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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한 Nov 19. 2020

소개팅 어플, 꽃뱀이 무서운 가다실남

저는 꽃뱀 아니거든요.

*가다실 : 자궁경부암 백신


"소개팅 어플에서 꽃뱀 만날 수도 있다고 친구들이 조심하라고 하더라고요. 이상한 사람이 많데요."


야야.. 너도 나도 거기에서 왔어. 나는 속으로 뇌까렸다. 그야말로 선량한 시민보다는 마피아로 먼저 의심받을 것 같은 얼굴을 하고서, 그는 소개팅 어플에서 일어나는 범죄적 사건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의 수십 번째 틴더남이었다.


그의 첫인상이 안 좋았던 것에는 물론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는 10분 늦겠다는 연락을 한 뒤로 20분을 연락 없이 더 늦었다. 내가 어디냐고 두 차례 묻고 나서야 겨우 연락이 닿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는 내가 생각하는 정도에 훨씬 못 미치는 미온적인 사과를 했다. 그래서 면대면으로 만난 순간부터 나는 얼마간 표정관리가 상당히 어려웠다.


'식사하실까요 아니면 카페?'라는 그의 물음에 굳은 표정으로 '생각 안 해봤는데요'라고 대답했다. 그냥 집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좀 심한 것 같아서 카페에 가자고 다시 제안했다. 카페에 자리를 잡고 그와 마주 보고 앉은 후로는 나도 어쩔 수 없이 표정을 좀 풀어야 했다.


그는 '이걸로 사람 만나보셨어요?'라는 말을 시작으로 스스로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지인한테 소개팅을 받아도 마음에 드는 여자가 하나도 없었다며 큰 용기를 낸 듯이 말을 이어갔다. 본인은 이런 어플을 상당히 조심스러워하는 사람이라고, 쉽게 누군가를 만나서 가벼운 관계를 맺는 것도 싫고 원나잇도 정말 싫다고 했다.


"군대 선임들을 사회에 나와서 가끔 만나는데 유흥업소에 가자고 해서 거절했더니 게이냐는 소리도 들었어요. 저는 정말 그런 곳 싫어해요. 건강에 안 좋을 것 같아서... 저는 결혼할 때 서로 건강검진 결과를 보여줬으면 하는 생각도 있어요."


그는 대학교 1학년 때 직접 산부인과에 찾아가 자궁경부암 주사도 맞았고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자궁경부암 주사는 여자들만 맞는 줄 알아서 간호사도 의아했다고 한다. (이건 정말 칭찬해주고 싶은 부분이다.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라 모두에게 당연한 일이 되길 바란다.)


또한 그는 언제나 소개팅 어플의 전설처럼 전해지는 이야기를 꺼냈다. 어떤 남자가 틴더로 만난 여자에게 호되게 당했다는 이야기. 여자가 특정 술집으로 남자를 유인해서 비싼 술을 먹이고 큰돈을 쓰게 했다는 것이다.


그가 이러한 장광설을 늘어놓을 때 나는 이게 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요 제가 틴더녀이긴 한데요,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적극 해명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을 잠시 느꼈다가, 또 잠시 불쾌했다가, 나중에는 정말 왜 이러는 걸까 의문이 들었다.


본인은 마피아로 절대 지목받고 싶지 않아서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의심스러운 행동을 비난하는 것 일까? 아니면 나를 마피아로 생각하고 경계하는 걸까? 아니 그러면 왜 나왔어.. 진짜..


사실 그가 위장술이 능한 마피아 같지도 않았고 또한 나를 대단히 의심하는 것 같지도 않았지만, 그가 유별나서 나랑 안 맞는 것만은 정말 확실했다.


그와는 손절했지만 소개팅 어플 포비아에게 말하고 싶은 건, '여기 마피아 있지??? 나는 절대 마피아 아니야!!'라고 빽 소리를 지르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냐는 것이다. 건강이든 재산이든 경계해서 잘 지키는 것은 좋지만 너무 오버스러우면 정말이지 매력 없다.


더구나 그와 결혼 전에 서로 꼼꼼히 체크하고 건강검진 결과를 주고받을만한 성향의 여자는 틴더에 없을 가능성이 높다. 그곳은 그보다 개방적인 성향의 사람들이 훨씬 많은 곳이니까. 틴더 포비아나 건강염려증을 가진 자들이여, 쫄리면 여러 사람 불쾌하게 하지 말고 딴 데 가서 알아봐라,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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