린 K의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번호를 받아 들고서, 나는 그가 내 얘기를 K에게 꺼내기 전에 내가 먼저 K에게 연락해야지 라는 생각했다.
하지만 키보드워리어가 나보다 훨씬 전에 선수를 쳤다. 키보드워리어는 입도 싸는구먼. 나를 만나기도 전에 그는 K에게 나에 대해 물었고 K는 전 여자 친구다,라고 이미 대답을 한 것이다. 아무튼 그는 'TV는 사랑을 싣고'역할을 자청하며 나에게 'K에게 연락해보슈!' 하고는 떠나버렸다.
그래서 내가 K를 만났냐고? 그건 지금 아무래도 노코멘트해야 할 것 같다. 그에 대해서도 쓸 이야기가 많고, 나는 작가로서 언젠가 그것들을 충분히 어루만져 풀어내야 할 사명감 같은 것이 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