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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ra 유현정 Oct 25. 2020

두렵거나 감미로운 순간 '키스'

제주와 비엔나에서 마주친 클림트와 에곤 쉴레



  할슈타트의 아침을 만끽한 후, 남편과 나는 다시 길을 떠났다. 비엔나로 향하는 이정표엔 벨베데레 궁전과 레오폴드 미술관, 그리고 훈데르트바서 하우스가 전부였다. 수많은 여행의 이유 중에 숨 막힐 듯 아름다운 풍경 뒤에 놓일 것은 바로 그림이었다. 그림은 가끔씩  호엔잘츠부르크 요새와 미얀마 우베인 다리의 일몰처럼 내 가슴을 환희로 물들이 했다. 그리하여 프랑스의 파리가 오르셰 미술관으로  지베르니가 모네의 정원으로 기억되듯이,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쉴레 그리고 훈데르트 바서 도시로 기억될 것이 틀림없었다.


  비엔나 외곽의 호텔에 짐을 풀고 다음날 아침 벨베데레 궁전을 찾아가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시내 주차가 복잡할 것으로 예상하여 차를 호텔에 두고 전철을 이용했는데, 기계로 티켓을 사는 것 까다로워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 또  플랫폼에서 기차를 잘못 타서 거꾸로 가는 바람에 혼비백산하여 다음 역에서 고, 현지 젊은이의 도움을 받아 다른 기차로 되돌아와 했다. 그래도 일찍 서두른 에 오전에 궁전을 한가로이 둘러볼 수 있었.  1908년 그림을 구입한 이후 벨베데레 궁전을 떠난 적 없는, 오스트리아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그림 클림트의 <키스> 앞에서도 오랜 시간 머무를 수 있었다.


벨베데레 궁전과 <키스>


  여행을 떠나기 전, 나는 이미 제주 미술관 '빛의 벙커'에서 클림트의 <키스>를 하게 만났다. 성산의 대수산봉 아래 오랜 시간 방치되어 있던 군사통신 벙커가 미술관으로 탈바꿈하였다는 소문을 듣고, 클림트전 장과 동시에 달음에 달려갔 것이다. 비밀벙커의 육중한 철문을 밀고  발 안으로 들어서자, 고막터질 듯 웅장하 감미로운 음악 빵빵하게 공간을 가득 채웠고, 에 맞춰 클림트의 화려한 그림 영상들이 벽과 바닥을 타고 흘렀다. 풍경 그림은 벙커 안 관객들의 몸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꽃과 초록으로 물들이며 환상의 세계를 만들어냈다. 영상 꿈결처럼 물결처럼  내게로 다가왔고, 나는 순식간에 그림을 빛으로 쏟아내고 있 가로 100m, 세로 50m, 높이 5m의 거대한 블랙홀 속으로 빨려 어갔다.


  30여 분 진행된 클림트의 롱쇼가 절정에 다다랐다. 벽면에는 제목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클림트의 대표작 <유디트>와 <키스>가 번갈아 등장하 오버랩되 황금시대가 도래하였다. 디트는 기양양하게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잘린 머리를 들고  뺨을 붉게 물들이 이를 드러내 섬뜩한 미소를 고 있다.  사각형 턱선은 무슨 일이든 성취하고 말리라는 굳은 의지를 여주는 듯했다. 클림트는 유디트의 한쪽 가슴과 배꼽 드러내며 육감적인 몸과 술에 취한 듯 몽롱한 두 눈으로 서에 기록된 숙한 과부 숨에 팜므파탈로 변신시다. 매혹적면서 어떤 신비로운 힘  강하게  매료시켰다. 


  이어 <키스>의 두 주인공 얼굴이 서서히 클로즈업되었다. 여자 얼굴은 남자의 검은 머리카락과 구릿빛 피부에 대비되어 더욱 얗게 두드러. 여자는 자가 리드하는 대로 고개를 꺾고 두 눈을 감은 채 다소곳이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만, 이미 무아지경에 빠져 있다. 자의 발그스레 상기된 뺨 위로 남자의 뜨거운 입술이 스쳤다. 서로에게 몰입하 포옹하면서 일심동체가 된  두 사람은 마침내 우주적 합일을 이루었고, 온 세상이 축복하듯 주변으로 황금비가 쏟아 내렸다. 시간은 멈춰 섰고, 장식적인 화려함을 넘어 관능과 에로티시즘 극치 다다랐다. 


연인들에게
가장 감미로운 순간, 키스

  

  유통기한이 다한 사랑은 변질다. 하지만 그림으로 박제되어 멈춰버린 키스는 영원하다. 연인들의 로맨틱 순간의 절정, 꿀이 뚝뚝 떨어지는 사랑의 감미로운 순간을 포착한 클림트의 <키스> 원한 사랑 판타지를 꿈꾸게 다. 나도 모르게 현실에선 간이지만 기억 속에선 영원한 사랑 첫 키스의 추억 속을 헤매며 스르륵 그림 속으로 빠져들었다.  


<유디트>와 <키스> in 빛의 벙커


   반면, 레오폴드 미술관에서 만난 에곤 쉴레의 키스는 너무나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림의 제목은 <애무>에서 <추기경과 수녀>바뀌었지만, 스승인 림트의 <키스> 패러디한 작품으로도 알려져 있다. 클림트의 <키스> 앞에서 황홀하던 나의 심장은 반나절만에 덜컹 지옥의 나락으떨어며 얼어붙었다. 림 속 두 영혼은 축복황금비는커녕 어두운 공간에 갇 두려움에 떨고 있다. 붉은 옷으로 상징되는 권위와 금욕을 상징하는 검은 수녀복 금기를 넘어선 광기가 되어 강렬하게 대비다. 녀의 직된 자세주위를 의식하 애원하는 듯 겁먹은 동그란 두 눈은, 거부하고 싶어도 위력에 눌려 저항하지 못하는 나약하불안한 심리를 보여주었다.


죄와 벌


   인간의 욕망은 얼마나 강렬하게 끈질기고 또 어리석은가? 계율을 어기면 양심의 가책과 함께 벌이 따른다.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의 동산에서 쫓겨났다. 그림 속 두 주인공도 파문의 위협을 무릅쓴다. 죄를 알면서도 주체할 수 없는 악마적 육체의 본능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만 것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원초적인 감정 두 가지 중 하나는 사랑이고, 다른 하나는 두려움이라고 한다. 사랑은 빛이요, 두려움은 어둠이다. 신에게 허락받은 사랑이 빛이라면 허락받지 못한 사랑은 어둠이다. 


   출세가도를 달리던 클림트 평생 독신을 고수하였, 에밀리에 플뢰게와 정신적 사랑을 꽃피우며 불후의 걸작 <키스>를 탄생시켰다. 하지만 에곤 쉴레는 어려서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디트 하름스와의 안정적인 결혼위해 자신에게 헌신적이었던 모델 발노이칠과도 헤어졌다. 벨베데레 미술관에서 보았던 <죽음과 여인>은 이러한  사람의 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그림이다. 쉴레에게 매달리는 발리의 팔은 너무나 연약하여 아무런 힘이 없고, 그러한 발리밀쳐내는 쉴레의 오른손 단호하다. 그러면서 쉴레는 발리와의 헤어짐에서 사랑의 죽음을 어쩌면 자신의 죽음까지도 예견한 듯하다.


   20세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성공한 화가 클림트와 이제 막 꽃을 피우려다 28세의 나이로 요절한 에곤 쉴레, 그들은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만나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지만 쉴레의 거침없는 표현은 스승을 뛰어넘는다. 클림트가 자신에게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외부(특히 여성)로 눈을 돌린 반면, 쉴레는 어려서부터 자화상을 리며 자신에게 몰입하다. 그는 인간의 욕망과 내면에 천착하였고, 어둡고 뒤틀린 에고를 솔직하게 표현하였다. 내면을 마주한다는 것은 때 고통스럽지만, 한 단계 성숙으로 나아가는 통과의례이다. 그리하여 불편한 진실을 마주 보고 자의식과 인간의 욕망을 서슴없이 용기 있게 표현한 쉴레의 작품들은 가슴을 깊이 파고들었다.


에곤 쉴레, <추기경과 수녀> in 레오폴드 미술관
에곤 쉴레, <죽음과 여인> in 벨베데레 미술관


  시간은 벌써 오후 3시를 넘어 4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자꾸 내게 말을 거는 그림 앞에서 한참을 바라보고 다시 또 돌아와 마주하며 감성을 소화하다 보면, 훌쩍 가버리는 시간이 야속하다. 그래도  에곤 쉴레의 외가였던 체스키 크룸로프에서 '에곤 쉴레 아트 센트럼'이 휴관이라 크게 서운했던 나는 벨베데레 궁전과 레오폴드 미술관을 돌며 그의 그림을 맘껏  감상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남편도 에곤 쉴레의 작품에 크게 매료된 것 같았다. 남편은 미술관 입구에서 여권을 보지도 않고 새치 만으로 경로 우대 입장료 할인을 받아 내심 흡족해하던 참이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레오폴드 미술관이었다.


  도심에서는 뚜벅이를 자처하는 우리는 지친 다리를 이끌고 마지막 정표 향다. 예술을 통해 지상낙원을 꿈화가이자 건축가이며 환경운동가 훈데르트 바서, 그의 철학이 집대성된 건축물 찾아 나섰다. 그의 작품을 직접 만난다고 생각하니 발걸음이 들뜨며 가슴까지 콩닥거렸다.



훈데르트 바서의 건축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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