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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ra 유현정 Apr 22. 2023

꽃은 저마다 때가 있다

전이수 갤러리와 함덕 바다 이야기


오랜만에 함덕 바다를 찾았다.

서귀포에서는 차로 1시간이 넘게 걸리지만, 아주 가끔이라도 달려가는 이유가 있다. 함덕은 나의 제주 첫사랑이기도 하려니와 서우봉과 델문도 카페가 있고, 하얀 백사장으로 밀려드는 파도의 영롱한 포말이 조잘조잘 들려주는 이야기가 잠시도 끊이질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함덕 바다 앞에서 제주의 보석 발견하였다. 그동안 눈을 뜨고도 장님처럼 지나쳤는데, 그나마 귀가 열려 있어서 소식을 전해 들은 것이다.


전이수 갤러리 걸어가는 늑대들


나는 진즉 예약을 마치고 손꼽 기다렸다. 드디어 자동차 검사를 핑계 제주시로 넘어가게 되었다. 제주에서 사용하고 있는 차가 오래된 경유차이다 보니, 매연을 저감 시키는 장치(DPF)

가 필요했다. 청정 섬 제주에 살면서 대기오염의 주범이 되고 있다는 사실은 나의 마음을 늘 불편하게 만들었다. 다행히 지난 2월 나라에서 지원이 나와 DPF를 달게 되었다. 이번에 정기검사와 함께 튜닝 검사 합격을 받기 위해 제주시로 원정을 가게 된 것이다.


함덕에서 듣게 될 새로운 이야기는 나의 마음을 부풀게 하였다. 마침 연일 내리던 비도 그치고, 제주 하늘을 뒤덮었던 미세먼지까지 말끔하게 걷힌 날이었다. 이른 아침 516 산길을 넘어 제주시에 당도했다. 먼저 정기검사부터 받고, 맛집을 찾아 요기를 한 후, 함덕으로 달렸다. 도중에 신촌리에 있는 오랜 단골 보리빵 집을 들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달지 않 팥을 넣은 구수한 보리빵이 남편 나의 입맛에 맞았다.


덕을 품는다는 뜻의 지명 함덕은 남편의 마음을 사로다. 아늑한 백사장 여행객이 바다를 즐기고 있었다. 철 이른 바다치곤 활기차고 북적이는 편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만난 하르방 포스가 남달다. 여느 하르방처럼 평생을 보초병처럼 서서 땡볕에 땀 흘리는 법 없이, 탱자탱자 놀면서 지내는 모습이었다. 편안하게 안락의자에 기대어 쉬고 있거나, 선글라스를 끼고 철퍼덕 모래밭에 퍼질러 앉아 폼 나게 선탠을 한다. 함덕은 하르방마저 관광지 분위기를 흠씬 풍다.


함덕 하르방의 남다른 포스



전이수 갤러리는 길가의 이층 집을 개조하 함덕 바다를 마주하고 있었다. 오후 1시 예약 시간에 맞춰 안으로 들어섰다. 올해 15살이 되었다는 전이수 작가의 소개 영상이 나왔다. 이미 8살에 동화책을 쓰기 시작한 작가는 제주에서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제주의 자연 속에서 어린 작가는 꽃을 활짝 피우고 있는 것이다. 매년 작품이 교체되는 이번 전시 제목은 "꽃은 싸우지 않는다" 이다. 이미 인터넷을 통해 본 작품들이지만, 진품을 보고 작가의 숨결을 느끼는 시간은 특별다.


전이수 작가는 먼저 글을 쓰고 나서 그림을 그린다고 하였다. 글은 사유를 깊게 하고, 순수한 시선은 어른들의 편견을 깨닫게 다. 세상을 마음속에 풍덩 담았다가 자신만의 언어와 붓놀림으로 표현해 낸 작품세계 어른들의 심금을 울리며 찡한 감동을 주었다. 나는 전이수 작가의 그림 중에 '위로' 시리즈 좋아한다. 강아지의 조건 없는 무한 애정이 상처받아 한없이 작아진 인간을 보듬는 그림들이다. 나약한 인간은 늘 위로를 갈망다. 때로는 반려견, 반려묘를 통한 위로도 포함해서 말이다.


전이수 작품, <위로> 시리즈


나의 민화 전시회에도 어린 작가가 한 명 있었다. 전이수 작가와 같은 나이 15살에 십장생도를 그렸다. 아직은 어린 묘목이지만 아주 튼실하게 작품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친구다. 그런데 검정고시를 거쳐 이미 대학생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다고 해서  놀랐다. 남들보다 앞서 달리는 것은 짜릿한 쾌감을 줄 것이다. 하지만 속도에 취하다 보면 놓치는 것들 있다. 인생이라는 마라톤에는 사소해 보이지만 속도보다 중요한 것들이 곳에 숨어 기 때문이다.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같이 가야 멀리 갈 수 있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괜한 말은 아닐 것이다.


전이수 작가는 그런 면에서 상당한 균형 감각을 가지고 있다. 세상을 향해 활짝 열려 있는 행보가 그것을 증명한다. 갤러리의 운영으로 얻은 수익금 제주 미혼모, 국경 없는 이사회, 아프리카 어린이를 돕는 좋은 일에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 그의 작품이 더 크게 무르익어 갈 것을 믿어 의심치 않게 된다. 어린 작가들을 응원하며 제주에서의 지속적인 활동을 기대하게 되는 마음이 점점 커진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나 제주의 거목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본다는 것은 흐뭇한 일이다.


나 혼자 행복해지는 길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길을 걷고 싶어요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밸런스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처럼요. 그 섬세한 균형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돼요. 그래서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의미가 없는 것은 없어요

          

        - 전이수, <섬세한 균형 3>의 일부 -


전이수의 다른 그림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린 나이에 자신의 화풍을 찾아가고 있는 작가에게 감탄을 하다가 문득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람은 구나 신이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며 행복 인생을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런 피우는 시기는 사람마다 다르다. 타고난 재능과 이를 뒷받침하는 환경으로 일찍  수도 있고, 인생을 굽이굽이 돌고 돌아 느지막이 는 경우도 있다. 일찍  의 관심과 부러움을 한 몸에 받게 되지만, 시들지 않기 위해 부단이 노력해야 하고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박감으로 고통받을 수 있다. 


자연은 삼라만상이 자신의 때를 기다리며 산다. 인간만이 욕심을 내며 속도를 낸다.  돌아보면 한 순간인 인생에서 좀 늦으면 어떠리. 그저 인연 따라 걷다가 만나게 된 자신의 꽃을 반기고, 그런 인생행로를 사랑하면 다. 먼 길을 돌아 뒤늦게 찾 행 다시 젊어지게 만드는 묘약이 있다. 이 또한 기쁘 감사 일이다. 러니   때가 더 좋다고 할 수 없다.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때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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