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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ra 유현정 Dec 20. 2020

프롤.로그

코로나 시대의 글쓰기 여행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의 기술>>에서 러스킨의 표현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름다움을 제대로 소유하는 방법은 아름다움을 이해하는 것이며, 아름다움을 이해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것에 관해 쓰거나 그림으로써 예술을 통해 아름다운 장소들을 묘사하는 것이다."


  간은 살면서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우리가 여행을 하는 이유 익숙하지 않은 낯선 곳에서 순간순간 마주치는 아름다움을 경험하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누구든 아름다움을 만나면 그냥 지나치기가 힘들다. 스마트폰이라도 꺼내서 사진을 찍고 소유하려고 한다. 그것은 아름다움을 소유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그러나 그뿐이다. 내가 본 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 러스킨의 주장대로 글과 그림이다. 이는 우리가 여행에 글쓰기나 그림을 접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유의 코로나 시대, 만한 인간들은 과욕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자연의 역습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어디 그뿐인가? 코로나는 현대인의 삶을 고도 없이 깡그리 바꿔놓고 말았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 여행이 아닐까 한다. 지난날의 자유로운 여행은 이제 머나먼 다른 행성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고, 가끔은 한바탕 꿈을 꾸었던 것럼 비현실적으로 가오기도 다. 당연시하던 것들이 사실은 얼마나 특별한 것이었는지 뒤늦게 깨닫지만, 너무 늦은 감이 있다.


  렇다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여행은 어떤 모습일까? 다른 건 몰라도, 해외여행은 반드시 코로나 백신을 맞고 치료약을 챙겨 떠나야 할 것이다. 우리가 아프리카나 동남아를 여행할 때 말라리아 예방을 하고 떠듯이 말이다. 하지만 아직 치료약이 나지 않은 상황에서 백신의 안전성이 100% 확보되지 않는다면, 이제 해외여행은 리빙스턴이나 스탠리가 아프리카를 탐험하던 19세기로 되돌아갈지도 모른다. 렇다면 여행은 목숨 걸고 떠날 수 있는 용기 있는 자들의 전유물이 될 것이다.


  2000년대 초 우리나라에 주 5일 근무제가 도입되면서 발표된 어느 설문조사가 떠오른다. 질문의 내용은 "주 5일제가 되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였, 그에 대한 답으로는 '여행'이 모두의 염원(나의 염원을 포함하여)을 담고 보란 듯이 최상위권에 자리를 잡았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후 "주 5일제 이후 주말에 무엇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설문조사에서는 불행히도 여행이 10위 안에 들지 못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꿈꾸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실현하기 힘들다는 슬픈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의 버킷리스트에는 언제나 여행이 등장한다.


  나에게도 여행은 줄곧 화두였다. 돌이켜보면, 내가 제주에서의 삶을 시작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었다. 여행자와 생활인의 줄을 타며 제주에 머무는 생활은 달콤한 신세계였다. 그렇게 몇 년을 제주에 푹 빠져 지내던 어느 날, 나는 불현듯 채워지지 않는 욕구와 마주하게 되었다. 낭만의 섬 제주에서도 매년 철마다 일상은 무한히 반복되는 것이 아닌가. 반복은 빛나던 일상을 퇴색시키고 긴 하품 같은 지루함을 낳았다. 거머리처럼 달라붙기 시작한 권태는 잠자던 나의 노마디즘을 깨우기 시작했고, 한동안 사라졌던 해외여행에 대한 욕구가 드디어 봇물처럼 터지고 말았다.


   나는 버킷리스트를 다시 적어 보았다. 1순위는 그동안 요지부동의 ‘제주 전원생활’을 물리치고 ‘나 홀로 해외여행하기’로 대치되었다. 이제는 제주를 떠나  `해외에서 머무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 게다가 나는 오래전부터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의 자유가 늘 부러웠다. 온전한 인간이 되려면 홀로 여행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었지만, 그동안 낯선 세상으로 나아가는 용기가 턱없이 부족했다. 앞으로 남은 인생을 후회 없이 살기 위하여 나는 이제라도 두려움의 강을 건너기로 작정하였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도 없고 건강은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다.  



 

  2020년, 나는 여행과 관련하여 그 어느 해보다도 야심 찬 기획을 했었다. 봄에는 미국에 는 딸아이와 자매들을 만나고  하와이에서의 휴식을 취한 후, 가을엔 다시 짐을 꾸려 친구들과 긴 시간 남미 여행을 떠날 참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펜데믹이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되면서 출발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모든 이 물거품이 되 사라지는 현실 앞에서, 발만 동동 구르며 갈팡질팡 갈피를 잡지 못 마음이 부유하느라 불안감 커져갔다. 같은 하늘 아래의 친구들도 쉽게 만날 수 없는 답답한 시간이 지속되자, 뭔가 방식 획기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상황을 견뎌낼 재간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떠날 수 없는 지금, 나밖으로만 뻗어 나가려 마음을 다독이며 대신 내 안으로  여행을 떠나고 달랬다.  추억의 바구니 속에서 먼지만 켜켜이 쌓여가고 있는 색 바랜 여행들 하나씩 꺼내보기로 하였다. 이것은 어쩌면 여행이 이룰 수 없는 꿈이 되어버린 현재의 나를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이 되어줄지도 모를 일다. 


  지난 6월 부랴부랴 브런치 작가를 신청하였다. 프라하 여행을 다녀온 지 꼭 1년 만이었다. 나는 책상 앞에 앉아 작년에 끄적이다 만 여행기를 펼 들었다. 노트북 자판 위에서 손가락을 다시 꼼지락거자, 신기하게도 실타래처럼 엉겨있던 기억들이 손끝을 타고 내려와 단어가 되고 문장이 되었다. 느덧 여행을 준비하고 집을 떠나던 날 새벽의 설렘이  한 번 나를 찾아왔다. 필름이 스르륵 되감기며 시간이 미끄러지듯 그때의 순간으로 이동였고, 나는 벌써 행복해질 준비가 되어 있다.


  자, 그럼 이제 떠나볼까요?

  출발을 응원하듯, 귀포 섶섬 앞바다엔 아침마다 붉은 해가  얼굴을 내밀었다.


 

섶섬을 배경으로 떠오르는 아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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