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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ra 유현정 Nov 07. 2020

프라하의 친절 릴레이

다시 또 두근두근 프라하로~

 


  우리는 다시 프라하로 돌아왔다.


  비엔나를 출발한 남편과 나오스트리아국경을 넘어 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달렸다. 여기는 국경이라고 해도 문소가 따로 없다. 그저 작은 EU 표지판과 비넷이라고 부르는 고속도로 통행권을 파는 주유소 딸린 가게가 드문드문 있을 뿐이다. 고속도로에는 트럭이 즐비하게 달렸고, 공사 중인 구간도 꽤 많았다. 다들 규정속도 이상으로 질주했지만, 과속단속기는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국제 운전면허증을 준비해 간 나는 한 번도 운전대를 잡지 못했다. 대신 조수석에 앉아 남편에게 구글 비게이션을 읽어주었다. 동유럽의 너른 평원 위로 두둥실 떠오른 구름들이 속도를 내며 달리는 차를 향해 거침없이 달려들었다. 


체코와 오스트리아의 국경


  5박6일간의 오스트리아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다시 프라하로 돌아오니, 마치 여행을 끝내고 으로  돌아온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졌다. 숙한 느낌은 뭐랄까, 고향을 찾아가는 그런 그립고 반가운 기분이었다. 우리는 남은 여정을 좀 더 느긋하게 보내기 위해서 아파트를 빌렸다. 여행 초기 한인민박에서 시작한 숙소는 레지던스와 호텔을 거쳐 아파트로 이어졌다. 프라하 시내의 아파트 고도 제한이 있는지 모두 5층으로 아담했는데, 텔보다 넓은 평수에 일상생활에 필요한 시설을 모두 갖추고 있어 집처럼 다. 밥도 해 먹고 빨래도 할 수 있 현지인처럼 즐기기에 그만이었다.


  우리가 선택한 블타바 강변의 아파트는 숙소 사이트의 평점도 최고였다. 완벽한 시설과 세련된 인테리어, 편리한 교통, 쾌적한 주변 환경 등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체크인과 아웃도 온라인으로 해결하는 최첨단 구조였다. 한마디로 so cool~  그런데 생각지 못한 문제가 생겼다. 프라하에 도착할 때까지 숙소 주인과 연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주인에게서 체크인 관련하여 문자가 오기 기다렸다. 현지 유심으로 데이터만 쓰다 보니 급할 때 전화를 할 수 없어 답답하였다.


  역시나 아파트의 1층 현관문 굳게 닫혀 있었다. 비밀번호를 몰라 난감해하고 있는데, 마침 아파트 주민인 듯한 남자가 막 도착을 하였다. 세주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나는 위기의 상황에서 언제나 위력을 발휘하는 마법의 단어  Please를 남발하며 사정을 얘기다. 그는 자신의 현관 비밀번호를 가르쳐 주었다. 그리곤 바로 호스트에게 전화를 걸어 주었고,  그제야  숙소 비밀번호가 e메일로 보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쯤에서 자기 집으로 올라가도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를 도로변에 세우면 경찰이 단속을 한다며, 남편이 차를 옮길 동안 우리 차 트렁크에 널브러진 짐을 모두 들어 우리 호실 앞까지 날라주었다. 그리고 내가 메일을 통해 비번을 확인하고, 주인에게 연락을 받은 메이드(녀는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가 내려와 우리를 인계할 때까지 옆에서 도와주었다. 덕분에 친정집 오라버니를 만난 듯 긴장이 풀어지며 진짜 고향집에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아, 프라하는 진심으로 따뜻하게 우리를 반겨주었다. 그는 가장 난감한 순간에 나타나서 끝까지 친절을 베푼 멋진 프라하의 시민이었다. 나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활짝 핀 미소를 건넸다.


프라하이 트램


  리는 아파트에 짐을 모두 내리고, 렌터카를 반납하러 프라하 6구역에 있는 허츠 사무실로 갔다. 오스트리아에서의 색다른 여행을 책임져준 렌터카를 약속시간 내반납하고 나니, 기분이 한결 홀가분해졌다. 우리에겐 이제 트램을 타고 다시 아파트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트램 정거장에 티켓 머신이 보이질 않았다. 산한 역이라 변에 물어볼 사람도 없어 황스러운 그때, 트램이 다가 멈춰 서며 문이 열렸다.


  나는 혹시 트램 안에서 표를 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트램 안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는 젊은 커플 눈에 띄었다. 무나 인상이 좋은 남자는 내가 한때 좋아했던 미드 <섹스엔더시티>의 남자 주인공 에이든을 똑 닮았다. 자연스레 끌린 그에게 표를 어디서 사느냐고 물으니, 절한 웃음을 머금고 지하 계단을 가리키며 그리로 내려라고 가르쳐 주었다.


  지하철역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보였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몸을 돌리려는 순간, 그들이 트램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그리곤 우리가 걱정되었는지 따라오라며 우리를 이끌고 계단을 내려갔다. 괜찮다고 말할 새도 없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기계는 동전만 먹는데 우리에겐 지폐만 던 것이다. 다시 폐를 들고 찾아간 점포는 표가 떨어졌다고 했다. 기계와 가게를 왔다 갔다 하며 표를 해주려 하다 방법이 없어지자, 들은 선뜻 지고 있던 동전으로 표 두 장을 사서 우리에게 건네주었다.


  나는 무 고마워서 당장 뭔가 보답하고 싶었다. 유로 동전이라도 주려고 하였으나, 그들은 한사코 사양을 했다. 이 경우를 대비해서 서울서 준비해 간 작은 선이 있었 아뿔싸, 모든 짐을 아파트에 두고 나와버렸다. 가슴이 쓰릴 정도로 안타까웠다.  남편이 기지를 발휘해 그들의 e메일 주소를 받아 들었다. 그의 이름은 온드레지(Ondrej), 그녀는 지트카(Jitka) 였다.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고, 잠시 후 그들은 다음에 도착한 트램 올라탔다.

프라하를 즐기세요~

  들은 헤어지면서 손을 흔들었다. 프라하를 즐기라는 인사가 라하를 사랑해달라고 들렸다. 나는 이미 충분히 프라하와 사랑에 빠질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프라하의 천사들, 온드레지(Ondrej)와 지트카(Jitka)


  프라하 돌아온 첫날, 연이어 만난 친절로 우리는 몹시 고무되, 가슴이 벅차다. 한편으로 그동안 나의 친절을 곰곰이 돌아보게 되었다. 나의 친절은 늘 최소한 머물며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만일 오늘 서로 상황이 바뀌었다면, 나는 티켓 머신이 있는 장소만 알려주고 그대로 떠났을 것이다. 가던 길을 멈추고 트램에서 내려서면서까지 친절을 베푼다는 것은 아마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친절은 나와는 차원이 달랐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도덕적 의무를 뛰어넘어 마치 혈육을 도와주듯이 세심하고  따뜻했다. 일초의  망설임도 없 몸에 밴 행동이었다. 


  나는 제야 우리가 프라하에 다시 돌아온 진짜 이유를 깨달았다. 카를교나 프라하 성을 한번 더 둘러보는 것보다 훨씬 더 값지고 아름다운 프라하천사들을 만나러 온 것이. 여행자의 천국 프라하에서도 최고의 관광자원은 시나 친절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체험하였다.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나는 그들에게 감사의 편지를 다. 두고두고 잊지 못할 추억이었다.




   다시 바쁜 일상 시작되었다. 제주에선 국제 실험예술축제가 열리고 있었고, 스태프로 참여한 나는 서울 친구를 초대하였다. 우리는 협재해변에서 일본 부토 춤의 대가 무시마루 선생님의 지도 아래 명상 워크숍을 받았다. 분위기에 한껏 고된 우리는 정물오름 정상에 올라 억새와 바람과 하나가 되어  명상을 이어갔다. 저녁을 먹고 늦은 시간, 서울로 돌아가는 친구를 배웅하기 위해 공항버스 정류장 비석거리 나갔다.


  그녀들을 만난 곳은 바로 그 정류장이었다. 공항에서부터 타고 온 듯한 외국인 일행이 차에서 우르르 내렸다. 친절한 기사님 차에서 내려 짐칸에서 그들의 캐리어 꺼내 주며 택시를 연결해주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 네 명인 데다가 까지 많아 택시  어려워 보였다. 나는 먼저 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고, 버스기사에게 그녀들을 내 맡겠노라 말하  안심시키고 버스를 떠나보냈다.


  날은 이미 어두웠고 주변 도로는 한산하여 택시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각각 커다란 캐리어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다행히 차가 커서 트렁크에 짐을 싣고 네 명을 태울 수 있었다. 그들의 숙소는 서귀포 시내 중심가의 작은 호텔이었다. 호텔까지 10여 분 달리는 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해보니, 여행을 인솔하는 20대의 여성은 엄마와 이모, 동생을 데리고 말레이시아에서 우리나라로 자유여행을 온 이었다.


  그녀는 나를 택시기사로 오인했는지, 만원짜리 지폐를 꺼내 사례를 하려고 하였다. 나는 정중히 사양하며 몇 달 전 프라하에서 만난 친절을 들려주었다. 그녀는 이해했고, 몇 번이나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그녀의 동생은 한국말로 감사하다고 말했다. 나는 그들 일행에게 제주를 즐기라고 말하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나도 모르게 가슴이 뜨거워다.


  "준 만큼 받는 관계보다 누군가에게 준 것이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세상이 더 살 만한 세상이 아닐까."


  소설가 김영하는 산문집 <<여행의 이유>>에서 우리가 여행 중에 이방인으로부터 받게 되는 친절 즉 `환대’의 가치를 말하며, 환대가 돌고 도는 살 만한 세상을 역설하였다. 그와 같이 프라하에서 시작된 친절은 나에게로 이어졌고, 이제 말레이시아를 거쳐 다시 세상 어딘가로 퍼져나갈 이다. 친절이 릴레이를 펼치며 세계 뻗어나가 계속 이어져 언젠가 프라하에 당도할 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내 마음에 미소가 크게 다. 내가 프라하를 사랑하듯이, 그녀들도 대한민국을 따뜻한 나라로 기억하고 사랑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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