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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ra 유현정 Nov 14. 2020

여행의 이유

두근두근 프라하, 현지인처럼 즐기기



  여행의 참맛은 현지인의 삶을 살아보는 데에 있다. 나는 느지막이 일어나 토요일 오전 블타바 강가에서 열리는 파머스 마켓에 나가보기로 하였다. 파머스 마켓은 여행자들은 잘 모르지만 현지인들에겐 유명한 시장이다. 일주일에 한 번만 열리는 시장이라 우리나라의 오일장처럼 손꼽아 기다린다. 시장은 삶의 축소판이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시장이 특별히 반가운 이유이다. 사실 프라하에는 구시가와 신시가를 잇는 길목에 역사가 오래되고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하벨 시장이 있다. 하지만 나는 이미 크게 실망을 한 터였다. 유명세에 비해 규모가 너무 작았고, 관광객 대상이라 현지인들의 삶과도 크게 동떨어져 있었다. 파머스 마켓은 프라하 시민이 주말 소풍처럼 즐기는 시장이라 나도 그들처럼 여유를 만끽하며 어슬렁거릴 참이었다.


  슬슬 산책 삼아 걸어서 철교를 따라 블타바 강을 건넜다. 파머스 마켓은 마지막 여정을 보내고 있는 아파트의 반대편인 동쪽 강변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다리의 중반을 지나 프라하의 랜드 마크인 댄싱하우스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아래 알록달록한 파라솔 사이로는 시장을 찾은 수많은 사람들의 행렬이 보였다. 강변을 따라 길게 늘어선 마켓은 규모가 꽤 컸고 생동감이 가득해 보였다. 늘 가득 몰려든 뭉게구름도 시장 구경을 나온 참이었다. 오늘은 어떤 농산물이 나를 반길까? 나는 집에만 갇혀 있다가 일주일 만에 장을 보러 나가는 아낙네처럼 가슴이 설레었다.


  눈을 어디부터 둬야 할지 모르게 물품의 종류가 다채로웠다. 수공예부터 시작해서 각종 식자재와 농수산물,  옷에 이르기까지 풍요로웠다. 손가락처럼 가늘고 기다란 당근이 풍성하게 잎을 달고 좌판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 사랑스러웠다. 탱글탱글 햇살을 품은 체리도 흑자색을 띠며 큼직하니 먹음직스러웠다. 갓 구운 빵과 각종 치즈와 햄, 하몽 등 안주거리도 보였다. 다들 신선하고 가격도 착했다. 프라하에 일주일만 더 머물 수 있다면 몽땅 사두고 매일 먹고 싶었지만, 여행의 끝자락이라 자제를 하였다. 대신 선상에서 열린 벼룩시장에서 프랑스제 원피스를 하나 골랐고, 유리로 만든 짙은 초록색 화병을 신문지로 포장해서 가방 안에 고이 넣었다.


블타바 강변, 토요일 오전의 파머스 마켓


  남편은 해산물 요리를 즉석에서 만들어 파는 가게 앞에서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바로 앞집에선 체코의 명물인 수제 생맥주를 팔고 있었다. 아하, 그렇지 그렇고말고! 프라하에 왔으니 맥주를 마셔야 한다!! 사실 나는 여행 첫날 체코의 흑맥주 코젤에 반해서 매일 밤낮으로 마시고 있었다. 우아하게 물 위를 헤엄치던 백조들이 강가로 모여들었다. 우리도 강변에 놓인 탁자를 둘러보며 앉을자리를 찾았다. 그때 한 여인이 아직 끝나지 않은 식사를 접으며 우리에게 자리를 양보하였다.


   "여기에 앉으셔도 돼요."

   "어머나, 감사해요. 우리 그냥 같이 앉을까요?"


  우리는 즉석에서 합석을 하였다. 여인은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낯선 장소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 동석을 하고 함께 술을 마시다니, 시장의 들뜬 분위기와 딱 어우러지는 풍경이었다. 그녀는 현지에 사는 한국 여인이었다. 와인 잔을 만지작거리며 늘어놓기 시작한 이야기인즉슨, 그녀는 현재 프라하에서 덴마크 레고 회사에 근무하고 있으며 남편과 아들 둘은 모두 다른 나라에 뿔뿔이 흩어져 사는 글로벌 가족이었다. 우리는 간간이 와인과 맥주잔을 부딪치며 샐러드와 함께 새우와 멸치를 버터에 볶아 낸 요리를 안주로 삼았다. 그녀는 우리에게 와인파티를 하였다. 그녀가 무척이나 싹싹해서 맘에 들었으므로, 우리는 흔쾌히 참석하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파머스 마켓에서의 맥주 한 잔(위)과 와인 파티(아래)


  그날 저녁 그녀로부터 받은 주소를 들고 프라하 10구역의 어느 한적한 공원을 찾아갔다. 야트막한 야산의 산책로를 따라 한참을 들어서자 정상 평지가 나타났다. 그곳에서는 프라하 시민들이 와인 잔을 기울이며 커플이나 가족단위로 주말 저녁을 즐기고 있었다. 무대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춤을 감상하거나 잔디밭에 앉아서 담소를 나누는 모습은 차분하면서도 낭만과 여유 묻어나는 풍경이었다. 그녀는 이미 도착하여 와인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도 디 밭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분위기를 즐겼다. 특별게 재밌지는 않았지만, 자연스레 현지인들의 삶 속으로 녹아들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곧 밤이 이슥해졌고 우리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녀는 귀가하는 방향을 우리 숙소에 맞춰 함께 트램을 탔다. 낮에는 한인 상점을 가르쳐주기 위해 먼길을 돌더니만, 밤에는 우리가 무사히 프라하 여행을 마치고 떠날 수 있도록 공항 가는 버스정류장을 알려주기 위해 또 다시 걷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살뜰한 그녀 덕에 남편과 나는 잠시 여행자라는 것을 잊고 현지인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여행지에서의 특별한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날 밤 나는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지구촌 친구를 만나 우정까지 나눈 것이다. 여행의 미덕은 현지에서 만나는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프라하의 친절을 포함하여 낯선 여행지에서 만난 뜻밖의 인연은, 나의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주며  뭉클하게도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들로 하여금 나의 삶은 풍요롭게 확장되었다. 덕분에 여행을 하는 동안 나는 하루하루 현재에 머물며, 그들이 놓아준 징검다리를 건너 나의 내면으로 더 깊이 다가갈 수 있었다. 여행은 오늘을 사는 단순한 즐거움과 함께 만남을 통해 또 다른 나에게로 다다르는 성장의 기쁨이었다. 나는 이것이 여행의 이유라는 것을 깨달았다. 혼자 떠나든 둘이 떠나든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여행의 리모컨만 꼭 쥐고 있으면, 행운의 여신은 좀 더 멋진 나를 만나 손잡고 돌아올 수 있게 도와준다는 비밀도 알게 되었다.




   여행 마지막 날, 나는 짬을 내어 이번 프라하 여행의 버킷리스트를 펼쳐 들었다. 카를교가 보이는 블타바 강변의 카페 '라브카'에 앉아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중 제2부 ‘영혼과 육체’ 편을 읽었다. 여주인공 테레자는 프라하를 두 번 방문하였다. 처음에는 고향을 떠나 사랑하는 토마시를 찾아왔던 프라하이고, 두 번째는 소련의 점령으로 스위스에 망명한 후에도 계속되는 토마시의 외도에 좌절하여 애완견 카레닌만 데리고 다시 돌아온 프라하이다. 그녀는 한동안 바츨라프 광장에서 ‘프라하의 봄(1968년)’을 위해 소련의 무력침공을 사진으로 고발하는 열정에 사로잡히기도 하였다. 사랑과 열정, 때론 절망으로 점철된 도시 프라하에서 나는 카를교를 바라보며 테레자의 순수한 영혼과 조우하는 기쁨을 누렸다.


  남편도 준비해 간 버킷리스트를 꺼내들었다. ‘레논 벽’에 다가가 'Now it begins. Let it begin.'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작은 그림을 남겼다. 벽에 적힌 메시지가 내게도 속삭이는 듯했다.


 "그래, 이제 시작하는 거야! 떠나고 싶을 때 언제든 혼자 떠날 수 있는 너만의 여행을 시작하렴!! "


  불현듯 겨드랑이가 간지러웠다. 세상을 향해 힘차게 날고 싶다는 꿈과 욕망이 꿈틀거렸다. 손에 잡힐 듯 무지개가 피어오르며 신기하게도 앞으로의 인생이 다시금 두근두근 설레기 시작하였다.



레논벽, 자유를 향한 외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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