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연꽃을 다른 사람의 장미와 비교하지 말아라

아쉬람에서 만난 다양한 삶의 모습들

by 이세아

너의 연꽃을 다른 사람의 장미와 비교하지 말아라. 너의 가슴이 가리키는 곳이 바로 네가 꽃피울 곳이다.

- 오쇼 라즈니쉬


지난 글 ‘아쉬람에서 만난 사람들’을 쓰며, 저는 매일 울었습니다. 겨우 글을 완성해서 브런치에 올리고 난 뒤에도, 한동안 그 당시 기억에 켜켜이 얽혀 있던 감정이 자꾸만 북받쳐 올라와서 글을 읽고 쓰는 것조차 고통스러웠죠. 글쓰기를 멈췄고, 저는 글과 멀리 떨어진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일 년 넘게 흘렀습니다.


얼마 전, 제가 써놓은 글들을 다시 읽어보니 제 글은 기억만큼 저를 아프게 찌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혼자서 슬며시 미소 짓게 만들 만큼 재미있었고, 글을 읽으며 마음 한 구석에 따스함이 차오르는 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다시 용기 내어 남은 이야기를 끝까지 써 내려가기로 했습니다.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졸업한 뒤 20대 중반에 접어든 저는 삶의 방향성을 완전히 잃은 상태였습니다.


그 당시 경제 위기를 겪고 있던 한국 사회의 분위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저에게 주어진 인생의 선택지 자체가 많지 않게 느껴졌기 때문이었죠. 지금은 사회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지만 그 당시만 해도 여성은 무조건 결혼을 해야 했고, 여성의 취업 또한 더 나은 결혼을 위한 전제 조건처럼 여겨지곤 했습니다. 같이 졸업했던 학과 동기들은 약대나 의대, 교대 등 취업이 잘 되는 학과로 편입을 하거나 공무원을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저는 한번 세운 뜻을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제가 선택한 ‘건축’이라는 분야 안에서 의미 있는 해답을 찾고 싶었고 결혼만을 위한 인생을 살고 싶지는 않았어요.


아쉬람에서 보내던 어느 날, 오쇼 크리슈나 하우스 근처에 마련된 전시회 앞에 발걸음을 멈춰 섰습니다. 처음에는 무심히 지나쳤지만, 마음에 두고 있던 오스트리아 남자가 그 전시를 유심히 보고 있던 모습이 자꾸 눈에 밟혔거든요. 그가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곳은 브라질의 오쇼 공동체를 소개하는 전시였습니다. 흙과 목재로 집을 짓고, 자연 친화적인 삶을 지향하는 곳이었어요. 전시회를 구경하고 있노라니, 브라질 출신의 산야신 니베다노가 다가왔습니다. 제가 일하던 오쇼 카페에 들러 종종 차를 마시곤 했던 분이었죠. 니베다노는 저에게 전시 내용에 대해 친절히 설명해 주고는, “우리는 오쇼의 비전을 따라 생태건축을 만들고, 새 시대의 사람들이 함께 하기 위한 공동체를 짓고 있습니다. 언제 한번 방문해 주세요.”라고 했어요. 저는 그러겠다고 인사하며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전시회를 본 뒤 산책을 하며, 제 안에 잠들어 있던 오래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흙으로 지은 집,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환경 친화적인 공동체의 삶. 인도 여행을 떠나기 전, 한국에서 제가 어렴풋이 그리던 이상향이었거든요. 그게 브라질에서 완공을 앞두고 있었던 거예요. 제 생각이 완전히 허황된 건 아니었구나 싶었죠.

문득, 제가 인도 여행을 오기 전에 만났던 건축학과 동기 중 한 명이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 진학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말했던 게 생각났어요. 혹시 그곳에 가면 내가 꿈꾸는 이상향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 때는 몰랐습니다. 그 단순한 생각이 그 이후 제 20년 커리어의 방향을 결정짓게 될 줄은.




저는 어릴 때부터 맹목적인 강요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으로부터 넌 왜 그렇게 불만이 많으냐고 자주 꾸중을 듣곤 했죠. 어린 시절에는 힘도 없고, 세상에 대해서도 잘 몰랐기에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했지만 가슴속 깊은 곳에서는 해결되지 않는 의문들이 가득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제가 가졌던 인생의 가장 큰 의문은 ‘결혼을 꼭 해야 하는가’였습니다.


저는 꽤 상상력이 풍부한 편이라 십 대 시절부터 이런저런 상상을 하는 걸 즐겼지만, 이상하게도 제가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며 아이를 키우는 상상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어요. 그 대신 저는 외국인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하며 프로젝트 매니저로 활약하거나 외국 휴양지의 멋진 해안가에서 휴가를 즐기며 잘 생긴 남자와 자유롭게 연애하는 걸 꿈꾸곤 했습니다. 아마도 어린 시절에 봤던 할리우드 영화의 영향이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 당시 한국에서 제 주변에 제가 상상하던 삶을 실제로 살아가는 한국 여성은 없었어요. 이혼조차 금기시되던 때라 대부분의 여성은 결혼해서 남편을 내조하고 아이를 키우며 사는 게 당연한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물론 어머니 친구분 중에는 주한 미군으로 복무하시며 평생 결혼하지 않은 분도 계셨고, 고등학생 때 어떤 여자 선생님이 마흔 넘도록 미혼이라는 얘기를 듣기도 했지만 흔한 일은 아니었어요. 전통적인 한국 여성의 결혼과 출산, 육아에 전념하는 가정 주부의 삶은 너무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그런 삶을 견뎌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랬던 저에게 인도 오쇼 아쉬람에서 만난 다양한 여성들의 모습과 그들의 삶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어요. The way of creator 그림 수업을 지도했던 일본인 여성 화가 Meera는 평생 결혼하지 않고 파트너와 함께 전 세계를 여행하며 그림을 그리고 가르치며 살고 있었는데요, 그녀만이 아니라 영국 및 독일 등 유럽 출신의 여성 산야신들 대부분이 Meera처럼 결혼을 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있었습니다. 걔 중에는 금발에 멋진 외모를 가진 독일 여성 변호사도 있었어요. 어떤 독일 중년 여성은 평생 모은 자산을 주식에 투자하고 주식 배당금만으로 생활하며 전 세계를 여행 중이라고 하더군요.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의 교사로 본국에 남편과 아이들이 있는데 혼자 인도에 여행 와서 젊은 남자 친구를 사귀는 백인 중년 여성도 있었습니다. 그 밖에도 이혼 후 어린아이와 함께 여행 온 30대 한국 언니, 이탈리아인 남자 친구를 사귀는 한국 언니도 있었구요. 처음 제가 아쉬람에 도착했을 때 안내를 해 준 P언니는 그곳에서 영국인 남자친구를 만나 사귀고 있었어요.


다양한 국적과 인종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모인 만큼, 연애와 결혼을 대하는 가치관도 태도도 제각각이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저는 낯설지만 묘한 자유의 기운을 맛보았고, 일말의 해방감도 느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끝없는 자유가 끝없는 방황이 될 수도 있다는 불안도 스쳤습니다. 나이가 60, 70살이 되도록 파트너를 바꿔가며 사랑을 하지만 결국엔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상처만 남기고, 아쉬람 안에 머문 채 바깥세상을 두려워하는 이들의 모습은 저에게 또 다른 경고처럼 다가왔습니다. 저는 그들처럼 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저에게 맞는 삶의 방식이 무엇일까 고민하며, 저는 스스로에게 다짐했습니다. 늘 안전한 길만 택하며 좁은 틀 속에 갇혀 살기보다는, 때로는 힘들고 고통스럽더라도 기존의 틀을 벗어나 더 넓게, 더 높게, 그렇게 저만의 인생을 꽃피워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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