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세아 Mar 22. 2023

웃음, 눈물, 그리고 침묵의 명상

Mystic Rose 프로그램 체험기

세상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에 억눌린 마음을 깨끗이 청소하는 것이다. 이것은 웃음과 눈물이라는 두 가지 방법으로 가능하다. 눈물은 당신 내면에 숨겨진 고통을 제거할 것이고, 웃음은 당신의 행복을 방해하는 모든 장애물을 없앨 것이다.

- 오쇼 라즈니쉬, 『Yaa-Hoo! The Mystic Rose』 中




‘미스틱 로즈(Mystic Rose)’는 아쉬람의 멀티버시티 프로그램 중 가장 많이 추천하는 명상 테라피 프로그램이었습니다. 3주 동안 매일 오전 네 시간 동안 진행하는 그룹 명상 프로그램으로, 첫 주에는 laughing 웃음, 둘째 주에는 crying 울음, 그리고 마지막 주에는 In silence 침묵의 명상으로 구성되어 있었어요. 비용이 50만 원으로 꽤 비싼 편이었지만, 인도에 오기 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터라 망설임 없이 등록했습니다.


프로그램 진행 장소는 ‘오쇼 사마디 홀’로, 오쇼 라즈니쉬가 살아생전에 일상을 보낸 곳이자 세상을 떠난 뒤에 묻혀 있는 곳이었죠. 인도에서는 깨달음을 얻은 사람의 무덤이 있는 장소는 영적인 에너지가 높다는 믿음이 있어요. 그래서 그곳은 아쉬람에서 가장 성스러운 공간이었습니다. 평상시에는 출입문이 잠겨 있었어요.


첫날 월요일 아침 8시. 설레는 마음을 안고 사마디 홀로 갔습니다. 출입문 앞에 지키고 있는 사람에게 프로그램 등록증을 보여준 뒤 안으로 들어서자, 울창한 나무로 가득한 정원 사이로 오솔길이 나 있었어요. 오분 정도 길을 걸었더니 건물 입구가 보이더군요. 사마디 홀 건물 내부는 흰색과 녹색 대리석으로 마감되어 있었고, 높다란 천정에는 고급스러운 원형 샹들리에가 달려 있었어요. 에어컨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 실내 공기가 쾌적했습니다. 안내 표시를 따라가니, 50평 정도 크기의 방이 나왔어요. 창을 통해 들어오는 아침 햇살과 천정의 밝은 조명으로 인해 방안은 무척 환했습니다. 바닥에는 삼십여 개 정도의 검은색 방석이 줄과 열을 맞춰 놓여 있었어요.


“Hello. Welcome to mystic rose program.”


검은색 로브를 입은 갈색 머리에 푸근한 인상의 자그마한 백인 중년 여성이 환하게 미소 띤 얼굴로 인사를 건넸습니다. 저도 웃으며 인사를 하고, 중간 정도 위치에 놓인 방석에 앉았어요. 프로그램 참가자들 대부분은 유럽계 백인들이었고, 인도인들과 일본인들이 몇 명 있었어요. 한국인은 저 혼자였습니다. 검은색 로브를 입은 프로그램 리더는 출석을 확인한 후, 웃음 명상의 진행 방법을 알려주었어요. 오쇼의 강의를 듣고 ‘야후’를 크게 세 번 외친 후, 45분 동안 웃고 15분 동안 좌선을 하는 과정을 3번 반복한다고 했어요. 혼자 웃어도 좋고, 서로 장난을 치며 웃어도 좋다고 했습니다.


명상이 시작되자 다들 소리 내어 웃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긴 시간 동안 계속 소리 내어 웃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어요. 끝나고 나니, 목이 아프더군요. 그렇지만 명상 시간 이후에도 하루 종일 아무 이유 없이 자꾸 웃음이 나는 거예요. 신기했어요. 웃음 명상 이틀째까지는 방을 돌아다니며 거친 장난을 치는 남자들이 있어서 조금 불편했지만, 사흘째가 되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쳐서 누워있더군요. 11월이라 아침에는 꽤 추웠지만 한참 동안 웃은 뒤에는 몸에 열이 나고, 웃음의 진동이 만들어낸 따뜻한 에너지가 몸 안 가득 채워졌어요. 어린 시절의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몸과 마음을 다해 웃으니 자동인형처럼 계속 웃음이 나왔습니다.


웃음 명상 시간 후에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과 한 시간 정도 일을 하는 work as meditation을 했어요. 장식용 꽃이나 쿠키 만들기, 채소 다듬기 등의 잡일이었죠. 명상 중에는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없었지만 일하는 동안에는 가벼운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일을 한다기보다는 세계 각국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노는 시간에 가까웠어요. 네덜란드, 독일, 스페인, 스위스 등 유럽에서 온 백인들은 문화가 비슷해서인지 서로를 잘 이해했고 대체로 영어를 잘했습니다. 대부분 30, 40대 중년이었고 20대 동양인인 제게 영어를 잘한다며 다정하고 친절하게 대해줬지만, 저는 그들이 나누는 대화 내용에 끼지 못해서 가끔 소외감을 느끼곤 했어요. 웃음 명상은 5일째까지는 꽤 신나고 즐거웠어요. 그런데, 6일째부터는 그다지 웃고 싶지 않아 지더니 마지막 날에는 웃는 게 너무 피곤하고 우울한 기분까지 들더라고요. 오쇼가 7일 동안 웃고 나면 그 뒤에 슬픔이 물결칠 것이라고 했는데 그 말대로였죠.


웃음 명상이 끝나고 울음 명상의 첫날. 사마디홀에 들어서자 창에는 블라인드가 내려져 있었고 조명 또한 어두워져 있었습니다. 방석 옆에는 티슈통이 하나씩 놓여 있었죠. 오쇼의 짧은 강의를 듣고 45분 동안 울고 15분 동안 좌선을 하는 과정을 3번 반복했습니다. 처음엔 아무 이유 없이도 울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는데, 막상 시작하니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어요. 부모님 생각과 헤어진 전 남자친구 생각이 많이 났죠.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잊고 있던 오래된 과거의 아픔들이 눈물과 함께 떠오르기 시작했어요. 십 대 사춘기 시절에 또래 친구들 사이의 경쟁과 비교 속에서 상처받았던 일들이 마치 어제 있었던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르더군요. 5일째가 되던 날, 제 옆자리에 앉아 있던 여자가 비명을 지르며 베개를 마구 메치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무서웠어요. 그런데 그때, 리더가 모두에게 일어나서 소리를 지르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라고 말했어요. 그 말을 듣고, 저도 난생처음으로 크게 소리를 지르고 울면서 베개를 마구 패대기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세 시간을 울고 나자 온몸에 진이 빠지고 완전히 지쳐버렸어요.


마침내, 울음 명상 마지막 날이 되자 더 이상 과거의 아픈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어요. 대신 가슴으로부터 사랑과 감사의 에너지가 솟아나는 게 느껴졌습니다. 그 에너지는 제 몸을 감쌌고 손이 마치 전기를 띤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어요. 명상이 끝난 뒤, 함께 그룹을 했던 사람들과 가볍게 포옹을 하며 서로의 에너지를 나누었어요. 모두 부드럽고 평온한 표정이었습니다. 마지막에는 리더가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 모두에게 장미꽃을 한 송이씩 나누어 주고 춤을 추며 끝났어요. 즐겁고 신비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오쇼가 강의에서 “고통 속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결코 커다란 축복을 맞이할 수 없다”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어요.


침묵 명상 첫날, 우리는 장소를 사마디 홀의 복도로 옮겼습니다. 전면 유리창을 통해 정원의 울창한 나무들이 보이는 좁은 회랑에 검은색 방석이 한 줄로 나란히 놓여있더군요. 명상 시작 전, 리더는 ‘산의 정상에 올라 풍경을 바라보는 것처럼’ 어떤 생각, 감정들이 지나가도 다만 바라보기만 하라고 했어요.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쾌적한 공간에서 가만히 눈을 감고 앉아있으니 기분이 좋았어요. 곧 여러 생각과 감정들이 왔다 갔다 했습니다. 45분간 좌선을 하고, 15분 동안 부드러운 음악에 맞춰 춤을 추었어요. 덕분에 세 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있는 것이 어렵지 않았어요. 명상이 끝나고 난 뒤, 리더는 ‘Silence’라고 쓰인 흰색 배지를 나눠주었습니다. 그걸 가슴에 달고 되도록 하루 종일 침묵을 지키라고 했어요.


처음 며칠 동안에는 어쩐지 가슴속이 텅 빈 듯한 외로움과 함께 제 자신이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더군요. 그 뒤엔 세상이 신기루처럼 여겨지면서 제가 어린 시절 즐겨보던 만화 속에 들어와 있는 듯했어요. 오쇼는 명상이란 concentration, 집중이 아니라 relax, 이완이라고 했어요. 그래서일까요? 언제부턴가 몸이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져서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7일 동안의 침묵 명상을 마지막으로 Mystic Rose 프로그램이 끝났어요.


오쇼가 이 프로그램에 'Mystic Rose'라는 이름을 붙인 의미는 ‘과거로부터 벗어나 내면의 성장을 이루어 신비로운 장미꽃처럼 피어나는 존재’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당시 제가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침묵 명상 기간 동안 제 내면과 많은 대화를 나누는 중에 제가 인생의 진로를 지나치게 한정해놓고 있었다는 깨달음이 들더군요. 이제 인생의 새로운 출발선 상에 서 있다고 생각하니, 다양한 선택지가 제 앞에 놓여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일이든지 간에 제가 좋아하는 일을, 가슴이 뛰는 일을, 열정을 다해 해내며 저만의 길을 개척해 나가겠다고 결심했어요.

작가의 이전글 새로운 이름, 새로운 시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