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fear, This is my life.

과거로부터의 해방, 'Master Painter' 클래스

by 이세아

과거로부터 해방되는 것, 그것은 곧 정신적인 자유를 획득하는 것이다. 마치 지구상에 새로 태어난 것처럼 그대는 아무 과거도 갖지 않는다. 그대는 오늘 아침 봉오리를 연 장미꽃처럼 신선하다. 연꽃에 매달린 이슬방울처럼, 아침의 산들바람처럼, 이른 아침의 햇살처럼 그대는 신선하고 새롭다. 과거에서 해방돼라. 과거는 그대의 영적인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일 뿐이다. 과거에서 해방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왜냐하면 과거는 다만 그대의 기억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과거는 다만 그대의 마음속에 있다.

- 오쇼 라즈니쉬,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中




2000년 1월 1일, 저는 21세기 밀레니엄의 첫날을 인도 오쇼 아쉬람에서 맞이했습니다. 그날이 오면 전 세계 컴퓨터가 멈출지도 모른다던 항간의 괴담은 실현되지 않았고, 저는 세계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과 함께 새 천년의 시작을 기뻐하며 축하했어요. 어느덧 제가 인도에서 지낸 지도 두 달이 훌쩍 넘었습니다.


처음 인도 여행을 떠나올 때, 얼마나 머무를지 무엇을 할지 확실한 계획은 없었어요. 기한이 6개월인 관광 비자와 출국일만 정해진 1년 오픈 항공권만 있었을 뿐이었죠. 예산도 빠듯해서 오래 머물 생각도 아니었어요. 그런데 새해 첫날, 집에 안부 전화를 했을 때 어머니가 뜻밖의 제안을 하셨습니다.


“그냥 놀지만 말고 그림이라도 더 배우고 와.”


제가 인도 여행을 오겠다고 할 때 무척 만류했던 분이었기에 더 놀랐습니다. 수업료가 부담스럽다고 했더니, 본인이 도와주겠다고 하셨어요. 마침 1월 초부터 시작하는 Meera의 ‘Master Painter’ 클래스가 무척 듣고 싶었던 터였죠. 그런 제 마음이 바다 건너 어머니에게 전해졌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신이 나서 곧장 Meera를 찾아갔어요. 이미 클래스가 시작된 지 이틀이 지난 시점이라, 왜 늦게 왔느냐고 짜증을 내면서도 Meera는 흔쾌히 저를 받아주었습니다.


새로 시작한 ‘Master Painter’ 클래스는 지난 ‘The Way of Creator’ 클래스보다 참여자가 많았고 인종과 국적도 훨씬 다양했어요. 장소는 지난번과 동일한 오쇼 크리슈나 하우스였습니다. 클래스는 두 달 과정으로 1부와 2부 세션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Primal Painting, Nature Painting, Self Portrait, Group Painting, Black & White Painting 등 다양한 주제를 다뤘고, 아침 명상 후 저녁 늦게까지 하루 종일 그림을 그렸어요. 낮에는 다 함께 오쇼 크리슈나 하우스에 모여 오쇼의 강의를 듣고, 서로의 그림에 대한 감상을 나누는 Sharing 시간이 있었습니다. 단순히 그림 기법만을 배우는 클래스가 아니라 명상과 깨달음, 대화, 그림 그리기가 함께 어우러지는 영적인 체험이었어요.

Meera페인팅_Master Painter.jpg Meera의 ‘Master Painter’ 클래스 팸플릿
Meera페인팅_Master Painter_001.jpg ‘Master Painter’ 클래스 소개


이번에도 한국인은 저 혼자였습니다. 제가 Meera의 ‘Master Painter’ 클래스를 듣는다고 하자, 아쉬람의 다른 한국인들은 왜 그런 수업에 큰돈을 쓰냐며 저를 나무랐어요. 의외였죠. 오히려 어머니나 아쉬람 외부 사람들은 세계적으로 이름난 일본인 화가에게 그림을 배우는 게 좋겠다며 응원을 해주는데, 정작 다른 한국인 산야신들이 그 가치를 깎아내리는 게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또 혼자였지만 지난 클래스 경험 덕분인지 모든 게 익숙하고 편안했어요. Meera의 지도 아래 다 같이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그녀는 느슨한 가이드라인만 준 뒤, 각자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게 두고, 도움이 필요할 때만 다가와 조언을 해주는 방식으로 클래스를 운영했어요. 한국에서 주입식 교육에만 길들여져 있던 당시의 저에게는 난생처음 경험하는 낯선 수업 방식이었죠.




1부 세션의 다른 그림과 달리, 아쉬람 정원에서 수채화로 자연을 그리는 Nature Painting은 그릴수록 어쩐지 어려웠습니다. 저는 커다란 종이와 함께 나무 앞에 앉아서, 그리고 지우고 다시 그리기를 반복했어요. 열심히 그리다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생기면 스펀지에 물을 묻혀 박박 지웠습니다. 제가 원하는 결과물이 빨리 나오지 않자 불안해졌고, 마음이 조급해지면서 괜스레 화가 났어요.


그때, Meera가 저에게 살며시 다가왔습니다. 저는 한껏 우울해진 얼굴로 제 앞에 있는 나무의 나뭇가지와 잎을 그리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투정을 부렸죠.


그러자 그녀는 머리로 생각해서 그리려고 하지 말고 먼저 나무를 잘 관찰해 보라고 했어요. 그러면서 나무의 큰 둥치에서 뻗어 나온 가지들이 다시 작은 가지들로 갈라지고 그 가지에서 나온 가느다란 줄기 끝에 나뭇잎이 매달려 있지 않느냐고 설명해 주었죠. 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눈길을 돌리자 그전까지 보이지 않던 가지와 줄기, 그리고 잎들로 구성된 나무의 모습이 그제야 선명히 보였습니다. 말문이 막히더군요.


저는 이어서, 나무를 입체적으로 표현하고 싶은데 잘 안 된다고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Meera는 살짝 미소 지으며, 그렇다면 나무의 그림자를 강조하면 된다며 직접 시범을 보여주었어요. 그녀가 제 그림 속 나무에 짙은 그림자를 넣자 밋밋했던 그림이 갑자기 생명력을 얻은 듯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전에는 보이지 않던 나무와 풀의 그림자가 제 눈에 들어왔어요.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저는 다시 그림 그리기에 몰입했고, 제 그림은 서서히 살아 숨 쉬는 듯한 모습을 갖춰갔습니다. 하지만, 그 후에도 종종 그림을 그리다가 막히는 순간이 찾아오곤 했어요.


어느 날, 제가 그림 앞에 멍하니 앉아 있으니 Meera가 제 머리를 살짝 터치하고 가면서 말했어요.


“Keep moving. Whatever you do is right.”


그녀의 우아한 뒷모습을 보며 저는 다시 용기 내어 붓을 들었습니다.


대학 시절, 건축 설계 수업을 들으며 매번 ‘창의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에 시달렸던 터라 저는 제가 그리는 그림이 독창적이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습니다. 무언가를 시도하기도 전에 저 자신을 보이지 않는 틀에 가둬놓고 그 틀을 벗어나면 안 된다고 스스로를 억눌렀죠. 제가 저 자신을 가둔 마음의 감옥이었던 거예요. 그런데 Meera의 클래스에서는 그 틀을 벗어나도 괜찮다는 안심이 들었어요. 그 순간부터 제 마음이 가는 대로 자유롭게 붓을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2부 세션의 Self portrait 시간, 저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오쇼 크리슈나 하우스 옥상에 홀로 앉아 거울 속 제 모습을 그렸습니다. 저는 늘 외모에 자신이 없었어요. 어릴 때부터 예쁘지 않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고, 여성스럽지 않다는 지적을 자주 받았죠. 그 말들이 가시처럼 마음에 박혀 오래도록 저를 괴롭혔습니다. 그래서인지, 거울 속 제 얼굴을 그림으로 옮기는 일은 쉽지 않았어요. 붓끝이 선뜻 움직이지 않았고, 과거의 기억이 떠올라 자꾸만 슬퍼지곤 했습니다.


어느 날, Meera는 오도카니 앉아 제 얼굴을 그리는 저에게 조용히 다가와 잘 그리고 있다고 칭찬을 해주었어요. 그녀 곁에 있던 이탈리아 중년 남성도 저와 제 그림을 번갈아 보며 ‘똑같다’고 환호를 보내주었죠. 부끄러워서 고개를 숙이는 저에게 Meera가 다가와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 주며 따뜻한 눈빛으로 제 눈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I want you can know your beauty.”


마음에 따뜻한 기운이 퍼졌어요. 그녀가 떠난 뒤, 갈피를 못 잡고 있던 제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으면서 다시 그림 그리기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Self portrait를 그리는 도중, 다 같이 모여 감상을 나누는 시간이 있었어요. 그때 함께 수업을 듣던 20대 후반의 이탈리아 여성이 자신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깊고 커다란 흑갈색 눈에 높은 콧대, 검고 긴 머리카락을 지닌 아름다운 백인 여성이었죠. 그런 그녀가 자신의 코가 너무 높아서 콤플렉스였다고 슬픈 표정으로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리는 거예요.

그녀의 말을 듣고 있던 저는 너무 놀라서 한국에서는 당신처럼 높은 콧대를 갖기 위해 여자들이 성형 수술을 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고, Meera도 환하게 웃었어요. 울상을 짓고 있던 그녀도 민망한 듯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미의 기준이 나라별로 다르고 사람에 따라 지극히 상대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절대적인 미의 기준은 없으며, 아름다움은 각자가 받아들이는 방식에 달려 있다는 자각이었죠. 그게 Meera가 저에게 했던 말의 진정한 의미였습니다.




마지막 Sharing 시간, 저는 용기를 내어 그림을 그리며 얻은 제 깨달음을 나누었어요. 그리고 마치 세상에 선언하듯 말했죠.


“No fear. This is my Life.”


Meera는 두 팔을 번쩍 들어 하늘로 뻗으며 환호했습니다.

“Yeah!”


그녀의 기쁜 표정과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아마도 제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타인의 비판과 평가로 주눅 들어 있던 그 당시, 저에게 가장 필요했던 건 ‘용기’였습니다. Meera의 수업을 들으며 저는 자신을 표현할 ‘힘’과 함께, 마음껏 자신을 표현해도 괜찮다는 응원과 지지를 얻었어요. 그건 제 삶을 제 방식대로 그려도 괜찮다는, ‘나 자신을 향한 허락’이었습니다. 그 경험은 이후에 제가 인생의 어려움을 맞닥뜨릴 때마다 저만의 방식대로 뚫고 나갈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안겨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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