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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한 Jan 11. 2023

나는 지난 일에 여전히 예민하게 구는 사람

가슴팍의 역린(逆鱗)을 쓰는 일

"그때 그 일에 대해서 쓰면 되겠다. 너 중학교 때 괴롭힘 당했던 거"

인턴 지원서에 힘든 일을 극복했던 경험을 써야 한다고 하자, 엄마가 말했다. 그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뜨겁게 분노가 솟구쳐 올랐다. 나는 무섭게 엄마를 노려보며 소리 지르듯 말했다.

“나한테 그 얘기 다시는 꺼내지마!"

스물다섯 인 나는 순식간에 십 년 전으로 돌아가 중2병이 도진 듯이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렸다. 어떻게 함부로 그것에 대해 언급한단 말인가? 나의 힘들었던 과거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쉽게 함부로? 방 속에서 나는 혼자 씩씩 거렸다.


무슨 일이 있었냐면, 사실 그리 극적인 일도 아니었다. 드라마에서처럼 가해 학생이 내 몸에 화상을 입힌다거나 주기적으로 양아치들에게 상납을 해야 했던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저 뺨을 맞았다. 중2 2학기, 겨울방학이 아직 한참 남은 어느 날이었다.  3교시가 끝난 쉬는 시간에 옆반 커트 머리가 우리 반에 와서 나를 불렀다. 따라갔더니 여자화장실에는 긴 머리가 먼저 와있었다. 지난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전학 온 긴 머리에게 내가 비위를 맞추지 못했던 건지, 내가 자기 말을 무시했다며 소리를 질렀다. 커트 머리와 긴 머리는 장애인용 화장실로 나를 밀어 넣었다. 그리고 짝. 세차게 내 뺨을 후려쳤다. 뺨에서 느껴지는 아픔보다도 화장실 밖에서 들려오는 웅성거림이 먼저였다. 어머 쟤 뺨 맞았나 봐. 나는 4교시 내내 책상에 엎드려있었다. 선생님은 내가 몸이 안 좋다고 생각했고, 나를 싫어하는 몇몇 친구들은 내 꼴이 좋다며 비웃었다. 나는 누워서 우는 동안 전학을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전학을 가는 일은 없었다. 아빠가 담임을 찾아가 ‘피해자가 전학을 가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따졌고, 긴 머리는 결국 정학 처리를 당했다. 뺨을 맞았다고 소문이 좀 돌긴 했지만, 학교로 돌아온 후에도 긴 머리는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 않았다. 그러니까 뺨 한 대 맞은 단번의 에피소드였을 뿐이다. 이 정도면 그리 힘든 학창 시절을 보낸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나는 십 년이 지난 후에도 엄마에게 함부로 그것을 언급한다고 불같이 화를 냈다. 마치 며칠 전에 일어난 일인 거 마냥.


재작년쯤에는 동창한테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적이 있다. 우리가 살갑게 지낼 때, 마침 거지 같은 남자들을 만나고 헤어지느라 내가 하소연이 많았는데, 둘 다 멀쩡한 연애를 하면서부터 좀 멀어진 사이가 됐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연락 온 그 동창새끼가 난장판이었던 내 과거 연애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게 아닌가? '다 지난 일이잖아? 지금은 다 괜찮잖아'라고 그가 말했다. 내가 먼저 꺼낸 것도 아니고, 감히 네가 그 이야기를 함부로 한다고? 내 아픈 과거에 대해? 나는 불쾌하다며 화를 냈고, 전화를 끊고도 그가 괘씸하다는 생각에 속으로 얼마간 열이 올랐다.


무슨 난장판이었냐면, 그것 또한 그리 극적인 일은 아니었다. 같이 모텔을 다녀온 남자가 결국 나와 사귀지는 않았다는 흔해 빠진 스토리였다. 그 남자가 서로 연락하지 말자고 말하던 날, 나는 지갑을 잃어버렸다. 추적추적 내리는 장맛비를 맞고 초라하게 집에 걸어왔다.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그저 수치스러웠을 뿐.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몹쓸 기억 하나쯤은 있는 거 아니겠는가. 내가 유독 지독한 아픔을 겪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동창이 뱉어낸 말들에 나는 다시 그날의 감정을 떠올리며 얼굴을 붉혔다.


어떤 작은 상처는 십 년이 가기도 한다. 가시같이 솟아난 역린(逆鱗)은 가슴팍에 숨어있다가, 무고한 사람들을 찔렀다. 그러니까 예민한 사람은 그만큼 상처가 많은 사람인지도 모른다. 내가 그것들을 덮어두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의식 없이 모른 척 두는 건 너무 쉬운 일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덮어두는 것은 이따금의 발작을 유발할 뿐, 부동심을 주지는 못했다. 지나간 일인데? 별거 아닌 일이었잖아? 감정이 타오르는 스스로를 보면서 나는 두 번 힘들어야 했다.


늘 솔직하게 글을 쓰려고 노력하지만, 아직 쓰려고 시도조차 못하는 것들이 많다. 나를 흔들었던 일들을 꺼내보는 것은 품이 많이 드는 일이다. 과거의 아픔을 소화시키는 일은 노력이 드는 일이다. 그러나 진짜 다 지난 일로 만들기 위해서는 한번은 꺼내봐야 한다. 그 마음을. 그러니까 언제까지 묻어두지는 말고자 다짐해본다. 가시 돋은 사람이 아니고 둥그런 사람이 되고자, 누구도 찌르지 않고 나도 그만 힘들어하고자.

매거진의 이전글 “슬기로운 작가 생활-브런치 모임”을 마무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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