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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ra 유현정 Dec 19. 2020

에필.로그

다시 꿈꿀 수 있을까?

    


  "여행이라는 건 내가 다시 가려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 멀리 에둘러서 돌아오는 길이 아닐까? 내 삶과 장소와 현실에 대한 고마움을 다시 자각하게 되는 계기가 아닐까?"   


   <<여행이 아니면 알 수 없는 것들>>이 책에서 여행작가 손미나는 우리가 알 만한 사람들과 '여행'에 관한 인터뷰를 기록다. 여기서 인생학교 선생님 이영미는 여행을 '떠남'이나 '머묾'보다는 '돌아옴'에 방점을 찍었다. 녀의 말대로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것은 어쩌면 결국 집으로 돌아오기 위함일지도 모다. 하지만 돌아올 때의 집은 떠날 때의 집과는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마철 곰팡이처럼 군데군데 권태가 피어나던 일상이 햇살에 널어 말린 이부자리처럼 뽀송뽀송하고 안락하게 느껴지는 건, 여행이라는 길 위에서 내가 달라졌기 때문이 아닐까. 그것은 멀리 에둘러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잃어버린 줄 알았던 나를 만나 데려오기 때문일 것이다.




집으로 무사히 돌아오기

  

  남편과 나 다시 집으로, 프라하 여행의 마지막 미션 완수하며 원위치로 돌아왔다. 우리가 제일 먼저  일은 보름간 잘 참아준 뱃속달래는 일이었다. 불판 한가운데서 지글지글 끓고 있는 된장찌개를 바라보며 우리 동네의 단골 식당에 마주 앉았다. 노릇하게 구워진 고기를  베어 물자 육즙이 입안 가득 번졌고, 청양고추를 썰어 넣은 된장찌개 구수하면서도 매콤한 미각을 선사하 세로토닌 분출 극하였다. 그제야 집으로 돌아온 것이 실감 났다. 렇게 다시 돌아와 보니 마운 집, 고마운 이웃, 고마운 음식, 온통 고마운 것들 투성이었다.


   소주를 한 잔 곁들이  따끈따끈한 여행 이야기삼매경으로 빠져들었다. 살가운 대화가 사라진 요즘, 오랜만에 남편과 공통의 대화를 풍부하게 나눌 수 있었다. 이게 얼마만이던가? 여행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한층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 이 사람이 여행을 가지 않으려고 버티던 사람이 맞나 싶었다. 사실 우리는 그 후로도 한 달이 넘게 얼굴만 마주하면 미처 몰랐던 프라하 잘츠부르크 대한 새로운 정보를 나누고, 낯선 길 위에서 감동을 안겨준 알폰스 무하와 프라하의 친구들에 대해 긴 대화를  이어갔다. 여행의 약발은 오랜 시간 유지되었다. 나는 문득 남편의 여행 만족도가 궁금해졌다.


  "우리 이번 여행 점수 한번 매겨볼까?"

  "그럴까? 그럼 100점 만점이다."

  ". 하나, 둘, 셋!"

  "95점!!"


  야, 이럴 수가! 우리는 동시에 95점을 외쳤다. 설임도 없이 기가 막힌 일치였다. 여행 중에 단 한 번도 싸운 일이 없기는 했지만, 그건 남편이 모든 결정을 나에게 위임하고 따랐기 때문이다. 나는 일정부터 숙소와 렌터카, 식사까지 모든 걸 결정했고, 남편은 묵묵히 짐과 운전을 맡았다. 머리는 내가 쓰고 몸은 남편이 움직이스템이었고나 할까. 날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나의 변덕에 꽤나 속이 부대꼈을 텐데도, 모든 걸 나에게 맞춰주고도 95점의 후한 점수를 내준 남편이 새삼 고마웠다. 혹시 억지로 따라가서 불만이 남아 있지는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우가 말끔히 가셨다. 공평하게 만족감을 느꼈기에 더 흡족하였다. 부족한 5점은 앞으로의 여행에서 보완하면 될 일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 주,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강남역의 한 스터디 카페로 나갔다. 조숙 작가의 '여행작가 아카데미'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프라하 여행을 떠나기 전, 김미경 유튜브에서 초대손님으로 나온 조숙 작가를 처음 보았다. 그녀는 치앙마이와 라오스에서의 한 달 살기를 여행기로 엮은 작가였는데, 여행작가로서의 삶을 아주 행복하게 살고 있는 듯하였다. 그녀가 부러웠다. '여행''글쓰기'는 둘 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었고, 둘을 하나로 묶은 것이 바로 여행작가였다. 녀의 말대로 부러우면 따라하면 될 일이었다. 오랜만에 가슴이 다시 콩닥콩닥 뛰기 시작하였다.

                                  

아, 다시 꿈꿀 수 있을까?

 

  1기로 아카데미 수업을 받으면서, 나는 사실 여행작가가 되다는 표면적인 목표보다는 앞으로 내가 도전할 여행의 의미와 글쓰기를 제대로 배우고 싶다. 여행  성장시키고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므로, 거기에 글쓰기를 보태어 시너지 효과를 내고 싶었다. 여행을 다니며 글을 쓴다면 얼마나 멋진 일일까, 꿈만 꾸고 있어도  행복해졌다. 같은 꿈을 가진 아카데미 동기들과의 우정도 그 온도를 끝까지 유지해 나가리라 마음먹었다. 


  리는 수업이 끝나고 아쉬움 남아 진하게 뒤풀이를 하였고, 로운 여행을 시작한 동지애로 똘똘 뭉쳤다. 늦은 밤 다들 달뜬 가슴을 안은 채 허그를 나누고, 대구로, 원주로, 춘천으로, 인천으로 또 제주로 총총 헤어졌다. 그리고 다음 달 제주에서 조숙 작가와의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행운도 가질 수 있었다.




   아침마다 산책을 마치고 책상 앞에 앉았다. 글 속으로 떠나는 여행시작다.  추억글로 쓴다는 것은 또 다른 차원 여행이었다. 여행 준비하는 단계의 설레는 여행직접 발로  고단하지만 뿌듯하고 짜릿한 여행, 그리고 글로 쓰는 추억의 여행  것이. 글로 쓰는 여행은 기억의 바다에서 건져 올린 싱싱한 단어와 문장들이 가슴을 유영하며, 상 앞에 앉아 있는 긴 시간 동안 내 가슴을 황홀하게 물들이고, 루하루 행복의 바다로 빠트리는 마법을 일으켰다. 쓰기는 묘하게도 중독성이 강했고, 나는 매번 기쁨과 환희로 벅차올랐다.


  이제 드디어 프라하 여행기가 완성되었다. 이켜보면 쓰기는 결국 깊은 내면으로 떠나는 순례의 길이었다. 때론 막다른 길에서 주저앉기도 하고 끝이 보이지 않아 막막한 적많았지만, 쉬엄쉬엄 느린 걸음으로 당도한 곳은 결국 의 심연이었다. 그곳에서는 또 다른 내가 나를 기다리고 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표현대로, "시간이 여행을 고운체로 걸러서 나의 모든 기쁨과 슬픔의 정수로 정제시킬 때까지, 내 안에서 조용하면서도 격렬한 결정화가 일어나 풍요로워지는 것을 느끼게 하는 마음의 연금술" 덕분이었다. 나는 이제 쓰기 여행여정을 끝내며 낯선 길 위에서 만난 황홀한 순간의 아름다움을 진정으로 소유하게 되었다.  여행는 동안 실로 만하고도 행복했다.


 마음을 다 안다는 듯, 

서귀포  바다 위로 붉은 황혼이 넘실거다.



범섬을 배경으로 새섬에서 바라본 일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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